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정부와 정치권, 재계, 사회단체 등은 상호간 ‘투명사회협약’을 체결했다. 윤리라운드(ER) 체결 움직임 등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에게도 이제 윤리는 더이상 취사선택의 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회원사 300개 기업의 CEO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윤리경영을 추진하는 근본이유에 대해 57%의 CEO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응답했다. ‘내부통제의 효과적 수단’이라고 응답한 CEO는 7%에 불과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당연히 따라야 할 의무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윤리경영의 최종 목표로는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 제고’(32%)라는 응답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회적 책임이라기보다는 마케팅 전략의 한 수단으로 윤리경영을 여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사회공헌기금 조성의 공론화’에 대해 86%의 CEO가 ‘각 기업 스스로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므로 이에 대한 공론화는 필요가 없다’고 응답한 데서도 유추가 가능하다.

이처럼 기업의 윤리경영 추구는 그다지 자발적이지 않다. 때문에 이를 강제로라도 압박할 수 있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찍부터 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사회책임투자(SRI)’도 그런 압박 형태의 하나이다. 이에 금융과사회책임연구센터(준)와 대안연대회의 주최로 지난 11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연기금의 지배구조 개혁과 사회책임투자 방안’ 토론회의 내용을 지면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노조, 산업별 연금펀드 조성 통해 적극 참여해야”
송원근 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과거 금융시스템의 일부에 불과했던 연기금 펀드는 자본 자유화와 규제 완화를 배경으로 금융주도 자본주의를 선도하는 핵심적인 시장 참여자가 됐다. 2004년 말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의 총투자 잔액은 133조2,77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7.1% 수준에 달하며 총 금융자산 대비 비율도 2000년 1.7%에서 지난해 말 2.7%로 급상승하고 있어 주식시장을 비롯한 국민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이렇듯 경제 규모에 비해 연기금의 비중이 확대돼 가는 상황에서 주식, 채권, 부동산 투자 등 연기금의 투자자산 배분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주식투자에 참여한다면 투자기업에 대한 연기금 의결권은 어떻게 행사돼야 하는지, 종합투자계획과 서민주택건설정책 등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과 사모투자전문펀드(PEF), 한국투자공사 등 첨단 금융부문 투자에 연기금은 참여해도 좋은지, 연기금의 실제 주인인 가입자가 연기금운용 과정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등의 현안들이 제기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연기금의 규모 증대와 함께 대규모 기관투자가로서 연기금의 기업지배구조 관여, 기업사회책임 수행에 대한 감시자로서의 역할, 사회책임투자펀드에 있어서 연기금 펀드의 주도성에 대한 인식도 날로 높아가고 있다. ‘연기금의’ 혹은 ‘연기금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연기금의 지배구조가 적절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책임투자(SRI)와 기업사회책임(CSR), 기관행동주의 등은 이처럼 연기금의 사회적 책임을 일컫는다. 또한 연기금의 지배구조에 관여하고 수탁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은 연기금에 대한 사회적 책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사회책임투자(SRI)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사회적 책임을 높이기 위한 SRI 펀드는 이제 시작단계에 머물고 있다. SRI펀드가 도입된 것이 2001년이고 당시 2천억원 규모의 에코펀드 출시가 최초다. 그러다 2003년 12월 기업책임시민연대가 CJ투자증권과 공동으로 국내 최초의 ‘SRI-MMF(사회책임투자-머니마켓펀드)’를 발매하기 시작해 종교단체 등으로부터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간접자산운용업법시대의 개막은 물론 기금운용법 개정에 따른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올해말로 예정된 기업연금제도의 도입 등은 금융시스템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과연 연기금이 수익성은 물론이고 사회성과 공공성, 안정성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CSR, SRI와 관련해 주주에 대한 책임만이 아닌 이해당사자 책임을 위한 새로운 기업지배모델의 도입이 필요하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기업지배모델은 기업의 회계부정을 오히려 조장하는 등 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초래했고, 또한 주주들과 기업경영자들 사이의 타협은 주주를 제외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SRI 펀드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이해를 대표할 수 있고 또 갈등하는 이해들을 조정하는 조정자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주주자본주의 모델을 넘어서는 기업지배구조 모델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신탁법 및 수탁자 의무규정의 정비가 필요하다. 일본법을 모태로 한 우리나라 신탁법은 투자회사법의 일반법으로서의 성격을 갖지 못하고 그 사회적 기능 또한 미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수탁자 의무 규정의 미비는 오히려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신탁수탁자들의 보수적 투자행위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수탁자의무 규정의 확대와 재검토도 필요하다.

