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회투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노동자가 중심이 된 자주와 연대의 노동복지운동입니다. 사회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변혁이 필요합니다. 양극화와 빈곤, 노동복지의 격차 해소를 위해 새로운 투쟁을 해야 합니다.”

사단법인 한국노동복지센터가 새로운 닻을 올렸다. 그런데 출사표(?)가 독특하다.

“자주복지와 복지연대를 통한 희망만들기.”

좀 생소한 개념인 것도 같다. 하지만 그 비전은 만만치 않다. 노동운동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에 이은 사회투쟁의 개념을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참여 인사들의 면면도 양대노총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변호사, 학자, 여야 국회의원 등 스펙트럼이 넓다.

한국노동복지센터는 이 출사표를 오는 13일 오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양극화 현실과 한국형 노동복지의 방향 및 과제’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사장 취임식 및 노동복지포럼을 통해 밝힐 예정이다. 새로운 신고식인 셈이다.

새 지휘봉을 잡은 황원래 신임 이사장(3대)을 지난 7일 만나봤다.

- ‘자주복지’와 ‘복지연대’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의미인가.
“자주복지란 좁은 의미로는 노동자(조직)의 자발적 기여를 통해 조성된 기금으로 복지서비스를 한다는 것이고, 넓은 의미로는 서비스 과정에서 노동자의 의사전달과 직접참여를 보장, 복지서비스를 하겠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복지의 상품화를 탈상품화 하자는 것이다.
또한 복지연대란, 노동자가 주체가 돼 자주복지를 하되, 노조 등 노동복지 관계자가 연대해 ‘새로운 노동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국가·사회가 하지 못하는 복지서비스를 우리가 주체가 돼 의제를 선도화 하고 여론을 환기해 노동복지운동을 펼치자는 것이다.”

노동복지의 양극화 심각하다

- 좀 개념이 어려운 것 같다. 새로운 기치를 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복지상황을 보자. 복지는 국가·사회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한국사회의 국가복지는 사실상 사각지대였다. 2000년대 들어서야 4대보험 확충으로 간신히 기업복지를 앞서는 꼴이다. 하지만 국가복지는 국가주의적 관료화가 형성되고 국민과 노동자는 수혜를 받는 의존적 입장이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기업복지는 어떠한가. 대기업 중심의 기업복지는 정규직 대 비정규직, 조직노동자 대 미조직노동자, 대기업 대 중소영세노동자라는 양극화를 보여 왔다. 게다가 노동자의 참여를 방해한다. 예컨대 삼성이 임금과 복지혜택을 높여주었지만 노동자는 주체적이지 못하게 한다. 이밖에도 안의 재원, 즉 사내근로복지기금 등은 기업 내에 머물러 있다. 이것을 끄집어내 ‘사회화’를 해야 한다.”

- 국가복지와 기업복지를 넘어서는 노동복지의 대안이 자주복지란 말인가. 앞서 이것을 ‘새로운 노동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해 왔다.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불안전고용(비정규직) 816만명, 빈곤층 716만명, 절대빈곤층 401만명, 신용불량자 362만명, 준실업자 149만명, 자살률 하루평균 32명으로 OECD국가 중 1위. 일해도 가난한 사회, 양극화와 복지부재,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젠 ‘사회투쟁’이 필요하다. 현장은 죽고 상층만 남았다. 사회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변혁이 필요하다.”

- 필수재화의 사회화란 개념도 낯설다.
“필수재화, 즉 주거, 교육, 의료, 노인요양 등을 국가·사회가 보장해야 하는데 이것이 안 되고 있다. 이를 위해선 투자의 사회화도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국민연금기금이 현재 180조라고 한다. 국민연금기금의 독립, 안정성이 필요한데 증권상품화 투자 등 불안정하기만 하다. 이 기금은 필수재화에 투자돼야 한다. 또한 필수재화의 사회화가 이뤄지면 사회적 일자리도 발생하는 등 노동복지가 달성될 수 있다.”

이젠 복지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 현 정부의 복지정책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역대정부에 비해 복지정책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양극화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노동유연화의 보완책으로 복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복지가 부족하면 일하라’는 건데 말도 안 된다. 노동복지는 노동시장정책과 노동복지정책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노동과 복지를 연계할 게 아니라, 적극적 노동시장을 창출하고 복지정책은 복지정책대로 시행해야 한다.”

- 한국노동복지센터는 오랜만에 모습을 다시 드러낸 것 같다. 그간 경과는?
“3년 전 당시 몇몇 역량 있는 활동가들이 모여 한국노동복지센터를 창립했다. 김금수 현 노사정위원장, 김영대 현 근로복지공단 감사가 각각 초대, 2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때는 중소·영세노동자의 복지증진을 위한 선택적 복지제도의 현실화, 복지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개발연구사업 등에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주체적 역량을 키우지 못한 관계로 (사업이 이어지지 못하고) 사실상 휴면상태에 빠졌다.
그런 가운데 기존의 컨셉보다는 자치와 연대를 기치로 우리가 스스로 먼저 노동복지사업을 벌여 국가·사회에 요구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내가 3대 이사장을 맡게 됐고 노동자 대중이 누구나 참여하는 ‘열린노동복지센터’를 만드는데 나서게 됐다.”

