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세상의 모든 일’은 지도자에 의해서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꿔내는 더 큰 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어디를 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도자의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지면에서는 격주로 한국의 노사관계, 노정관계를 주도하는 ‘지도자’, 이른바 ‘선수’를 만난다. 경총 김영배 부회장,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김원배 노사정위 상임위원에 이어 이번이 다섯 번째다. <편집자주>



비 오는 날이면, 굳이 종로통을 걷지 않아도 따끈한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약간의 한기를 안은,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 7일, 주완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종로통에 서자 머리 속이 조금 복잡해진다. 그에겐 막걸리가 어울릴까, 소주가 어울릴까, 아님 맥주, 포도주….

막걸리나 소주가 노동계에 가깝고, 맥주와 포도주가 경영계에 가깝다면 지나친 도식일테고, ‘전(錢)’의 차이라면 용서가 될까? 하지만 그는 어떤 술과 매치를 시켜도 다 어울릴 것 같은, 늘 ‘한쪽의 편’만은 아닌, 그래서 누구에게도, 누구와도 피아관계가 아닌. 다만 ‘노동’이라는 뿌리에 기반해 ‘정의’를 찾겠다는 그. 노사 모두는 물론 정부에까지 ‘자문변호’를 하는 ‘공익’으로서의 주완 변호사를 만났다.

법은 공정한가, 과연

“나는 노사정을 다 하지만 세 군데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을 순 있다. 하지만 조심스럽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 지금의 노사, 노정관계를 보면 노사정 모두 전략이 부족한 것 같아 우려스럽다.”

자리에 앉자마자 얘기는 역시 최근의 첨예한 노정갈등 문제로 시작됐다.

“정부 일처리를 보면 우선순위가 뭔지 모르겠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2007년, 시행이 코앞이다. 우리나라 노조운동, 노사관계 틀 자체를 뒤흔들 엄청난 사안이다. 하지만 1년여를 앞둔 지금 교섭창구 문제 등에 대해선 어떠한 공론도 없다.”

지난해 9월, 노동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됨에도 비정규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또한 최근에는 노사관계 로드맵 34개 과제를 일괄로 국회에 내겠다는 입장만 밝히고 있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었다. “저런 식으로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한 상태에서 교섭창구 문제 놓고 대화하자면 어떤 노동계가 오겠냐. 좀 세련된 정치력도 필요한데 그게 없다. 일의 선후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

법의 공정한 집행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노동자들은 불법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마구 구속된다. 하지만 임금체불을 하고 도주한 사업주나, 노조 선거 및 활동에 부당하게 개입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은 거의 전무하다. 임금체불 해 놓고도 외제차 타고 다니는 사용자 몇십명만 구속해도 국민들은 쾌감을 느낄 것이고 법의 형평성도 유지될 텐데 근로자의 엄벌에만 경도된 느낌이다.”

그가 특히 강조한 대목은 임금체불 건이었다. 설령 부당노동행위를 당한다 하더라도 ‘단결’할 수 있는 ‘동지’들이 있는 노동자들은 그나마 낫지만, 아무런 ‘빽’도 ‘동지’도 없어 몇백만원 체불되고도 하소연할 길을 못 찾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해 정부가 더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저소득층은 임금체불, 갈취 등을 당해도 변호사 살 돈도 없어 속수무책 당하기만 한다. 부자 괴롭힌 사람과 가난한 자 괴롭힌 사람에 대해선 처벌의 경중도 달리해야 한다. 그래야 없는 사람들이 정부를 믿는 사회가 될 것이다.”

