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총사퇴가 있었던 10월31일 저녁, 이용길 충남도당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천안을 찾았다. 지난 1년반 동안 민주노동당은 분란도 많았고, 구설도 많았다. 첫 원내진출, 새로운 지도체제이기 때문에 겪는 시행착오라는 말이 식상해질 무렵 치러진 10·26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진보정치 일번지 울산북구를 수성하지 못했고, 부천원미갑, 경기 광주, 대구 동구을에서 2천표 안팎의 암담한 득표에 머물렀다. 며칠간의 논란 끝에 당 최고위원회는 자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어디서 위기가 왔나,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때. 당의 지도급 인사 가운데 한명이자 민주노총 결성과 민주노동당 창당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용길 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았다.

“당대표 사퇴는 정치적 결단”

기자의 첫 질문은 ‘위기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였다. 이에 대해 이용길 위원장은 “우선 당대표의 사퇴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고 나섰다.

“김혜경 당대표의 사퇴는 참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당의 현재 처한 위기 국면을 해결하고 단기적 과제인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정치적 결단이라고 해석하며, 높이 사고 싶습니다. 대표와 지도부의 총사퇴가 당과 당을 지지하는 국민에게 새로운 기대를 불러올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고요. 뼈아픈 교훈을 ‘자성과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화위복의 기회도 자주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 위원장은 기자가 찾아가겠다고 했을 때, 이 말을 미리 준비한 눈치였다. 사퇴와 책임공방, 차기권력를 노린 정치공방이 오고갈 시점에서 선굵은 한마디였다.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어디서 온 것인지를 다시 물었다.

“4·15 총선의 의미를 재조직하고,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10·26 재보선에서 민심이반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대중조직의 위기는 당의 위기”

이용길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최근 상황이 당의 위기를 불러온 중요한 요인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4·15 총선 당시에도 민주노총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사실 4·15 총선의 승리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민주노동당이 인식됐기 때문 아닌가. 이용길 위원장은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의 위기가 심각한 당의 위기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4·15 총선 때 민주노동당을 지지했던 13.1%가 누구인지 정확히 분석하고 확인돼야 합니다. 그저 호감을 갖고 당을 찍은 사람보다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농민이기 때문에 당을 지지한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합당한 정치적 보상을 해주었나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노총의 위기는 진보정당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대중조직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당의 위기입니다. 더해서 당은 우리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정확한 답도 못 주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외연 확대 부분은 부침이 있었고, 당을 지지하는 고정지지층을 붙잡아 두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이즈음에서 당을 이끌었던 지난 최고위원회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이용길 위원장은 “당 안팎으로 험한 이야기도 있고, 혹평도 있는데 평가하기가 편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진보정당의 전망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이 요구되는 시기에 갈팡질팡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용길 위원장은 ‘당직공직 겸직금지 유지’를 결정한 지난 10월8일 중앙위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안했다. 당시 이 위원장의 10여분간의 연설은 중앙위원들의 표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현 위기는 당직과 공직을 분리한 것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원내진출 이후 주요 정치행위자였던 의원들은 이번 재보선 패배 책임론에서 한발 빠진 모양새인 것이 적절한 것인지를 물었다.

“원내의 지도력과 원외의 지도력, 이렇게 지도력을 이분법으로 보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의원단은 정치적 행동을 하지만 당헌당규 상 책임과 역할을 분담하고 있지 않습니다. 최고위는 최고지도부로서 중앙위 산하 기구인 의원단 활동을 지도해야 하는 것이고, 최고위가 당의 기본조직과 중앙당의 사업을 배치하듯 의원단의 역할도 배치하고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의원단의 책임론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의 1기 지도부이며, 진보진영의 상징성이 큰 의원단을 ‘지도’한다는 게 과연 말 그대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는 최고위원단의 역량과는 별개의 문제다.

“통제됐다 안 됐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고위는 당론을 결정하고, 의원단과 기본조직은 그 당론에 따라 정치활동을 하는 실천단위입니다. 최고위가 민주노동당의 기본조직, 활동부대의 역할을 극대화 하고, 이들의 정치활동을 지원배치 하는 과정에서 의원단이 함께 활동할 수 있도록 설계를 했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쌀 투쟁의 경우도, 최고위가 누굴 굶어라, 굶지 말아라가 아니라, 농민의 대중투쟁과 당의 기본조직이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이걸 고민했어야 했습니다. 원내전술은 의원단총회에 맡기면 됩니다. 의원단의 기본적인 활동은 의원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의원들에서 모아지는 언론과 국민적 관심은 더 모일 수 있도록 최고위원회가 지원해야 합니다.”

“독자노선 없이는 득표도 없다”

지역사업 역시 민주노동당이 난감해 하는 주제 중 하나다. 지난 1년반 동안 지역 활동 속에서, 입지와 영향력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눈에 띄게 틀려진 면이 있습니다. 지역에서의 모든 의제와 부문 활동 속에 당이 늘 있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환경이든, 노동이든, 교육문제든 무슨 이슈든 만들어지면 당을 먼저 찾아오게 됩니다. 지역 내 민중운동 세력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의 영역까지 당이 지역사회 운동을 주도하고, 힘을 보태줄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또한 지방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에 대해선 지난해와 올해가 확연히 다릅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지난 재보선에서 나타났듯이 '표'로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충격적입니다. 나는 이번 재보선 결과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의 1년여 동안의 활동이 당의 정체성을 잃어서 그런 것인지, 단순한 득표전략의 실패인지 면밀한 조사가 필요할 것입니다.”

일부에선 독자노선을 정확히 못 잡은 게 패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열린우리당과 개혁·진보세력으로 함께 비쳐진 게 감표요인이 됐을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있다.

“감표요인 정도가 아니라 결정적인 실패라고 봅니다. 자기 정체성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사업을 했어야 합니다. 판단의 근거를 줬어야 했습니다. 자기 자리를 명확히 만드는 데 실패했습니다. 지난해 국가보안법 집회 때 보니까 ‘김원기 의장, 직권상정 하라’는 플래카드 앞에서 당원들과 당 지도부가 모여서 촛불집회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당원들이 갈 곳이 없는데 지지층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민주노동당은 자기 땅을 넓혀야 하는데, 열린우리당과 함께 모색하거나, 한나라당 극복을 위한 개혁연합은 허구라는 겁니다.”

당의 기본조직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정치활동을 이용길 위원장은 강조했다. 또한 당의 최고지도부가 해야 할 설계자로서의 자세도 강조하며, 당의 독자노선을 부각해야 함을 역설했다. 무엇으로 쉽지 않은 이 과제들을 풀어가야 할까. 이용길 위원장은 당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당원들을 대상화 시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역조직과 당원들이 동원의 대상이 되고, 지침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당원들을 적극적으로 진보정당 일꾼으로 조직하고 양성시키려는 노력이 없었습니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실천을 지키는 것보다 대의민주주의에 기대는 면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당원들이 필수교육을 이수하는 것이 당원들의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참여와 교육이 당의 건강성에 기초적인 담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왕성한 지역정치활동의 기초가 될 것이며, 당의 정치활동으로 묶일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었다. 당원참여가 8만당원시대에서 유효한 것인가. 페이퍼 당원의 활동을 더 끌어내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이에 대해 이용길 위원장은 살짝 냉정하다 싶게 잘라 말했다.

“당원 할 사람과 후원회원 할 사람은 딱 구분해야 합니다. 당원 할 사람은 그만한 책임감이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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