셋째로 연기금의 수탁자가 사회적, 윤리적, 환경적 기준을 고려해 투자를 행하고 있는지를 공시하는 등 국민연금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또한 연기금 지배구조와 관련해 공적연금의 수탁자위원회에 해당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구성 등 지배구조를 보완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대리투표에의 참여방법, 구체적 절차, 그리고 그것의 공시 관련 규정들을 세부적으로 만드는 것도 논의해야 할 일들이다.

넷째로 기업연금법에 대한 재검토와 기업연금펀드의 사회책임펀드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기업연금의 경우에도 경영자에 재량권을 너무 많이 부여하고 있는 현재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영미 등 선진국들은 연금제도를 운용하는 기업의 도산, 수탁기관의 도산 등에 대비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기업연금의 사후보증장치를 강화해 놓고 있다. 아울러 기업별 연금펀드 외에 가능한 산업을 우선으로 산업별 기업연금펀드를 조성해 사회책임투자 분위기를 확산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기관행동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와 원리의 보완과 함께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역할 수행이 필요하다. 기관투자가들은 분산소유의 단점을 극복하고 소유의 재집중을 통해 투자대상기업에 대한 지배구조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여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한계가 존재한다. 이에 대규모 퇴직자산을 보유한 기관투자가로서 노동조합의 역할 강화가 모색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노동조합의 행동주의는 적극성을 띠지 못했지만 최근 엔론사나 월드컴의 파산을 통해 대규모 퇴직자산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역할 강화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산업별 연금펀드의 조성을 통해 새로운 노동조직을 만들어내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해 보인다.

“연금의 주주로서 노동자가 반노동경영 저지”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고령화와 맞물려 서로 상승작용하면서 연금제도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대체적인 경향은 부과방식의 공적연금이 적립방식의 공적 연금으로 바뀌거나 극단적인 경우 아예 적립형의 사적 연금으로 대체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관련해서는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체계적 개혁을 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국민연금 틀을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기여율과 소득대체율만을 조정하는 부분적, 모수적 개혁을 할 것인지 한창 논의가 진행중이다. 또한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기금운용위원회 개편, 보유주식의 의결권 행사 문제 등도 복잡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문제를 국민연금의 주요이슈에 포함시켜 논의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것도 주로 세계은행이 권고 내지 추천하는 캐나다 소득비례연금(CPP)의 운용회사의 이사회구조를 벤치마킹해서 논의할 뿐이다. 캐나다연기금운용회사의 사례는 정부와 정치세력으로부터 자율적이고 독립성이 강하긴 하지만 실은 이사회에 노동자든 사용자든 가입자 대표가 완전히 배제된 채 포트폴리오투자를 통한 금융수익성 극대화만을 지상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미국의 태프트 하틀리 펀드와 캐나다의 퀘벡주의 연기금 및 노동자연대기금 등 대안적 연금 지배구조 체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자산규모나 미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에서 캘퍼스 등 주요 공공부문 연기금에 훨씬 못미치지만 단순한 주가극대화 논리에 벗어나 고용안정, 일자리 창출, 환경보호, 아동인권보호, 전쟁방지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다수사용자(multi-employer)연금기금과 태프트-하틀리펀드 등 노조펀드의 지배구조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수사용자연금, 즉 노조기금은 태프트-하틀리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테프트-하틀리 펀드라고 부른다. GM이나 GE 등 미국 거대기업의 기업연금은 노동자들이 단일사용자와 고용계약을 맺기 때문에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ERISA)의 적용을 받는데 비해 태프트-하틀리 펀드는 노사대표가 동수로 참여하고 있는 이사회에서 연금의 운용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태프트-하틀리 펀드의 주된 활동은 여러 영역에 걸쳐 전개돼 왔고, 그 중 하나가 기업지배구조 개혁이었다. 즉, 경영자들의 인수합병반대시도를 철회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경영자보수의 시정 및 억제, 이사회독립성 제고 등 공적 연금이 주력했던 기업지배구조개혁안을 그대로 제기했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의 이해를 침해하는 경영자들의 전략적 의사결정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었다.