- 기존의 컨셉이 확 바뀌었다는 것인가? 핵심적인 내용은?
“새로운 컨셉은 노동자가 다함께 노동복지운동을 벌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실행이사제를 도입했다. 일선 노동운동 지도자와 활동가가 직접 참여해 노동복지운동을 하자는 것으로, 현재 100여명의 실행이사가 활동한다. 앞으로 200명이 목표다. 또 후원회원을 1천~2천명을 모집해 안정적 기금을 마련하고자 한다. 누구한테 손을 빌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 취지에 동감하면 누구나 실행이사가 될 수 있다. 실행이사는 약속한 회비도 내야 하지만 1개 이상의 센터가 벌이는 노동복지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정파와 이념 뛰어넘는 복지운동”

약력
황원래 이사장은 동양화재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사무노련 창립 부위원장을 거쳐 사무금융연맹 위원장 직무대행, 진보정당추진위(민주노동당) 기획위원장,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사무금융연맹 상임고문, 손해보험노조 지도위원, 민주노동자연대 자문위원, 서울노동포럼 운영위원, 매일노동뉴스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 이사진이나 실행이사 면면이 흥미롭다. 정파에 얽매이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 센터는 이념이나 정파로 모인 것이 아니다. 내가 지난 20여년간 노동운동을 하면서 만나왔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한다. 센터의 취지를 설명하면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했다. 사회가 험악해졌으니 이념과 정파를 넘어 사업과 실천으로 함께 하자고 했다. 앞으로는 조직노동자 중심이기보다 사회적 약자의 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무엇인가?
“앞으로 우리는 크게 △자주복지와 나눔운동 △복지단체 연대네트워크 △자치연대적 복지운영 △복지정책연구 등의 사업을 벌일 거다. 나눔운동은 예컨대 ‘끝돈 모으기’나 ‘한달 한끼 굶기’, ‘사내복지기금 복지나눔운동 할애 운용’ 등을 통해 기금을 모아 중소영세·비정규·이주장애·여성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복지사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또 전국 70여곳의 노동복지관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다. 지금의 노동복지관은 노동복지실현에는 미흡하다. 노동자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노동복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 12월부터 퇴직연금제가 실시되지만 노동계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심각성을 공유하고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하겠다.”

-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와 노조가 ‘동력’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노동자의 참여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아직 노동복지에 대한 전문가가 없고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임금과 정치투쟁을 하다 보니 노동복지투쟁, 사회투쟁이 부족했다. 때문에 교육프로그램이 우선 필요하다. 현장에서 어떻게 노동복지를 실현할 수 있을지 중앙은 아카데미를 통해 정책을 제공하고 지역은 연맹과 단체를 통해 지역복지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 또한 이것이 곧 현장복원을 위한 길이다.
이제는 사회임금을 갖고 투쟁하고 노동복지란 의제를 갖고 새롭게 ‘밭갈이’를 해야 한다. 조직노동자는 물론 현장과 지역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대중적으로 노동자가 다함께 간다면 예컨대 ‘노동자공제회’ 같은 것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한국형 노동복지 모델을 만들겠다”

- 한편으로는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이 해온 사회개혁투쟁, 사회공공성투쟁 등의 연장선인 것도 같다. 무엇이 다른가.
“큰 틀에선 같은 맥락이다. 사회공공성투쟁도 사회임금 투쟁하고 민영화에 반대하고 사회화하라는 것 아닌가. 다만, 접근방법에 있어 센터는 ‘노동복지운동’을 통해 풀겠다는 것이다. 투쟁을 통해서든, 나눔을 통해서든, 기업의 사회화(초기업단위연대)이든 모두 가능하다. 지금 비정규기금을 걷겠다고 하지만 잘 안 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노동자가 스스로 움직이고 실천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센터는 노동계의 사회개혁투쟁과 사회공공성투쟁을 측면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될 거다.”

- 센터가 모범으로 하는 노동복지 모델이 국내외에 있는가.
“딱히 없다. 센터가 제시하는 것은 좀 복합적인 모델이다. 각국의 자주복지를 참고해서 한국형 자주복지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가게'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의 모델은 기부를 하나 사업에 직접 참여하진 않는다. 그러나 센터는 돈만 내는 게 아니라 ‘자원봉사’ 등의 참여도 권장하고 있다. 공동의 재원이기에 지출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 한국형 자주복지라는 표현을 썼다. 오는 13일 노동복지포럼의 주제도 ‘양극화 현실과 한국형 노동복지의 방향 및 과제’다. 센터가 구상하는 ‘한국형 복지모델’는 무엇인가.
“일각에선 한국의 복지를 카오스라고도 얘기한다더라. 지금은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성장은 있었지만 분배는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형 복지모델이란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고 보편적 복지를 누리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앞서도 얘기했듯이 필수재화와 투자의 사회화가 바람직하다. 재원은 연기금, 부유세, 국방비 축소 등을 통해 마련 가능하다.
사회복지는 국가의 발전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센터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앞으로 노동·시민사회단체, 진보적 학자, 복지관계자 등이 함께 참여하는 (가칭)‘복지사회운동실천연대’을 제안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안에선, 한국형 복지모델을 위한 연구와 기획, 실천이 이뤄지는 것이다.”

<경과> 한국노동복지센터
제1기 2002.2~2004.2
한국노동복지센터 창립
김금수 이사장, 김영대 소장
중소영세기업노동자 복지증진 위한 선택적 복지제도 도입 제안
제2기 2004.2~2005.2
김영대 이사장, 양형승 소장
복지격차 해소 위한 정책개발연구사업과 복지정보사이트 구축
제3기 2005.6~
황원래 이사장, 양형승 소장
센터의 새로운 출범준비 ‘자주복지와 복지연대 통한 희망만들기’
- 노동자 자주적 나눔운동 확대
- 노동복지단체간 연대 구축
- 노동자 자치연대적 복지사업 추진
- 노동자 위한 복지정책연구사업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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