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도 벌써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한낮의 햇살은 아직 따갑다. 직사광선 내리쬐는 초록의 필드를 누비는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이라도 도심에서 온종일 피켓하나 들고 서 있기란 여간 고단할 일이 아닐 터.

전북에 있는 익산컨트리클럽에서 5년째 캐디로 일하고 있는 조숙연씨와, 10년차에 접어든 천은례씨<사진>를 만난 건 13일 낮 1시 국회 정문 앞에서다. 조씨와 천씨가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는 익산CC노조가 파업에 돌입한지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국회 앞까지 올라왔단다. 또 다른 2명의 캐디 조합원들은 피켓을 들고 청와대 앞으로 갔다고.


“노조 하려거든, 노동자성 인정받고 오라”

이들의 삶터인 익산CC에는 지난 2003년 노조가 설립됐다. 조합원의 대부분은 조씨와 천씨 같은 캐디들이다.

“노조가 만들어지고, 투쟁이 장기화 됐죠. 하지만 그 결과 캐디의 노조가입을 포함한 단협안에 노사가 합의할 수 있었어요. 44세까지의 캐디 정년 보장에도 합의했구요. 어리고 이쁜 아가씨들 뽑으려고 5년차, 10년차 넘은 숙련된 캐디들 해고하던 골프장이 단협 체결 후에는 함부로 해고를 않더군요.” 노조 문화부장을 맡고 있다는 조씨의 설명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1월, 기존 대원개발에서 운영하던 골프장이 성원개발로 인수됐어요. 인수 당시 성원개발은 노조 및 단협 승계를 약속했고요. 그런데 올 들어 단협 갱신기간이 다가오자 골프장측이 태도를 바꾸더군요. 캐디들의 노조활동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죠.” 골프장 노사갈등의 단골 메뉴인 ‘캐디의 노동자성 인정문제’가 익산CC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것이다. 골프장측 입장은 완강하다. “노조 활동을 하려면, 노동자성부터 인정받고 오라”는 것.

“노조 탄압, 결국 돈이 문제”

항간에는 골프장측이 매각 계획을 갖고, 본격적으로 노조 없애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져 나오고 있단다.

“골프장을 찾는 회원님들이 공공연히 하는 얘기가, 올 연말로 예정돼 있는 클럽하우스 및 코스 증설 공사가 끝나면, 곧바로 골프장이 매각될 거라는 거에요. 노조가 없으면 훨씬 높은 가격에 내다 팔 수 있으니까, 골프장측이 노조 없애기에 골몰하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말하는 천씨는 “우리가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닌데, 골프장측은 결국 돈 때문에 노조를 없애려 든다”며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어렵게 노조를 만들어놓고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싸우는 익산CC의 캐디들. 최근 골프장측은 지난달 29일 진행된 파업출정식에 참가한 조합원들에 대해 영업방해를 이유로 가압류까지 신청해 놓은 상태다.

골프장 주인은 바뀌어도, 탄압은 이어지고 있는 상황. 골프장이 매각되면, 또 같은 싸움을 처음부터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래서 늘 똑같고, 더더욱 괴롭다.

“노조는 고용안정 위한 최소한의 방패막이”

‘이렇게 피켓 들고 서있으면, 환노위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이 봐주지 않을까’해서 서울로 올라왔다는 조씨와 천씨. 이들에게 “임금도 올려 받을 수 없는데, 캐디들은 왜 노조를 만드는가?”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짠하다.

“노조 만들어 지기 전에는 골프장 직원들이 우리들을 시녀 부리듯 했어요. 캐디 본연의 일은 물론이고 캐디 관리하는 경기과 직원들 쉴 때 먹게끔 휴게실에 과자도 사다놓고, 비디오테잎도 떨어뜨리지 않고 빌려 놓고…. 그렇게 무시당하고 살았는데, 그나마 노조가 생기니깐 무시하는 게 덜하더라구요.” 천씨의 말이다. “무시와 차별이 줄었다는 건 비조합원들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단다. 조씨는 이렇게 말했다.

“노조는 고용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방패막이에요. 노조 없으면 혼자서 애들 키우며 먹고사는 골프장 언니들 다 굶어 죽는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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