일례로 팀스터나 U.N.I.T.E는 K-마트의 인력감축과 해고 등을 저지했고 반 노동자적 경영진을 물러나게 했다. 또한 파업이 발생해 주가가 반으로 떨어진 휠링 피츠버그 금속회사의 경우 노조펀드가 이 회사 대주주의 모회사가 100억달러 이상의 노조연금자산을 관리하는 점에 주목해 파업해결을 위한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이밖에도 호텔 및 식당 종업원 국제연맹은 노조에 아주 적대적이었던 매리어트(Mariot) 가계에 맞섰다.

한편 태프트-하틀리 펀드는 기관노동주주로서 의결권대리 행사를 적극 활용했다. 이 때 의결권대리행사 주주제안의 주된 내용은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였다. 특히 이사회중 경영자보수위원회, 지명위, 감사위의 이사들은 외부이사= 사외이사로 충원하려고 했다. 나아가 이사회의장과 최고경영책임자를 분리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태프트-하틀리 펀드는 존재하는 각종 불리한 법적,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절반의 성공에 머무른 상태다. 이에 최근 이 펀드는 공적연금, 시민운동단체, 주정부, 지방정부 등 지역단체들과 연대를 통해 조세회피지역으로의 기업 이전 저지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태프트-하틀리 펀드와 함께 캐나다의 퀘벡 연금기금 및 노동자연대기금도 노동자 금융참가의 새로운 모델과 사회적 책임투자의 모범사례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캐나다의 퀘벡 연금기금 및 노동자연대기금은 운용수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다른 기관투자가들과 달리 고용창출과 중소기업육성, 지역사회의 발전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과 연대적 금융을 실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금기금과 뮤추얼펀드가 보유 자산의 운용에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는데 반해 퀘벡 모델에서는 포트폴리오의 기본 운용방침을 정하는 이사회에 노동자대표를 참여시킨다.

퀘벡 모델은 원래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는 일종의 국가주의 모델이었다. 1980년대 중반 한 때 퀘벡의 사회적 합의모델이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직면해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90년대에는 국가주도 모델의 약점을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통해 적극 보완한 덕분에 신자유주의적 모델이 강력한 위세를 떨치는 북미대륙에서 예외적으로 국가-시민사회-시장의 조화로운 연계, 경영자-노동자-주정부-연방정부-여성단체-지역사회간 사회적 합의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퀘벡 모델은 1983년 출범 이래 지금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에서는 나름의 한계도 존재한다. 비금융적 기준, 사회윤맂거 기준을 도입해 도덕이 금융시장에서 나름의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임노동자의 저축과 연기금을 주식시장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일 경우 주주와 임노동자라는 노동자의 이중적 지위 때문에 노동자의 자기분열이 더 심화될 수 있다. 이에 노동자의 연기금이 추구해야 할 최대목표는 이런 자기분열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사회책임투자는 연기금 사회화의 징검다리”
오건호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보좌관

우리나라 공적 연기금의 대표주자인 국민연금은 ‘연못 속의 고래’로 비유된다. 연못의 크기는 한정돼 있는데 고래의 몸은 자꾸 커지고 있다는 것. 현재도 상장주식 거의 절반을 살 수 있는 규모이고 향후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결국 몸이 불어나는 고래는 자신의 생존을 찾아 기존 채권중심 투자에서 주식투자, 대체투자로, 그리고 국내시장에서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이 진보진영에게 주는 과제는 무엇인가.

