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보수·관변단체와 대형유통업체들이 해운대와 부산도심에 잇달아 집회신고를 내는 바람에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들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13일부터 접수된 APEC 관련 집회신고 건수는 100여건. 주로 자유총연맹과 해병전우회 등 보수·관변단체와 대형유통업체들이 집회 30일 전부터 집회신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집회장소를 선점한 경우다. 이들의 집회 목적은 ‘아펙 성공개최 캠페인’이나 ‘직원결의대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들의 집회가 원천봉쇄 당한다는 것.

APEC 정상회의 기간인 11월18일 APEC반대범국민대회를 이미 오래 전에 예정해 둔 APEC반대부산시민행동은 10월19일 아침 경찰청과 해운대경찰서에 집회신고를 제출했지만, 해병전우회와 북파공작원동지회 등이 새벽부터 나와 먼저 집회신고를 하는 바람에 우선권을 빼앗겼다. 집시법에 따르면 경찰은 먼저 신고한 집회를 보장하기 위해 뒤에 신고한 집회를 금지할 수 있어 자칫 범국민대회가 차질을 빚거나 보수단체와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

9월30일부터 직장폐쇄를 하고 있는 대우버스도 직장폐쇄 이유에 APEC을 갖다붙였다. 대우버스 사측은 지난 6일 조합원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에서 “부산시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큰 행사인 APEC이 개최되는 11월에 대우버스는 노사분규가 조금이라도 행사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10월1일부터 11월말까지 공장가동을 잠시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이와 더불어 대우버스노조는 협력업체가 회사 앞에 집회신고를 하는 바람에 자기 사업장 앞에서조차 집회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뿐 아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차별철폐대행진도 위장 집회신고로 파행이 우려된다. 22일 해운대지역 대형할인점을 순회하며 차별철폐대행진을 진행하려 했지만 이미 관련 업체들이 해운대경찰서에 집회신고를 낸 상황이다.

이외 까르푸노조도 19일 사하경찰서에 까르푸 장림점 앞 집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사측이 먼저 집회를 신고해 애를 태우고 있다. 까르푸노조의 한 조합원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이렇게 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집회조차도 봉쇄당하면서 살아야 하느냐”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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