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어야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곤 하지만 (건설운송 노동자들) 지금 보통 힘든 상황이 아닙니다.” 화물연대는 2003년 투쟁을 통해 리터당 210원의 유류보조금을 얻게 되었고, 덤프연대도 적지만 정부는 협상을 통해 수습하려고 한다. 그런데 레미콘노조는 건교부 등에서 만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레미콘 문제만으로는 대화가 안돼요. 어느 관계부처도 만나려고도 귀담아 들으려고도 하질 않아요. 힘이 있어야 대화라도 되는 거죠.”
건설운송노조 산하 덤프연대 파업을 지지 엄호하기 위해서도. 2001년 레미콘 파업투쟁 이후 침체된 조직의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도. “비조합사에서도 연락이 많이 온다. 지금 이후로 레미콘 동지들은 총파업의 각오를 다져야 한다. 한발 물러서는 순간 투쟁은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고야 말 것이다.” 지난 10월21일 전국건설운송노조 파업결의대회에서도 그는 한결같이 투쟁을 독려했다.
평범한 건설운송 노동자에서 노조활동가로
4개월 동안 복직 투쟁을 전개했고, 그 기간 건설운송노조를 만들었다. 건설운송노동자들의 모임인 믹서트럭협회를 노조로 전환한 것이다. 9월에 설립된 노조는 연말에 2,000여명의 조합원으로 늘어났다.
곧바로 시련은 또 닥쳐왔다. 2001년 초 유진레미콘 400여명의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원 해고됐다. “그대로 바라만 볼 수는 없었죠. 억눌려 있던 분노가 일시에 터져 나왔죠.” 4월부터 연말까지 7개월간 여의도에 레미콘 차량 수천대가 집결했다.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의 여론을 환기시켰지만 노동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생계난과 해고, 수배였다. 2,800여 조합원은 35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니 지금까지 후유증은 오래 지속되고 있다.
“패배한 싸움만은 아니지만 총파업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황에서, 높은 요구안을 가지고 무리한 싸움을 벌인 측면이 있습니다.” 7개월여 투쟁을 통해 사업장마다 지난 7년여의 임금 수준을 상회하는 운송비 인상 등 성과를 거뒀지만 상처는 깊었다.
건설운송노조는 2001년 파업 이후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레미콘 현장의 조직력은 이를 잘 보여준다. 레미콘 노동자 2만3천여명 가운데 조합원은 현재 2천여명이 채 안된다. 10%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2001년 2,800여명에 이르는 조합원이 350명까지 줄기도 했다. 박 위원장이 몸담고 있는 경기북부지부의 경우도 11개사 440명의 조합원이 현재 4개사 100여명으로 줄었다. 손배, 가압류도 58억 7천만원에 이른다.
조직을 확대, 강화하는 것이 가장 큰 급선무인 것이다. “현장은 비조합원과 도급업체로 분열되고 있고, 노동조건은 원점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투쟁이 없기 때문이죠.” 덤프연대의 힘을 빌어 건교부장관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는 처지. 박 위원장은 조직 확대와 함께 비조합사를 추동해 투쟁의 대오를 넓힐 각오다. “비정규 당사자들이 아우성쳐야 움직입니다. 정부든 노동계든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그렇다 치고, 노동계는 왜일까?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주체는 비정규직입니다. 그런데 양노총 간부들 중에 비정규 출신이 없어요. 비정규직의 현실을 알고 있는 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에요.”
지난해 열린우리당사와 타워크레인 점거농성을 하면서도, 아니 일상투쟁에서도 민주노총과 정규직노조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은 크기만 하다. “비정규 주체들이 협상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정규직노조가 사내하청 임금협상을 대신해 주는 것처럼 잘못된 것은 없어요. 정규직 시급 100원 올릴 때 비정규직 80원 올리고, 그러면서 ‘공동투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싸움이 장난이냐. 죽기 살기로 하는 거지”
민주노총 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밥그릇 싸움 아니냐. 누구 한 사람 비정규 노동자, 건설운송 노동자 문제 생각하기나 하나. 고민도 대안도 없으면서 말이야. 맨날 입으로만 투쟁이지.” 거침없이 튀어 나오는 욕과 직설적인 말들. 건설노동자 출신답게(?) 그는 자기표현에 솔직하다. 때론 지나치다고 할 수 있는 말도 박대규 위원장이기에 비정규운동가들 사이에선 오해 없이 듣고 이해하기도 한다.
내친 김에 박 위원장은 이야기를 더 이어 나갔다. “관변단체들 조차 평상시 이권과 자리싸움을 하다가도 위기상황에서는 똘똘 뭉친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내분과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의 민주노총 판은 자본과 정권의 전술에 놀아나고 있는 꼴이죠. 아마 그들은 쾌재를 부르며 이 사태를 즐기면서 노동계를 언제든지 통제가능한 집단으로 볼 것 아니겠어요.”
늦깎이 노조활동가 박 위원장은 활동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정파’ 문제라고 했다. “계파간에 나뉘어 싸울 때, 내 뜻과 관계없이 네편, 내편하며 사람을 평가할 때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난해 국회 앞 타워크레인 점거시에도 ‘계속 해야한다, 내려오라’며 정파간의 입장이 대립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파를 떠나 대의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있으면 찾아가 절이라도 하겠어요.”
박 위원장은 스스로를 ‘노동운동가’가 아닌 ‘노조활동가’로 자리매김했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활동이고, 현장의 제반 여건이 좋아지면 그것이 최고죠.” 거창한 이념과 노선을 들먹이는 것을 그는 좋아하지 않는다. “오직 욕심이 있다면 건설현장을 일시에 세워보고, 운수노동자들이 한날한시에 확 들이받아(총파업) 보는 겁니다.” 억눌리고 짓밟혀온 노동자가 이 세상의 주인임을 당당히 선포하는 그날. 자본과 정권에 맞서 한번 제대로 싸우기를 희망하는 통 큰 노동자. 박대규 위원장의 인터뷰 마무리 발언이다. “싸움이 장난이냐. 죽기 살기로 하는 거지.”
대다수 노동운동, 노조활동가들이 그렇듯 박 위원장도 집에 자주 들르지 못한다. 이달에는 파주의 집에 두 번 찾아갔다고 했다. “아빠! 밥도 굶으면서 그게 뭐냐. 하지마.” 3남매 가운데 둘째인 중학생 딸 이야기를 하며 무뚝뚝한 박 위원장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