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만이 길이다.’ 누구나 그렇게 말한다. 굳이 외국의 경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말은 아마 정답일 것이다. 그리고,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심상히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성과들이 쌓여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산별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앞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산별 건설운동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부터 점검해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매일노동뉴스>가 산별위원장들의 목소리를 중계한다. <편집자 주>


“답답합니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조직에서 비리사건이 난 것도 그렇고, 책임지고 수습되는 과정도 그렇고….”

산별 전환을 앞두고 있는 연맹 위원장들의 고민을 듣기 위해 김형근 민주노총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조연맹 위원장을 찾은 지난 20일은 공교롭게도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공식 사퇴한 바로 그날이었다. 자연스럽게 첫 질문은 민주노총 사태에 대한 김 위원장의 소회를 묻는 것으로 시작됐다.

한참 뜸을 들이다 어렵게 말문을 연 그는 이수호 전 위원장이 물러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민주노총이) 몸은 어른이 됐는데,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다”고 말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것은 투쟁도 아니고, 아귀다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입장.

“살다보면 어느 때라도 위기는 오는 법이죠. 다만 그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를 놓고 그 조직을 평가하게 되는데, 민주노총쯤 되는 조직이라면 당연히 ‘단결’로써 위기를 돌파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어려움을 깨치고 나가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말을 아끼는 그. “단결하지 못하는 조직에 희망이 있겠냐”며 ‘회의적’이라는 진단을 꺼내 놓는다.

“몸은 어른, 마음은 어린아이”

약력
59년  출생
86년  현대백화점 입사
87년  현대백화점노조 가입
94년  전국노동자대표자회의 위원
94~95년  민주노총추진위원회 추진위원
94~98년  현대백화점노조 위원장(4년 연임)
95~98  현총련 부위원장
97년  상업연맹 위원장
2001~현재  서비스연맹 위원장
김형근 위원장이 민주노총 사태를 평가하는데에서, ‘내분’이라는 잣대를 주요하게 들이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서비스연맹에도 비슷한 ‘내분’이 있었다. 지난 2002년 연맹 사무처 간부들이 ‘연맹 개혁’을 주장하며 ‘임원진 사퇴’까지 촉구했었던 사건이 그것. 민주노총이 ‘내분’에 휩싸여 있다는 김 위원장은 당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당시의 연맹 상황과 현재의 민주노총 상황은 비슷한 측면도 있고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조직 내 대결양상’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죠. 자기와 다른 생각 갖고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공식적인 직책에서 끌어내리려고 하는 방식은 매우 옳지 않다고 봅니다.”

누군가 혹은 어느 조직이 잘못을 했을 때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겠지만”, “그러한 상황을 이용해 반사이익 얻으려는 술책은 용납할 수 없다”는 그.

“우리는 어려울 때, 잘못될 때, 뭔가 여러 뜻이 모이지 못할 때 등을 대비해 규약과 규정 만들어 놓습니다. 그런 만큼 규약과 규정을 통해 운동과 이념을 관철시키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일단 물리력부터 동원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장한 조직에서 최소한의 룰은 지켜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 위원장은 “투쟁도 관행이 될 수 있다”며 “대화와 단결에 필요한 시점에 ‘투쟁’이라는 이름의 관행이 되풀이되는 것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한번쯤은 이런 계기를 통해 옳고 그름이 걸러질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지만, 이런 과정 통해 결국 악화와 양화가 구분될 것입니다.”

“소규모 연맹, ‘역량 분산’이 산별 전환 걸림돌”

2007년 산별 전환을 목표로 조직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고민을 들어보자.

구 상업연맹과 민주관광연맹이 서비스연맹으로 통합된 지 햇수로 5년째. 통합연맹 초대 위원장을 거쳐 현재 2대째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연맹 통합에 따른 상승효과를 조직화로 일궈 내지 못한 점이 못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서비스연맹의 조합원 수는 약 1만4천여명. 97년 상업연맹이 출범하고 그가 위원장을 맡았을 때 조합원 수가 약 8,000명이었다. 4년 뒤 관광연맹(4,000여명)과의 통합에 성공하고, 또 4년이 지났지만 조합원 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또, 현대백화점노조나 롯데호텔노조 등 연맹 내 대규모 사업장 노조들의 관료화 문제도 지나칠 수 없는 수준. 대규모 노조들이 자사 임금협상에 치중하다보니, 현재까지도 산별 전환은 요원한 과제일 뿐이다.

“대규모 노조들의 이기주의는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서비스연맹이 산별로 가기 힘든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솔직히, 산별을 논하기에 앞서 조직화조차 하기 어려운 여건이 상존하기 때문이죠.”