우선 진보진영은 천문학적인 국민연금의 발전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에 가담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연금의 규모를 축소하더라도 상당기간 동안 천문학적 규모로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국민연금의 사회화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 즉 우리도 외국 진보운동에서 논의됐던 ‘연기금 사회화론’을 공론화해야 할 때인 것이다.

연기금 사회화란 연기금의 특정계급이나 개인의 금융이익에 독점되지 않고 전 사회구성원의 이해를 위한 디딤돌로 구축하는 전략인데 크게 ‘연기금 운용의 사회화’와 ‘연기금에 대한 사회화’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거대규모로 성장한 연기금이 금융자본화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연기금을 공공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자산운용전략에 관련된 것이다. 또한 후자는 연기금의 지배구조를 민주화해 가입자가 의사결정의 주체로 참여하고 이 과정에서 역량을 갖추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운용은 국내 채권투자 중심에서 주식투자, 대체투자, 해외투자로 넘어가는 등 금융시장 부양론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주식투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SOC, 부동산, 사모투자(PEF), 등 대체투자로도 확대되는 추세다. 이와 더불어 공공부문 및 복지부문 투자가 사라지는 것과 해외투자가 활성화되는 것도 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면 진보적 시각에서 연기금 계급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는 연기금 운용의 사회화와 연기금 지배구조의 사회화를 요구한다. 즉 사회책임투자와 연기금사회화론의 결합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책임투자는 연기금사회화를 위한 징검다리이며 이를 위해 법제도의 개혁이 필요하기도 하다.

또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적극 모색해 공공성을 우선시하는 탈시장영역을 국민연금이 지켜낼 필요성도 대두된다. 이와 더불어 복지부문에서는 연금수급자를 위한 사회복지시설투자의 참여와 정부의 종합투자계획(BTL)에도 연기금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성을 추구하며 수익성 전망도 양호한 서민임대주택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고 민간부문의 사회책임투자에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나아가 SRI 펀드 조성을 위해 국민연금이 선도적으로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진보운동 진영에서는 국민연금의 운용위원회 구성에서 가입자 단체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등 지배구조의 민주화를 끌어내야 한다. 또한 국민연금의 기존 운용을 비판할 수 있는 진보진영의 모임을 만들어 공공성 회복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SRI 논의, 이데올로기에 갇혀서는 곤란”

앞선 세 명의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자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최정철 기업책임시민연대 운영위원장은 단도직입적으로 현재의 SRI 논의가 과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영미식이냐 유럽식이냐 여전히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다는 것. 이해관계자 경영과 지속가능경영, 사회책임경영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같은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구분하려고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최 위원장은 또한 연기금 지배구조에 있어 노동자 계급의 참여는 아주 당연한 것인데 이것이 왜 이론적으로 논의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데올로기 논의보다는 구체적인 법안 작성에 집중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그는 현 단계에서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어디든 한 곳만 SRI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선진국이 이룬 성과를 빠른 시일 내 달성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연기금 지배구조 개선 위한 비대위 구성 시급”

임대웅 에코프론티어 실장은 연기금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긴급비상대책위원회를 빨리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SRI는 노동운동의 영역이기보다 투자기법의 하나로 봐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노조에서도 금융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임을 역설했다.

임 실장은 UN 산하 금융 이니셔티브 회의에서 펀드 수탁자의 의무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강조하고 있음도 소개했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서는 ESG의 극대화가 필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 ESG가 투자수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개발이 어떤 형태로든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이미 20개 다국적 연금보험사들이 내년 1월 1,700억달러 규모의 ESG 투자에 동의하는 등 SRI를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투자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SRI는 진보 아닌 보수 운동”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연기금의 지배구조 개혁 논의와 사회책임투자 논의는 ‘무관하다’며 다소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연기금 지배구조 개혁 논의는 정부의 영향력에서 어떻게 벗어나고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냐와 운용의 투명성, 사용자 소비자 정부의 이사회 구성비율이 논쟁의 핵심인 반면 추상적이고 비계량적인 사회책임투자는 현 제도 하에서는 시민사회단체 전체가 모여도, 또는 노조 전체가 모여도 실행이 쉽지 않다는 것. 이러한 모순 상황에서는 제도 정비가 필수임을 유 교수는 강조했다.