대기업노조가 주인공 돼선 안 돼

약력
1959년 출생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 합격
1988~93년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노무담당임원 겸 법률고문
1993~95년 유원건설(주) 감사실장(상무이사) 겸 법률고문
1995~2000년 회명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2001~2004년 HON 노동법연구소 소장
2004~현재 법무법인 지성 대표변호사, 건설교통부·노동부장관 자문변호사, 노동부 규제개혁심사위원회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 위원,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총·경총 자문위원
노동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노동계도 전략적이어야 한다. 이제 대기업노조(의 근로조건 개선 등)가 주인공이 되는 쟁점은 다뤄서는 안 된다. 비정규입법을 유리하게 이끌려면 고임금 노동자들에겐 좀 참으라고 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가 싸울 때, 더 나쁜 적부터 혼내는 것처럼 노동계도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비정규직 고용불안 등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고 그 이후에 상대적 고임금 문제를 다루는 것이 여론환기에도 좋지 않겠나.”

그는 얼마 전 사법연수원에 강의에서 “연봉 1억 가까이 되는 고임금 노동자들은 파업을 자제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쳤다가 일부 연수생들로부터 반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이렇다. “노동3권 행사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생계형 분규와 고소득자 분규는 차이가 있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는 벗어났기 때문에 소득수준에 맞는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다수의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동운동이라면 아직도 먹고 살기 힘든 노동자들의 권리구제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그가 말하는 ‘소득수준에 맞는 노동운동’은 당면한 비정규 문제 해법과도 맞닿아 있다. 노조운동 내부에서도 고민되는 지점이지만, 정규직들의 소득수준이 점차 높아지는 과정과 하나둘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과정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판단 때문이다. “같이 옆자리에서 작업하는데 정규직보다 임금을 절반가량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이 존재한 건 벌써 5년, 10년은 된 문제다. 이제 와서 문제 삼기 앞서 정규직의 자기반성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정규직에게는 오해스럽게 들릴 수 있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모 자동차 노조는 정규직 인력재배치 등은 반대하면서 사내하청 1만명을 모두 정규직화 하라고 요구한다. 자신들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를 넓혀보면 그 지역에는 자동차 사내하청보다 더 못한 임금,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자동차업계의 2,3차 밴더 정규직들도 있다. 이 문제를 외면하고 회사 내부, 그것도 정규직 이해만 추구하는 운동이 돼선 곤란하다.”

그는 정규직들의 상대적 고임금이 ‘장시간 노동’을 한 대가이기도 하고, 노동자간 격차가 심해진 것이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마구 투입하는 자본의 전략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규직노조운동의 변화를 거듭 강조했다.

“예민한 문제일 수 있는데, 결국은 정규직이 비정규직과는 우월적인 권위를 확보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것 아닌가. 숙련에 따른 능력이 출중하다면 단순조립공인 비정규직의 투입에 대해 그토록 고용불안을 느끼진 않을 텐데, 그것이 갖춰지지 않고 자신감이 없으니까 노조의 ‘투쟁’ 뒤로만 숨는 것 같다.”

존경받는 기업인이 없어…노동재단 만들자

물론 기업에게도 할 말은 많다. 특히 그는 몇몇 기업 인사노무업무 자문을 맡고 있기도 하다. “사용자들도 편차는 심하다. 그렇지 않은 곳도 많지만 노조를 배척하는 곳도 많다. A사는 심지어 납품회사에 노조가 있으면 거부반응부터 보인다. 그런 노무관을 갖고 있으면 자사 노조와 관계도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노사갈등이 첨예했던 B사의 최고경영층을 만난 자리에서 50억원을 내서 노동관련 재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단다. “그 돈으로 노동운동 하는 분들 유학 보내자고 했다. 외국 사례들을 접하면서 좀더 폭넓은 사고를 갖고 합리적인 운동을 할 토양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바로 그런 점에서 그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기업들의 노무관이다. 엄연히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노동문제가 ‘심각’하다고 말만 할 뿐 이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은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그룹 총수들이 신년사 등에서 노사문제만 해결되면 회사 잘 될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그런데 그 말이 진심이라면 가장 우수한 인재를 노사파트에 보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이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재벌총수들 2,3세들이 맡은 업무를 보라. 다들 파이낸스, 마케팅, 기획 파트들이다. 수많은 재벌 2,3세들 경영대 나오고 미국 가 MBA 따서 오는데 거기서 인사관리 파트로 논문 쓴 사람 있는가.”

