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국회에서는 항만노무체계 개편에 관한 4개 법안이 다뤄진다. 소관 상임위는 환경노동위가 아니라 농해수위이다. 그래서인지 노동계의 관심권에서 약간 밀려나 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이 통과되면 향후 항만 노무공급 형태와 지형이 크게 바뀐다. 항운노조의 미래에도 상당한 변화도 예상된다. 그래서 정부와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물밑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각 법안들은 모두 항만노무 공급권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항만사용자가 노동자를 직접·상시고용 하도록 하는 법안에서부터 센터를 설립하고 노동자 등록제를 실시하자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직접·상시고용은 정부의 의견이고, 센터 설립과 노동자 등록제는 한나라당과 항운노조의 주장이 반영된 법안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항만노무체계 개편을 두고 정부와 한나라당(항운노조 의견반영안)이 조용하면서도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지난 3월 항운노조 간부 비리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검찰은 일부 노조간부들이 취업을 미끼로 조합원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했고, 공금을 유용했다며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노조간부들이 잇달아 무더기 구속됐다.

이처럼 항운노조가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융단 폭격을 당하고 있던 시기에, 항만을 관장하는 해양수산부 한 켠에서는 항운노조가 독점해 오던 노무공급권을 박탈하고 항만사업자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항운노조는 이 법안에 강하게 반대했다. 검찰은 더 많은 항운노조 간부의 비리를 밝혀냈다. 정부와 여당도 항운노조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결국 지난 5월 항운노조는 비리 자체정화와 함께 노무체계 개편방안을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항운노조가 사실상 이같은 ‘항복선언’을 한 직후인 지난 6월초 해양수산부 고문변호사 출신인 박승환 한나라당 의원이 ‘항만노무체계 개편법안’을 대표발의 했다. 사업자가 항만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부산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 법안에 대거 서명했다.

하지만 부산과 인천을 중심으로 한 항운노조들이 이 법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고용불안을 느낀 항만노동자들의 항의도 이어졌다.

당황한 한나라당은 내부 논의를 거쳐 일단 박승환 의원안의 입법추진을 중단시켰다. 이어 같은당 김재원 의원이 지난 9월6일 의원 14명의 서명을 받아 직업안정기관에 등록한 노동자 가운데 노조가 노무공급권을 행사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박승환 의원안이 사실상 무력해졌음을 알게 된 해수부는 지난 9월9일 사업자가 노동자를 직접·상시고용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노사정 합의에 따라 이를 실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법안을 제출했다. 정부안은 박승환 의원안에서 ‘노사정 합의’가 덧붙여진 셈이다.

이후 배일도 한나라당 의원은 김재원 의원안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항만근로자파견센터를 설립하고 항만노동자등록제 실시 △등록노동자가 더이상 취업하지 않겠다고 할 경우 노조에게 공로보상금을 주고, 노동자에게는 전직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들을 담은 법안을 제출했다. 항운노조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한 내용이다.

이들 법안들은 크게 ‘정부안’과 ‘박승환 의원안’이 한 축이라면 ‘김재원 의원안’과 ‘배일도 의원안’이 다른 한 축이다. 두 축의 큰 차이는 항만노동자를 누가 고용하는가이다.

정부안은 사업자가 직접 상시 고용(상용직)하게 한 데 비해 배일도 의원안은 비영리법인인 센터에 등록한 노동자가 사용자와 계약을 체결하거나 파견하는 형식으로 일하도록 했다. 센터는 현재 항운노조가 하는 역할을 사실상 맡는다.

결국 이번 정기국회에서 사업자 상시 채용과 센터 설립의 대립각을 어떻게 푸는가에 따라 현재 항운노조의 운명이 좌우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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