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회계 146조, 특별회계 및 기금 106조, 총252조에 달하는 2006년 예산안과 기금계획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국민세금을 얼마나 거둬서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두고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 심지어 각 의원들 사이에 치열한 실랑이가 전개될 것이다.

예산안에 대한 국회심의가 착수되기도 전에 한나라당이 발표한 감세안을 계기로 때 아닌 감세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정부여당은 사회양극화 해소와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지출을 줄일 수 없다며 9조원 정도의 적자재정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하고 있고,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국민들의 세금 경감이라는 명분을 전면에 내걸고 총 9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관철시키겠노라 다짐하고 있다. 예산이 갖는 정치적·경제적 파급력을 너무나 잘 알기에 각 정당은 언제나 사생결단의 각오로 예산안 심의에 임하곤 한다.

문제는 조세형평

예산안 심의에 임하는 민주노동당의 원칙은 명쾌하다. 국민세금은 제대로 거둬서 제대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을 제대로 거둔다는 말은 조세정의, 조세형평성을 실현한다는 의미이다.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세금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한 방송국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1%가 ‘고소득자가 세금을 너무 적게 낸다’라고 답해 주었으며 41%는 ‘탈세가 너무 많다’라고 답한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대다수 국민들이 현재 조세체계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불만은 조세형평성의 문제라는 게 실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감세안은 세금감면효과가 일부 고소득층에게 집중되는 ‘부자들 세금 깎아주기’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의 감세안에 반대하면서 정부지출에 필요한 재원조달을 위해 간접세 중심의 증세를 추진하는 정부여당 또한 사회 양극화 해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의 감세안에 대해서도, 정부여당의 간접세 증세에 대해서도 찬성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은 앞서 확인된 대다수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기반하여 현재 조세체계가 지니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강화는 물론이고 소득세와 법인세와 같은 직접세 비중을 단계적으로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세금이 아깝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금을 제대로 사용한다는 말은 국민세금으로 조성되는 국가예산이 오로지 국민들의 행복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에 사용되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국민들이 느끼는 불만 중 하나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세금으로 내긴 하는데 진작 국가와 정부가 자신을 위해 해주는 게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현재 국민들을 주거와 교육, 의료와 같이 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분야에서 가장 큰 부담과 고통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진작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해주는 것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국민들이 자신의 납부하는 세금을 아깝다고 느끼게 되는 원인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부가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는 데 있다.

특정부류의 사람들에게 세금을 깎아주기 보다는 정상적으로 세금을 거둬 국민 모두의 복지 증진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기본 생각이며, 민주노동당은 보다 많은 예산이 국민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다.

내년 예산안을 심의하는 데 있어 민주노동당이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다음과 같다.

우선은 사회양극화 해소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실효성있는 사회복지대책 수립과 함께 관련 예산을 대폭 확충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미 정부여당은 예산안의 국회제출과는 별도로 ‘희망한국 21-함께하는 복지’라는 이름의 사회복지 확충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현재의 저출산 문제 극복을 위해 별도의 목적세 신설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정부의 구상과 계획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의미와 한계에 대해 명확한 평가를 수행해야 한다.

또한 올해 민주노동당의 핵심적인 사업이었던 무상의료·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의 미흡한 사회복지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 수준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통해 민주노동당만이 노동자 서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앞장서는 유일한 민생정당임을 부각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무기구입이냐, 복지예산 확충이냐

민주노동당은 한반도 평화실현에 반하는 대규모 군비증강사업에 반대하고 국방비 삭감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국민복지 증진을 위해서는 예산상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데, 이를 위해서는 정상적인 세금 징수도 중요하지만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얼마나 사용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현재의 넉넉지 못한 재정여건은 보다 많은 돈을 무기구입에 사용할 것인지, 국민복지 증진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방예산, 특히 전력증강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무기구입사업에 대해 철저히 반대할 것이다. 이는 평화를 버리고 대결을 선택하는 것이며, 복지 대신 무기를 취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국방부가 발표한 향후 15년간 총 683조원 규모의 국방비 증액계획이 북한에 대한 전쟁억지력 수준을 넘어서서 일본과 중국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군비경쟁을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님을 밝힐 것이다. 또한 겉으로는 자주국방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미국의 전략적 요구에 의한 대미 종속적 군비증강임을 부각시킬 것이다.

또한 예산·결산 심의 때마다 되풀이해서 지적되고 있는 국방비의 대규모 이월과 이용 및 전용을 통해 이른바 전력증강계획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국민세금이 낭비되고 있는 지도 철저히 규명해 나갈 것이다.

낭비는 없애되 공공 비정규 처우 개선해야

현재의 재정적자를 감안하여 정부에 대해 강도 높은 내부혁신과 예산낭비근절 노력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비와 업무추진비와 같이 연례적으로 편성·집행되는 경상경비에 대해서는 총액수준의 동결을 요구해나갈 것이다. 공무원 인원확충과 관련해서는 사회복지 공무원과 같은 대민봉사 인력을 집중적으로 확충하도록 촉구할 것이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는 일에도 앞장설 것이다.

또한 국도와 고속도로의 중복 건설, 고추 건조장으로 전락해버린 지방공항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예산낭비의 대명사로 지적되어 온 SOC 관련 예산에 대해서도 엄정한 감시를 수행해야 한다. 해당 도로의 통행량과 연계한 사업의 타당성을 철저히 규명해야 하며, 특히 민간자본 유치과정에서의 최소수익보장약정에 따라 매년 막대한 예산이 민간 사업자의 사업 손실을 메우는 데 허비되고 있는 현실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중앙재정이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지방자치단체간 재정불균등을 완화하고 지방의 재정자율성을 신장시키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당장 서울특별시를 중심으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특별시와 자치구간 세목교환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정리하여야 한다.

또한 많은 국고보조사업이 지자체의 자체재원 부족으로 인해 집행되지 못한 채 연례적인 이월과 불용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지원 비율을 올리거나 지자체간 재정 여건을 고려하여 지자체간 지원 비율에 차등을 두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특히 올해부터 상당수 사회복지사업이 자자체로 이양됨으로 인해 관련 사업예산이 축소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예산, 실용적 접근 강조돼야

국회진출 첫해인 작년, 민주노동당은 2005년 예산안 심의를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처음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전쟁예산 삭감, 민생예산 증액’이라는 기조하에 예산심의 10대 원칙과 110대 삭감·증액대상 예산 사업을 선정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대응했지만 사실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원내 소수파로서 정부와 거대 보수정당들을 상대로 우리가 원하는 예산을 따내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임을 실감해야만 했다.

올해 예산심의는 더욱 불리해진 대내외적인 여건 하에 전개될 수 밖에 없다. 원내 3당에서 4당으로 밀려났고, 의석수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10·26 재보궐선거로 인해 의원단의 역할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이렇듯 어려운 여건은 팀플레이로 극복해야 한다. 상임위 예비심사와 예결위 심사, 그리고 계수조정소위원회 활동에 이르기까지 당 정책위원회와 예결특위 의원실, 그리고 나머지 의원실과의 명확한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국정운영과 경제전반, 정부재정운영기조에 대한 입장도 중요하지만 사업예산 하나하나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도 무시할 수 없다.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과연 누가, 어느 정당이 자신의 고단한 삶에 희망과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다. 할 일은 많고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치솟는 전세값과 터무니없이 비싼 병원비가 민주노동당의 오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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