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공동화, 역수입(buy-back), 국내 일자리 축소 등으로 대표되는 기업의 중국 진출은 최근 한국 노동계의 핵심 화두 가운데 하나다. 기업들이 잦은 노사분규와 높은 인건비 부담 때문이라며 보따리를 싸는 동안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강도는 자꾸 높아지기 때문이다.

<제조업 공동화 현황과 대응방안>이라는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2003년)에 따르면, 1990~2003년 사이 국내의 일자리 약 88만개가 감소했는데, 감소의 주요 원인은 제조업의 중국 이전이다. 중국 내 한국기업은 약 1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국내 일자리 10만개의 감소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은 크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며, 한국의 대 중국 투자는 2001년 이후 높은 증가세를 보이면서 현재 중국은 한국의 해외투자 1위 국가로 부상했다. 수출입은행 자료에 따르면, 대 중국 제조업 부문 투자금액은 1999년 2.9억 달러에서 2003년 13억 달러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자본쪽의 움직임에 대응해 한국의 노동계가 제조업 공동화 대책 마련에 분주한 가운데, 중국 유일의 노총인 중화전국총공회(ACFTU)에서 8명의 대표단이 국제노동재단의 초청연수 프로그램 참석차 17일부터 24일까지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중화전국총공회는 산하에 31개 지방공회와 10개 산업공회를 갖고 있으며, 현재 171만3,000개 조직과 1억3,400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총연합노동단체이기도 하다.

대표단 단장인 안찌엔화 총공회 정책연구실 처장(한국노총 정책본부장급)<사진>을 만나 총공회 간부가 바라보는 한국 자본의 중국 진출의 실상과 효과는 어떤 것인지, 한국 기업에 대한 바람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 해외자본의 중국 진출이 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중국 경제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바 크다. 특히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이 한국이나 중국 경제는 물론 아시아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 해외자본의 직접 투자가 중국 내 산업 육성과 배치되는 경우는 없는가.
“해외자본 진출과 국내 산업 육성 간에 모순이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서방의 고도화된 산업의 이동에 대항하기 어렵다. 하지만 외국자본에 대한 출자규제가 있어 외자는 중국정부와 지분배율에서 앞설 수 없다. 대개 중국정부와 외자 간 지분비율이 50대50 또는 51대49이다. 또한 관세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현대차가 부품을 한국에서 다 갖고 와서 중국에서 조립한다고 해도 중국이 손해 볼 일은 별로 없다.”

R&D 투자 늘려야

- 하지만 중국 내 산업기술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단순 부품조립식의 투자 확대는 긍정적이지 않은 측면도 있을 것 같다.
“개도국에 진출할 때 해외자본들은 CKD(부품상태로 구매해 조립하는) 방식을 많이 활용한다. 이는 중국 산업발전에 별 도움 안 된다. 이를 초월해야 한다. 중국 현지에서 R&D(기술개발) 투자를 더 활성화 했으면 좋겠다. R&D 투자가 CKD 방식보다는 자본이익률도 훨씬 높을 것이다.

중국 내에서도 학자들은 해외자본의 R&D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당장의 일자리 창출 등 성장을 이유로 GDP 성장률 유지·발전 가능성만 있다면 CKD 방식이라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공회는 아직 단일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론 R&D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직 CKD 중심이라 하더라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놀라운 수준이다. 1인당 GDP는 2004년 1천200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아직은 개발도상국에 속하지만 1978년말 개혁개방 이후 20여년간 연평균 9.6%의 높은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실제 1985년부터 1994년까지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0.2%에 달했고, 1995년부터 2004년까지는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연평균 8.2%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자국 기술력 향상을 위한 중국정부의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업계에서는 2002년 6월 중국 최대, 최고의 자동차 전문메이커인 장춘일기집단(長春一氣集團)과 소형차의 강자인 천진기차집단(??汽車集團·도요타)이 합병을 발표하는 등 인수합병 바람이 거세다.

이는 중국정부의 보이지 않는 조정에 의한 것인데, 중국정부는 WTO 가입 이후 시장 완전개방 전 인수합병을 통해 자국 자동차업계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 한국 기업들에 대한 이미지는 어떤가.
“솔직히 별로다. 특히 노사관을 바꾸고 작업장 안전 문제 등에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임금이나 근로조건은 (다른 해외투자기업에 비해) 아주 나쁘진 않다. 중상급 정도 된다. 하지만 구타나 공회(노조) 설립 거부 등 인권, 노동권 침해가 많다. 또한 악성 산재(사망사고)도 방지해야 한다. 중국의 법을 지키고 문화를 존중하길 바란다.”

- 공회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돼 있는 것으로 안다.
“25명 이상 사업장에 공회를 설립하도록 의무화 돼 있다. 공회법상 ‘응당(應當)’ 설립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벌칙은 없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이 ‘응당’을 ‘설립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으로 보기보다는 ‘설립할 수 있다’ 또는 ‘설립해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 것 같다.

또한 공회에 대한 오해가 있다. 한국의 노동조합처럼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노조와 중국의 공회는 다르다. 공회의 목표는 다원적이다. 근로자 이익뿐 아니라 기업, 국가 이익을 다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진출 한국기업도 발전하려면 공회와 협력해야 한다.”

- 중국에 진출한 적지 않은 기업들은 중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걸쳐 현지 국적을 얻은 제조공장과 판매회사를 거느리는 다국적기업이다. 한국의 현대자동차도 그렇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공장이 있는 다국적기업 소속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가이드라인 설정 등을 위해 다국적노조 간 네트워크 형성 필요성은 없는가.
“별로 없다고 본다. '소지화'(所持化)의 원칙이다.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들은 중국법에 부합하도록 기업활동을 하면 된다. 따라서 다국적노조 간 네트워크는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유명한 말도 있다.
“한국 문제는 한국에서, 중국 문제는 중국에서 풀어야 한다. 여전히 국가, 민족을 뛰어넘지 못하는 문제들은 있다. 만국의 노동자 단결은 (이와) 다른 문제다.”

- 그런데 중국 노동자들의 고용계약이 1년 단위로 체결되는 등 고용불안 우려가 크다. 이를 장기계약 또는 무기근로계약으로 전환하는 데 한국 등 다른 나라 노조들과 힘을 모을 필요도 있을 것 같은데.
“1년 계약이 고용불안 우려를 주는 건 맞다. 공회도 3년이나 5년 등 중장기 근로계약을 체결하길 원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중장기계약을 선호하지 않는다. 또한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이를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다만, 저숙련 노동자들이 기업 입장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장기 근로계약을 체결, 숙련 향상을 꾀해야 할 필요는 있다. 한국기업들도 그렇게 해 주길 바란다. 한국자본은 특히 기업 규모가 크니까 숙련노동자 보유 필요성이 더 크지 않겠는가.”

CKD 방식
CKD(Complete Knock Down) 방식으로 해외에 투자하는 것을 말하는데, 완전분해 수출이라고도 한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완성차 조립용 부품을 현지 공장에 완전 분해된 단위로 수출하는 것을 말한다. 현지 공장에서 차량조립이 차체-도장-의장 공정을 거쳐 이뤄지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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