당장 2007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서비스연맹이라고 해서 ‘산별노조 건설’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이에 연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비스노동자 10만 조직화 및 산별노조 건설’을 중장기 사업으로 설정하고 △공동임단투, 주5일제 쟁취 △비정규직 차별철폐, 조직화 △업종분과 건설 △간부육성 등을 올 4대 과제로 선정했고, 특히 올해부터는 ‘산별기획단’을 운영해 산별 전환을 위한 기초 틀을 다지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의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복수노조 시대에 앞서 단위노조 위원장들도 고민은 많아요. 하지만 현재 ‘산별기획단’은 기초 회의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1년 내내 단위노조 투쟁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보니, 연맹 간부들의 역량이 분산되는 문제도 있고….”

한 사업장 투쟁 끝나면 또 다른 사업장 투쟁 시작되고, 여기 투쟁 마무리하기도 전에 저기서 또 투쟁이 일어나고…. “소규모 연맹이다 보니, 단위사업장 투쟁 지원하기에만도 힘이 달린다”는 김 위원장의 고민이다.


역량 분산, 누구의 문제인가?

그렇다면, 2006년까지 ‘산별기획단’ 운영을 통해 산별 전환의 틀을 다지고 2007년 전격적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하겠다는 연맹의 청사진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2006년 서비스산별노조 건설준비위를 결성할 때까지 ‘업종별 분과’를 운영, ‘업종별 분과’를 통해 공동의 투쟁과제를 모아내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업종별 분과’ 회의에서 산별노조의 건설경로 및 시기를 확정하고, 2007년 ‘서비스산별노조’ 건설 및 2008년 10만명 조직화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특히 그는 “산별 전환의 전초전으로써 ‘업종별 분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별개로, 현재 유통, 호텔, 외식, 학습지, 골프장 등 5개 분야로 구분돼 있는 ‘업종별 분과’ 역시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상황이다. ‘산별 전초전’이라는 기획 목적이 무색할 만큼, 현재까지 4~5차례 진행된 기초회의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진전이 없는 상태다.

“서비스연맹의 경우, 투쟁과 사업을 구분해서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현재는 사업장 투쟁이 연중 이어지다 보니, 정작 연맹 집중 사업에는 손도 못 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중앙의 역량이, 즉 간부의 역량이 분산되고 있는 상황이죠.”

‘역량의 분산’. 2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입에 10여 차례 오르내린 말이다. 이것은 단위의 요구가 중앙으로 집결되지 못한다는 의미일 수 있고, 단위노조의 요구에 치여 중앙의 힘이 흩어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연맹의 문제인가, 단위노조의 문제인가?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인가?

어찌됐든, 논의구조가 중앙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간부들의 역량이 분산됨에 따라 연맹은 ‘정책생산 부실’과 ‘조직화 미비’라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마주하게 됐다.

김 위원장은 특히 “대표적으로 어려운 것이 비정규직 조직화 문제”라고 지적한다.

“비정규노동자라는 밭은 도처에 널려 있는데 이들을 관리할 농부, 즉 연맹 간부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밭 갈 농부가 없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조직화 문제로 이어졌다. 그는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500만명으로 추산하는데, 이중 70~80%가 비정규직”이라며 “수백만 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를 묶어낼 단 몇십명의 현장 활동가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 조직 및 활동가 양성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5대 핵심전략사업에 ‘서비스유통분야’와 ‘특수고용직분야’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밭 갈 농부가 없다’며 한탄만 하고 있다가, 이제는 각 노조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농부’를 키워낼 수 있는 단계까지는 온 셈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현재는 기금을 모으고 있는 단계입니다. 기금을 모으면서 활동가 찾기를 병행하게 되고요. 민주노총에서 활동가를 키워내고, 잘 키워진 활동가가 핵심분야에 내려보내질 경우 파급효과는 적잖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김 위원장의 ‘기대’. 그렇다면 ‘우려’라는 것은?

“이 사업이 애초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될지 우려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실, 집행권이 안정돼 있을 때도 원활하지 못했는데, 집행권 불안정한 지금 상황에 잘 될지 걱정이고요. 서비스연맹과는 직접 연관된 사업이고, 민주노총의 핵심 사업이기 때문에 저의 입장은 최대한 조직적 과제에 복무한다는 생각입니다만….”

한편, 김 위원장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특히 특수고용직노동자 조직화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특수고용자 중 대표격인 골프장 경기보조원과 학습지 교사들의 싸움을 ‘법제화를 통한 승리’로 이끌어 낼 경우, 점점 다양한 업종으로 확대되고 있는 특수고용직을 조직화해내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하지만 “특수고용직 싸움이야말로 긴 호흡이 필요한 싸움”이라며 신중함을 내비추기도 했다.

