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은 위기다. 위기라는 말이 너무 자주 나와 ‘식상’해질 만큼 모두가 위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위기의 민주노동당,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민주노동당 부설 ‘진보정치연구소’가 개최한 10일 토론회에는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토론을 벌였다. 현직 의원, 여론조사 전문가, 교수, 언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벌인 토론회는 ‘위기’에 대한 여러가지 진단과 대안들이 도출됐다.

“노동계 비리가 당 추락 불렀다”

당 지지도 현황 분석을 중심으로 홍형식 한길리서치 연구소 소장이 발제를 시작했다. 홍형식 소장은 민주노동당 지지율 변화 추이를 분석하며, “지지도 하락은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형식 소장은 “민주노동당 지지도 하락은 1차적으로 당내 요인보다 당외 요인인 노동계 사태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소장은 “민주노동당은 2004년 8월, 2005년 2월, 2005년 11월, 이렇게 3차례의 지지도 추락을 겪었다”면서 “이 시기는 LG칼텍스 파업 및 귀족노동자 논쟁, 민주노총 폭력사태 및 기아자동차 채용비리, 강승규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비리혐의사건 및 민주노총 지도부 사퇴 등 노동계의 문제가 터졌을 때와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홍 소장은 또한 한길리서치가 울산북구에서 패배와 지지도 약세의 원인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한길리뷰 64호’ 조사결과에 따르면 ‘노조간부의 부패와 도덕성 문제 때문에 지지도가 떨어졌다’는 답이 28%에 달했으며, ‘국민정서와 어긋나는 노동계의 투쟁 때문’이라는 답도 24.7%에 달했다. 노동계로 인해 떨어진 것이라는 답이 52.7%에 달하는 것이다. 반면 ‘지나치게 급진적인 주장을 펴기 때문’이라는 답은 20.1%, 사회전반의 보수화 때문이라는 답도 11.5%에 그쳤다.

또한 홍 소장은 “민주성은 독선과 독단으로, 반부패·도덕성은 부패로,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는 비정규직·하청노동자 착취로, 서민 대변은 노동귀족 대변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민주노동당의 지지율 하락은) 새로운 신생정당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수준이 아니라 일종의 배신감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민주노동당의 몇가지 과제와 관련해 △노동문제, 북한문제 등 성역에 해당하는 부분 △지나치게 조직화된 대중중심인데, 조직화 되지 않은 일반 지지층의 참여 문제 △안정적인 노동자의 이익만 대변하고 끌려간다는 인식의 문제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물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꼽았다.


“북구의 패배는 약이다”

노동계발 악제가 민주노동당의 추락을 불렀다는 주장은 토론회 초반부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노동계발 악제가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진 못했지만 민주노동당 내부의 문제가 더 큰 위기의 원인이라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홍형식 소장의 주장에 대해 노회찬 의원은 “지나치게 외부적 문제로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해석했다”며 동의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노 의원은 “현 정부 들어서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이 대대적인 ‘귀족노동자 이데올로기 공세’가 있었고,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설득력 있게 저항하지 못했던 것은 문제였지만 그것에서 당의 위기가 온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노동계 비리 문제가 아니었다고 해도, 지지율 추락은 지속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내부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 의원은 또한 “역설적으로 북구 패배 고맙다”면서 “이 계기가 아니면 가랑비 옷 젖듯이 위기를 현실로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도 “위기는 지지율 하락 때문이 아니라 진보정당으로서 질적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대근 경향신문 국제부장도 “선거에 졌기 때문에 위기가 아니라 재선거 패배 이후에야 위기라고 인식했다는 현 상황이 더 위기”라고 꼬집었다.

“차별화의 실패가 당의 실패”

불과 1년반만에 폭락한 지지율, 그 이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위기들에 대한 분석은 분석하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식 정치행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회찬 의원은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열린우리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기 때문에 위기를 불러왔다”면서 “신보수와 구보수의 이데올로기 구조에 열린우리당은 개혁좌파로, 민주노동당은 수구좌파로 비쳐졌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또한 “민주노동당의 위기의 책임은 50%가 최고위원회에 있었다면, 남은 50%의 책임은 권한을 위임받고 가장 적극적으로 당을 표현한 의원단에게 있다”면서 “당의 정체성을 정책과 실천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어떤 변화도 현실을 변화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차별성을 못 보여준 대표적인 경우로, 6월 국회에서의 윤광웅 국방부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에서 열린우리당 편에 섰던 것을 말했다. 한나라당에 이익을 덜 주기 위해 한 행동이 열린우리당의 아류로 비춰졌다는 지적이다.

이대근 국제부장은 “민주노동당이 자기 장점을 다 놓치고, 정쟁하는 작은 정당이 돼 버렸다”면서 “장기적인 사업보다 뉴스 타보려는 욕심에 빠졌고 그 사이에 부유세,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코미디가 됐다”고 말했다. 강점인 사회경제적 문제를 바꾸고, 노동자 서민의 삶의 질을 바꾸는 작은 실천에 집중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손호철 교수는 “급진성 때문에 민주노동당 지지율 하락이 온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와 부동산 파동 등 민주노동당에게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활동은 보이지 않았다”면서 “관념적 급진성에 묻혀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노회찬 의원은 지난 1년반의 기간에 대해 “선택과 집중보다 절충과 타협이 지배했던 기간”이었다면서 “내부적 정치적 갈등의 봉합, 정파갈등의 문제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노 의원은 또한 “모든 주제를 두고 싸우다 보니, 시작만 했지 실제 해낸 것은 없다”면서, “게릴라전을 해야 할 상황에서 진지전을 했고, 진지와 전선은 너무 떨어져 있었다”고 비유했다.

또한 노 의원은 “민주노동당은 시위는 열심히 해야 하지만, 효과 없는 농성은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대안과 새로운 유형을 제시하는 의정활동의 추진하며 대중과 결합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 해결사가 아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공통적으로 나온 말은 당의 소통과 의사결정을 지배하고 있는 정파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또한 2달여 동안 활동할 비대위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대근 국제부장은 “과거 노선투쟁 유산으로 파벌구성해서 미래의 민주노동당을 끌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해체해야 한다”면서 정파문제를 꼬집었다. 또한 “지도력이 너무 집중되서 문제인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당직공직 겸직금지 문제를 지적했다.

노회찬 의원은 “비대위 활동기간이 2개월이 안 된다”면서 “한건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는 투기적 발상을 버리고, 현재의 위기의 원인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하는 것이 비대위의 주요 사업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해결사’가 아니라, ‘공감대’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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