아직도 ‘미완’으로 남아 있는 2년차 산별교섭, 서울대병원지부를 시작으로 한 국립대병원지부들의 연쇄 탈퇴 및 공공연맹 가맹 등. 굴곡의 2004년을 지나온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11일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고 다시 신발 끈을 조이고 있다. 92.8%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주인공, 홍명옥 위원장을 <매일노동뉴스>가 만나봤다. <편집자 주>


아무리 아픈 환자들도, 정말 독한 사용자도 일단 홍명옥 위원장의 그 ‘미소’를 보면 무장해제 당할 것 같다. 그래서 위원장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살인미소’가 어쩌면 가장 강력한 무기(?)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초 ‘보건의료노조 최초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투쟁’으로 기록되는 전남대병원 하청지부 고용보장 투쟁과 식당용역화를 반대하며 130여일간 꿋꿋이 싸워낸 성모자애병원지부 싸움에서 홍 위원장의 발걸음을 더듬어보면 그 ‘미소’보다 더 강력한 그 무엇이 숨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때문에 보건의료노조 간부들은 홍 위원장을 ‘해결사’라고 부른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하는 노래와 함께 히트 친 ‘홍 반장’이라는 영화에서처럼 전남대병원 하청지부 투쟁, 성모자애병원 복직투쟁 등 ‘홍 위원장’이 뜨면 무슨 일이든지 해결됐다는 게 그 이유.

그렇지만 그런 해결사 ‘홍명옥’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자리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닌 듯 보였다. 당선소감을 묻자 “솔직한 심정은 어깨가 너무 무겁다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현장순회 하면서 느꼈던 것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조합원들은 산별 지도부에 커다란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투표결과(득표율)가 그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까지 여러 어려운 과정이 있었지만 조합원들이 한결같이 보여준 지도부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감이 생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다”

“의료공공성 투쟁에 ‘올인’할 것”

홍 위원장이 이번 선거에서 내건 첫번째 공약은 “의료공공성 확보로 ‘국민건강권’과 ‘고용안정’을 책임지는 산별노조”다.

홍 위원장은 “의료공공성의 핵심은 의료정책”이라며 “병원노동자의 고용문제와 국민건강권은 일치된 맥락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현재 병상수급조절을 제어하는 장치가 전무해 중소병원들이 우후죽순 생겼다가 도산하고 대학병원들은 신축·증축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 실제로 서울에서만 지난 1~2년 사이에 8,000여 병상이 늘었다고 한다.

홍 위원장은 “의료정책이 시장논리에만 맡겨져 있기 때문에 점점 대형화될 뿐 아니라 수도권 집중 현상이 생기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병원노동자들은 심각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국민 건강권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차기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현재 점점 시장에 내맡겨지고 있는 의료를 국가의 책임 하에 두도록 모든 조직적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 홍 위원장은 “이를 위해서는 중앙은 산별교섭을, 현장은 환자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 등 현장투쟁을 더욱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용자단체 구성이 중요하다”

지난 3기 집행부가 산별교섭 시대를 열었다면 홍명옥 집행부에게 맡겨진 과제는 ‘산별교섭을 완전 정착시키는 것’이다. 홍명옥 위원장은 “지금까지도 마무리되지 못한 2005년 교섭이 노사 모두에게 남긴 숙제는 사용자단체”라며 “사용자들이 지난 2차례 산별교섭 과정에서 ‘사용자단체를 빨리 구성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본다”고 밝혔다.

또한 홍 위원장은 최근 노동부가 속도를 내고 있는 노사관계 로드맵 법제화와 관련해서도 “직권중재 폐지 대신 대체인력 투입은 말 그대로 조삼모사”라고 꼬집었다. “직권중재는 병원노동자의 족쇄로 그동안 뗄래야 뗄 수 없는 악연이었다. 하지만 대체인력 투입은 이보다 더 나쁘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대체인력을 투입하겠다는 발상은 병원사업장의 특수성과 국민들의 건강권을 무시한, 정말 무식한 발상이다”는 것이 홍 위원장의 생각이다.

약력
1963   출생
1986   가톨릭대학교성모자애병원 간호사로 입사
1990   CMC노동조합(가톨릭대학교 8개병원 노동조합) 성모자애병원지부 부위원장
1991   CMC노동조합 성모자애병원지부 3, 4대 위원장
1994   CMC노동조합 본부 위원장, 병원노련 3대 부위원장
2000   보건의료노조 인부천본부 부본부장 , 민주노총 인천본부 운영위원
2003   보건의료노조 3대 부위원장
2005   현재 보건의료노조 3대 부위원장, 보건의료노조 중소병원대책위원회 위원장, 보건의료노조 미조직 노동자조직위원회 위원장, 민주노동당 중앙위원, PSI 동아시아소지역 자문회의 공동의장(아시아태평양지역 집행위원, 세계여성위원회 위원), PSI-KC 여성위원회 위원장

“2008년 전혀 새로운 산별체계 완성하겠다”

'의료공공성 투쟁'과 함께 홍 위원장이 강조하는 것은 조직체계 개편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보건의료노조의 조직체계는 절반은 기업별노조 체계, 나머지 절반은 산별노조 체계다. 예를 들어 맹비의 경우 50%는 지부가 갖고 나머지 50%를 산별 중앙으로 보내는 식이다.

그래서 보건의료노조는 최근 몇년간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산별조직 체계를 연구해 왔다. 홍 위원장은 “이러한 연구성과를 토대로 내년 중에 안을 만들어 현장 토론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병원노조 건설 20주년, 산별노조 건설 10주년이 되는 2008년 임기까지 조직체계 전환을 완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위원장이 조직체계 개편을 이토록 강조하는 데에는 지난 산별파업에 대한 평가가 녹아 있다.

“직권중재 결정 이후 파업을 앞두고 최종교섭이 진행된 지난 7월20일 사쪽에서는 산별파업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서 지부 요구안을 100%, 아니 120% 수용했다. 심지어 유니온숍까지 들어주겠다며 산별파업 참가를 막는 병원 사용자에게 흔들리는 지부가 일부 있었다. 기업별노조 틀이 남아 있는 현재의 조직체계를 전환하지 않으면 산별투쟁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노동운동 위기? 자기역할에 가장 충실하는 것이 답”

유세과정에서 홍 위원장에게 “현재 민주노총 사태에 대한 입장과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홍 위원장의 대답은 명료했다. “지금 민주노총은 성숙하고 있는 과정이다. 창립 초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위기에 봉착하면서 치열한 성장통을 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조직에서 가장 충실하고 원칙적으로 사업과 투쟁에 임하는 것이 대안”이라는 것.

올해 보건의료노조를 내내 따라다닌 ‘내홍’이라는 꼬리표에 대해서도 홍 위원장은 원칙적인 답을 내놓았다. “탈퇴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 조직이다. 그래서 최대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이 대단히 많이 걸릴 것 같다”는 말도 덧붙여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많이 알려진 바와 같이 홍명옥 위원장은 이수봉 민주노총 홍보실장과 부부다. 이수봉 실장이 출마할 때 혹여나 말리지는 않았을까. 홍 위원장의 대답은 “(이수봉 실장에게는) 당시가 가장 안팎으로 힘든 시기(민주노총 지도부 사태)였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최선을 다하라’는 남편의 말이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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