“전교조가 10년 싸워 합법화를 얻어 냈듯이, 특수고용직이 법적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에 못지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시간을 얼마만큼 줄여 내느냐 하는 것은 연맹의 능력에 달린 문제겠죠. 노동3권이 제대로 부여되지 않아 현재 불안정한 노조밖에 만들 수 없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해, 특히 골프장 경기보조원과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3권을 되찾기 위해 연맹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최고 목표는 ‘감정노동’ 인정받는 사회 만드는 것”

지난 86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이후, 20년 가까이 서비스 노동자의 삶을 살아온 김형근 위원장. 그가 그리고 있는 ‘서비스 노동운동’의 상은 어떤 그림일까?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장 내일이라면 더욱 좋고, 언젠가 ‘서비스 연맹의 모든 노동자가 친절과 미소를 거부하겠다는 지침 아래 투쟁에 나섰다’는 보도가 신문 1면 톱기사를 장식하는 것이 꿈입니다. 다시 말해 서비스노동자 특유의 ‘감정노동’이 노동의 일부로 인정받고, 더 나아가 투쟁의 무기로 활용되는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감정노동’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규제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고객을 중시하는 직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이외에 부가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노동의 한 형태’”라고 강조한다. 특히, 사업장별 규모나 상황이 천차만별인 서비스연맹에서 “‘감정노동’이야말로 전 조합원을 아우를 수 있는 공동의 화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김 위원장은 남은 임기동안 ‘감정노동’이라는 ‘산별 시대’에 걸맞는 화두에 천착하겠다는 입장이다.

“평범한 백화점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연맹 위원장으로 일하는 지금까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얼마나 더 노동운동을 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요. 운동에 대한 열정이 식는 순간이 관료화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관료가 되기 전에 기필코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그.

“남은 임기동안,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서비스노동자들이 ‘감정노동’을 하나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투쟁의 무기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조직화와 산별전환이라는 눈앞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정노동’이라는 행운의 열쇠를 십분 활용하겠다”는 김 위원장 얼굴에 20년차 노동운동가의 고민과 결의가 동시에 드리운다.

김형근 위원장은 부인과의 사이에 고2, 중3인 아들 둘을 두고 있는 40대 중반의 가장이다. 여느 노동운동가와 마찬가지로 아들들에게 ‘가끔 집에 들어오는 사람’ 정도의 역할만 겨우 하고 있다고.


최근 들어 아이들이 “아빠, 이제 그 일 그만 하시면 안 돼요?”라는 말을 꺼내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마다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단다. 사춘기 지난 아이들의 눈에 비친 ‘민주노총’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어느 날 아들놈이 평소에 쓰던 샤프연필을 잃어버렸대요. 그래서 찾고 있는데,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너희 아빠 노조 위원장이면 돈 많이 벌텐데, 뭐 하러 잃어버린 것을 찾고 그러냐? 하나 더 사면 되지’라고 하더래요.”


혹여 아들이 상처라도 받은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그는, 천상 우리네 옆집 아저씨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직 미성년자인 아들들이지만, 1년에 한번쯤은 맥주 한두잔 기울이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고.


그런가하면 김 위원장은 보기와는 다르게(?) 이것저것 재주가 많다. 평소 가요 중에 ‘옥경이’를 즐겨 부른다는 그는 어디 가서 ‘노래 못 한다’는 소리는 안 듣는단다. 또, 소싯적엔 아마추어 권투선수로도 활약했다는데.


“젊었을 때 서울신인선수권 대회에 나가 3위에 입상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가 지금도 시간나면 줄넘기를 자주해요.”


2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하다보니 건강에는 무심해지기 십상. 한때 건강이 크게 악화됐던 경험이 있던지라, 최근에는 담배도 끊고 틈을 내 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얼마 전 열린 6.15마라톤을 완주했노라며 자랑스럽게 웃어 보이기도 한다.


현대백화점에 입사한 다음해인 87년 노조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김형근 위원장. 당시 백화점 임금 갖고는 전세금 올라가는 것도 못 따라갈 처지여서 노조의 문을 두드린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게 돈 벌어서 애들한테 집 한채 물려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우리 애들이 나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하게 만들어 주자. 그게 진짜 좋은 유산이다’라는 생각이 그의 20년을 가능케 했다고.


최근엔 이런 생각도 든단다. “최근 비정규직 늘어나는 것 보면, 내가 활동을 제대로 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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