비단 대기업뿐이랴. “중소기업 역시 인사관리는 권위적이다. 여전히 사장은 제왕으로 군림하고 아직도 일 못한다고 근로자들 조인트 까는 곳도 많다. 그런 사람들 사고방식으로는 노조가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못 참는다. 그런 곳에서는 노조 운동도 당연히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는 노동자에게 다가가는, 친근한 노무관리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장이나 임원이 노동자들 야근할 때 김밥 시켜 같이 먹고 애로사항 듣고 개선조치 하면 노사관계가 애시당초 폭력적일 수 없다는 얘기다. “우리 문화는 상당히 ‘정(?)을 강조한다. 노무담당 임원이 조합원 경조사에만 다 참석해 보라. 노조도 그 노력을 봐서 대립적으로 거칠게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어진 얘기는 ‘기부문화’다. “뉴욕시민들은 록펠러재단에서 수도를 무상 제공하기 때문에 수도값을 안 낸다. 가진 자가 자기 잘난 체 하기보다 덜 가진 자를 위해 나눌 때만이 존경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실정을 보라. 오히려 중소기업 사장들이 멋지게 기부할 줄 알지 진짜 돈 번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있는 사람은 제 자식만 챙긴다는 생각에 국민들로부터 더 큰 불신만 유발할 뿐이다.”

비정규법, 미흡하더라도 서둘러야

인터뷰 시작서부터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그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법안은 시급히 처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선 전체 노동자의 56%가 비정규직인, 기이한 현상에 대한 그의 분석은 우선 근로기준법 제30조의 문제다. “인건비 절감 차원, 노무관리 효율화 차원에서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측면도 있지만 근기법 30조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이 조항이 해고를 어렵게 한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기업이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고정된 비정규직’, ‘고정된 정규직’의 개념에서 빨리 탈피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시장 상황에 따라 비정규직으로 입사를 했더라도 평생 비정규직으로 빠지는 ‘함정(trap)'이 아닌 정규직으로 가는 '다리(bridge)'가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유럽쪽의 시도를 차용할 필요가 있다. 많은 부분을 계약직으로 뽑아놓고 1년이나 2년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험 등을 거쳐 우수인재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사회구조적인 통로로서 역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와 함께 그는 파견에 대해서도 허용업무를 넓히는 대신 처우개선과 탈법방지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가 비정규입법안을 낸 지 벌써 1년이 지났고, 국회 주도의 노사정 협상이 있었지만 6개월 가까이 더이상의 협상도, 법안 수정도 없었다.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 노동계가 불만 갖는 건 미흡하다는 이유인데, 이는 뒤집어서 보면 사용자에게는 제약이 되는 것이다. 우선 지금까지 의견이 모아진 내용 정도라도 입법화시키고 미비한 점은 추후 과제로 남겨야 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노동계의 태도가 좀더 솔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동계는 한번 법을 제·개정하면 다음번에 그걸 고치기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만 보지 말고 그 사이에 비정규직 고통이 얼마나 심화됐는가 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득이 되는데 양이 부족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동안 실질적 피해자는 속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와 함께 그는 비정규직 사용에서 고민해야 할 과제도 던졌다. 기업의 각종 업무 가운데에는 필수업무가 있고, 필수업무 중에서도 핵심업무와 비핵심업무가 있다. 필수업무이지만 비핵심업무라면 기업 입장에서 아웃소싱해서 비용도 절감하면서 핵심업무에 집중하고 싶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자회사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은 핵심업무이지만 ‘포장’하고 ‘운반’하는 것은 비핵심업무인데 포장, 운반까지 다 정규직을 써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말이다.

그는 이러한 경영계의 필요(need)까지도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한 직무분석 등을 통해 정규-비정규의 업무 영역을 제대로 구분해 내고, 정규직에겐 숙련향상 등을 통해 권위를 확보하는 한편 비정규직에겐 처우개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한 인력운용 방안이라는 것이다.