유 교수는 또한 SRI가 사회운동의 정점이 되려면 이를 위한 공동체와 연대, 사회성이 존재해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함을 지적했다. 또한 가장 평판을 중시하고 이윤에 여유가 있는 기업이 SRI를 주도하는 현 상황에서는 블루칩 기업들이 곧 SRI의 대상기업일 수밖에 없는 한계도 고려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유 교수는 연기금 및 SRI 부분은 진보운동보다 보수운동과의 결합이 맞다며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것을 경계했다. 한국의 보수가 워낙 무책임해서 진보운동이 SRI까지 떠맡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도보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참여하게 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용어 따라잡기
● 윤리라운드 : 윤리적 행위를 기업 경영활동에 적용하려는 국제적 시도로서 경제활동의 윤리적 환경과 조건을 세계 각국 공통으로 표준화하려는 국제적인 움직임. 무역장벽 철폐를 목적으로 한 우루과이라운드(UR), 환경보호를 위한 그린라운드(GR), 부패추방을 위한 부패라운드(CR)와 더불어 21세기 기업경영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vUN 글로벌 컴팩 : 코피 아난 UN사무총장이 지난 1999년 1월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 총회에서 세계경제지도자들에게 동참 요구. 2000년 7월 기업들이 국제적으로 UN의 핵심기관, 노동계 및 시민사회 등과 함께 인권, 노동, 환경, 반부패 영역에서 10개 원칙을 준수하는데 주도적으로 동참하자는 목적으로 출범했다. 전세계적으로 2천여개 이상의 기업이 가입해 있다.

● ‘GRI보고서’ 발간 :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는 1997년 세리즈(CERES)원칙을 제정한 미국의 환경 NGO 세리즈와 국제연합환경계획(UNEP) 등이 중심이 돼 설립됐다. 전세계에 통용되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가이드라인을 입안하고 있다. 이 단체에서 발간하는 ‘GRI보고서’는 경제성, 사회성, 환경성 등 3개축을 고려한 CSR의 성과보고 기준을 제시해 이를 기업의 정보공개 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GRI를 채택하고 있는 기업은 우리나라의 삼성SDI, 현대차 등을 포함한 전세계 671개에 이른다.

● OECD 가이드라인 : 197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다국적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것을 일컫는다. 기업이 주주 뿐만 아니라 근로자, 지역사회, 환경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함께 고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OECD는 지난 2000년 이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기 전인 1999년에는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원칙과 외국공무원 뇌물방지협약 등을 제정하는 등 CSR의 규범화를 시도하고 있다.

●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다국적기업 등 세계 거대 기업들은 주주와 경영자는 물론이고 노동자, 소비자 등 지역사회와 폭넓은 관계를 가지면서 사회적으로 일정한 기능과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러한 기업들이 독선적인 경영이나 일방적인 이익추구를 하지 않고 사회성, 공공성, 공익성 등 사회에 대해 져야 할 일정한 책임을 말한다.

● 사회적책임(SR) 국제표준 제정 :  1998년 나이키(Nike)사의 아동고용사건, 2001년 엔론(Enron) 스캔들 등을 계기로 SR부문이 기업의 가치평가 및 투자유치에 중요한 요인으로 대두됨에 따라 2001년 9월,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소비자정책위원회(COPOLCO)는 CSR에 대한 표준제정의 타당성을 검토했다. 지난해 ISO 기술관리이사회(TMB)는 SR에 대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작성키로 결의하고 오는 2008년 3월 국제규격(ISO 26000)을 발간할 예정이다.

● 사회책임투자(SRI, 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 펀드매니저 등 금융투자가가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에 투자할 때 군수, 노동착취, 환경오염 등 사회적으로 해로운 계약이나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고 반대로 이로운 행위(자)에게는 투자하는 등 투자의 대상과 방식을 선별한 투자를 일컫는다. 최근 SRI가 고수익만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투자보다 장기적으로 오히려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다준다는 보고서가 속속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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