위장도급 관련 법원 태도, 이전부터 진보적

비정규직의 개별 근로관계에서 보호와 함께 절실한 것은 집단 노사관계 부분이다. 특히 간접고용노동자들은 실제 근로를 제공하고 있는 업체와는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쟁의권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교섭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법부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됐다는 지적을 받지만 적어도 위장도급 문제에 관한 한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98년 파견법 시행 전에도 위장 자회사를 운영하던 건설회사 등에 대해 실질 사용자 개념 부여해서 모든 법적 책임을 부여했다. 그런 20, 30년간의 관행이 축적돼 파견법 고용의제도 폭넓게 해석하는 판결도 나오는 것이다.”

양 당사자 간 형식적인 계약은 맺지 않았지만 실질 관계를 따져 법률적 효력을 부여하는 것을 ‘창설적 효력’이라고 하는데, 간접고용노동자 역시 원청(사용사업주)과의 실질적 고용관계를 인정하는 데는 그래도 법원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를 노동3권 행사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

“일본에선 파견근로자노조가 사용사업주에게 단체교섭 요구를 할 수 있다는 판례도 나온다.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은 99.9%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쟁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사용사업주) 사업장에서 쟁의가 가능하다는 논리구성으로 이어진다. 일본에서도 아직 보편화된 판례라고 보긴 어렵지만 이와 같은 판례의 논리선상에서 라면 사용사업주의 사업장에서 파견(혹은 도급)근로자들의 쟁의행위도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긴급조정 발동권자가 왜 노동부장관?

로드맵에 제시된 몇가지 쟁점들에 대한 의견도 물었다. “노동문제에서 절차위반에 따른 것이나 부당해고에 따른 것이나 형사처벌은 없어져야 한다. 또한 불법 쟁의행위라 하더라도 형법상 업무방해보다는 폭력 등의 위법행위에 대한 제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어 그는 “직권중재 존치 여부도 신중히 판단해 봐야 한다”며 “대신 이 제도를 없앤다면 노동계도 대체근로 조항을 조금 완화시켜 노동권과 경영권 모두를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이 없음에도 복수노조 교섭창구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가 늘 ‘쌍’으로 붙어 다니는 것과도 같은 논리라는 것이다.

그는 이와 함께 긴급조정권 발동권자가 대통령이 아닌 노동부장관이어야 하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노동장관은 평소 노사를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채찍(긴조권 발동권)까지 부여하면 어떤 노사가 장관과 대화를 하려 하겠나. 미국에서도 긴조권 발동권자가 대통령인 것은 긴조권 발동을 신중하게 하자는 뜻도 있지만 채찍은 대통령이 들 테니 장관은 끝까지 조율, 조정작업을 하라는 뜻이다.”

덧붙여 그는 “아예 긴조권 발동을 사법부에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고 한다. 노동법에서 긴조권을 삭제하는 대신 법원이 지역사회 공익 등을 감안해 쟁의금지가처분을 내리는 방식 말이다. “정부는 조정자 역할을, 사법부는 단죄하는 역할을 서로 나눠 맡아야 한다. 때리는 역할과 조정하는 역할을 같이 하니까 정부 신뢰가 떨어진다. 바로 좀 전에 때렸던(아시아나조종사노조 긴조권, 보건의료노조 직권중재 등) 정부가 교섭창구 단일화하자고 하고, 비정규법 만들자고 하면 말이 먹히겠는가.”

노·사 사건 다 맡는다, ‘균형점’이 중요…배무기 선생, 그만한 분이 없다

“저기 앉아있는 ㅇㅇㅇ변호사 답해보세요”


하지만 이해관계가 때론 극과 극처럼 상충되는 노·사·정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또한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원고와 피고, 승자와 패자가 ‘꼭’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 쪽은 승복에 앞서 불만을 터트릴 것이 분명하다.


몇해전 매각 관련 고용승계 문제로 다투고 있는 한 노조가 주최한 토론회 자리에서였다. “나는 입법론으로는 당연 고용승계설에 찬성이었다. 그런데 법원 기조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같이 다수 학설을 민법에 넣는 방안을 고려해야지 지금의 해석론으로는 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방청석에 있던 한 조합원이 내가 노조와 반대입장을 취한다고 욕설을 섞어 ‘저 ㅇㅇㅇ변호사 답해보시라’며 질문을 하더라.”


그는 노조가 주최한 토론회라고 해서 부지런히 노조편만 들기보다 뻔히 그들의 주장과 상충되는 걸 알면서도 정확한 현실 판단 속에 이길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더 그들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결국 그 노조는 안타깝게도 최종심에서 패소했다.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 길이 내 길


노사정 사건을 모두 맡다보니 ‘경계’를 넘는 순간도 없진 않았을 것 같았다. “아슬아슬한 순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변호사로 평생 살겠다고 한 나는 노동운동을 팔아서 그 이상의 직(職)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다. 노동자들을 사랑하니까 이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이 일이 즐겁다.”


즐겁다는 그 앞에 놓여진, 아니 스스로 과제라고 생각하는 일은 산적하다. “통일시대를 대비해 북한의 노동관계를 지원하는 역할도 하고 싶고, 이제 걸음마 단계인 한국노총 법률원이 제자리를 잡는데 좀더 열심히 기여하고 싶다.”


실제 그는 한국노총 자동차노련과 함께 무료 법률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데, 노동3권 지원도 필요하지만 임금체불이나, 일하다 사고 낸 것, 전세금 떼인 것 등 노동자의 생활 속으로 들어간 실질적인 법률구제 사업도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면서 노사정이 당면한 노동현안을 놓고 첨예하게 갈등만 하기보다 공동행보가 가능한 일부터 머리를 맞대자고 제안한다. “우리를 식민통치했던 일본을 지탄하지만 우리가 가해자였던 베트남을 위해선 뭘 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가장 쉬운 일이 직업훈련 지원인 것 같다. 밀링, 용접, 선반 등 각종 기술훈련 비디오 자료 등을 번역하고 은퇴한 60대 기술자들 정부 지원으로 보내 베트남의 기술수준을 향상시키면 좋겠다. 노사정이 공동 목표로 삼고 진행하면 어려운 과제가 아닌 것 같다.”


피는 못 속여


그는 지금은 20년을 넘긴 베테랑 변호사이지만 처음부터 ‘노동’을 택했던 건 아니었다. 그의 석사학위는 ‘국제거래법’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변호사 생활도 대우그룹에서 시작했고 이어 유원건설에서도 일반 변호사 업무를 했다.


“피는 못 속이나 보다. 거슬러 가면 고등학교 때부터 새문안교회에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했다. 지금은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몇몇 친구들과 ‘너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몇쪽까지 읽었어?’ 하며 공부를 같이 하기도 했다. 그 뒤 무역하러 들어갔던 대우그룹에서 87년 이후 민주화 투쟁과정, 노동운동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노사관계에서) 사용자 입장에서 할 일이 있다고 봤지만 오래 못 있었다. 대우에서 나와 노사문제를 하고 싶지 않아 유원건설에 갔지만 앞으로의 방향을 잘 못 잡겠더라고. 그래서 다시 노동판으로 돌아왔다.”


‘균형’, 즉 ‘정의’를 기본선으로 생각하고 있다던 그는 “무엇보다 노동법 변호사는 근로자 사건 맡아서 이겼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사용자 대리인으로 해고 사건을 맡았을 때는 이겨도 돌아서면 그 근로자의 생계문제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을 지루수 없다. 노동법 변호사만이 갖는 느낌인 것 같다”고 한다.


그런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고 배무기 울산대 총장. “그만한 분이 없다”던 그는 작고한 선생을 회고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실력 있고 겸손하고 대인관계 좋으시고 권위적이지 않고 다정하고 욕심 없으시고… 모든 걸 갖추신 분인데, 너무 큰 별이 빨리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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