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만이 길이다.’ 누구나 그렇게 말한다. 굳이 외국의 경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말은 아마 정답일 것이다. 그리고,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심상히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성과들이 쌓여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산별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앞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산별 건설운동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부터 점검해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매일노동뉴스(레이버투데이)>가 산별위원장들의 목소리를 중계한다. <편집자 주>




산별노조 건설은 노동운동의 오랜 꿈이기도 하지만 특히 2007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앞두고 있는 현재 산별노조 건설은 이제 노동운동의 숙제로 다가왔다.

자동차노련 역시 지난 6월 400여명의 전국시·도 지역노조와 지부, 단위사업장 노조 대표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전국노조대표자교육에서 자동차노련의 조직혁신을 내걸고 2007년 산별노조 건설을 결의할만큼 산별노조 건설을 위해 전진하고 있다.

자동차노련은 연맹이긴 하지만 각 지역별로는 어느 정도 산별의 체계를 갖춘 중산별 연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산별노조의 중간 단계인 지역노조를 건설해 각 지역에서 매년 집단교섭을 진행해 온 것이 벌써 30여년이 됐다.

산별노조 건설에서 지역노조의 운영과 집단교섭 등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에 지난 1월 자동차노련 18대 위원장 선거에서 유례없이 4선에 당선됨으로 노익장을 톡톡히 보여줬던 강성천 위원장을 만났다.

강 위원장은 산별노조는 꼭 해야된다고 강조하면서도 먼저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라고 얘기했다.

“산별노조를 건설하지 않고서는 노동조합의 경쟁력 제고와 전임자 임금문제 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지금과 같은 기업별 노조 중심의 운영으로는 모두 자멸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과 거기에 맞는 단체교섭 구조를 갖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 만큼 노동조합 내부적 결의와 아울러 법 개정을 통해 강제하는 길이 국가적 차원에서의 큰 틀이고 전략이라고 본다.”

강 위원장은 기업별노조 문화에 익숙해 있던 노조 간부들이 기득권을 버리는 문제와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7조(산하조직의 신고)를 폐지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 지역별로 집중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 연맹은 예전부터 중산별 체제였지만 각 대표자들의 기득권 때문에 아직 완전한 산별이 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절름발이 산별’이라는 평가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각 지역에서 자주적으로 예산이나 권리를 행사하다가 산별로 전환을 해서 그 모든 것들이 중앙에 집중되게 되면 그만큼 기득권을 잃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업별 이기주의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2007년을 앞두고 이제 노조 간부들이 과감하게 떨치고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동차노련은 서울시버스노조, 부산지역버스노조, 대구버스노조, 광주지역버스노조, 대전지역버스노조 등 각 시·도별로 지역별노조를 운영하고 있으며, 각 지역별노조는 매년 해당 지자체와 집단교섭을 벌이고 있다. 예산 역시 각 지부에서 지역노조 의무금과 연맹의무금을 걷어 운영이 되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재정 규모가 다르다.

“노조는 하나다” 설립신고증도 하나여야

약력
1969년 서울 신진운수 입사
1971년 서울 신진운수노조 조합장(6선)
1991년~1996년 서울버스지부(현 서울시버스노조) 지부장(재선)
1996년~현재 자동차노련 위원장(4선)
1993년 대통령 표창 수상
2000년 은탑산업훈장 수상
특히 자동차노련은 사업장별로 돼 있는 각 지부와 지역노조, 연맹이 각각 노조 설립신고필증을 가지고 있는데, 강 위원장은 먼저 설립신고증을 모두 없애고 자동차노련이 건설하는 산별노조 하나로 완벽하게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 연맹이 다른 산별 조직과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업종 또는 지역노조가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갖고 사업조합과 집단교섭을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단위사업장에서는 단체교섭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산별교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어느 산별 조직보다 훌륭한 전통이며 산별노조로의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데 노조법 시행령 7조에서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독립된 사업 또는 사업장에 조직된 노동단체는 지부·분회 등 명칭 여하에 불구하고 법 제10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노동조합의 설립신고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산별노조를 저해하는 조항이 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쟁의를 할 때도 기업별로 문제가 생기면 설립신고필증이 있는 곳이 우선이라는 판결이 나게 돼있고, 이것이 기업별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결과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지부와 시도 지역본부에서 산별노조 건설에 앞서 설립신고증을 내놓는데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본다.”

산별노조 건설을 앞두고 지금까지 진행해 온 중산별 체제에 대해 평가를 진행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자동차노련은 각 지역에서 집단교섭을 이끌어 왔고, 또 그같은 교섭이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운영돼 왔기 때문에 중산별 체제에 대한 평가가 후했다.

“각 지역별로 집단 교섭을 하는 것은 조직력을 강화시켜 임금 협상 등에서 유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집단교섭의 특성상 각 사업장들의 특수한 이해와 요구를 100%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2007년 기업단위 복수노조 설립 허용을 앞두고 노조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산별노조 건설이 유력한 대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자동차노련 역시 그렇다.

“복수노조에 대한 대비는 경쟁력 있는 노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합원들로부터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래서 늘 강조해왔듯이 현장중심의 노동운동을 전개해서 조합원들의 절실한 요구를 관철시켜야 하는 것이다. 노조의 일상 활동을 강화하고, 무엇보다 노조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신뢰 확보의 관건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해 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전 조직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강 위원장은 또 복수노조에 대비하고, 산별노조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노조 간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신조에 따라 본인은 물론 자동차노련 상근 간부들은 여러 가지 교육과정을 거쳐 타 산별연맹과 비교해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동차노련 같이 간부교육에 많이 투자한 산별노련이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본인이 원하면 모두 대학원에 보내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에 따라 연맹 상근자들은 대부분 석,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현재도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상근자들이 많다. 대학원 교육을 지원하는 것 외에도 교육이 중요하다고 보고, 그동안 간부 교육을 많이 시켜왔다.”

강 위원장이 교육에 열을 높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가방끈이 짧다. 6·25와 4·19, 5·16 등을 몸소 겪었던 못배운 세대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해오면서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알아야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노동과 관련된 교육이란 교육은 한번도 빠진 일이 없을 정도로 받아왔다. 또 자동차노련에서 일하는 상근자들도 앞으로 한국노총과 자동차노련의 미래를 봐서 교육을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해 그쪽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에 강 위원장도 서강대학교 산업문제연구소의 노조간부교육을 이수하고, 단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숭실대학교 노사관계대학원,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의 최고지도자과정을 마친 바 있다.

또 자동차노련의 장학재단이 명성을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1991년 3월 설립된 자동차노련의 장학기금은 2005년 현재 약 277억의 장학기금이 적립돼 있다. 강 위원장은 장학재단을 튼튼한 기반 위에 올려놓기 위해 버스외부광고 수익금 배분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총파업 등을 결의한 바 있다. 그래서 결국 버스 외부광고 수익금을 확보해 장학재단의 기금으로 사용하고 있고, 올해까지 지급한 장학금만도 조합원 자녀 5만2천명에게 총 330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안정된 노정관계, 산별노조에서 최대화시켜야

하지만 산별노조 건설과 함께 중요한 문제는 산별교섭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특히 자동차노련 같은 버스사업장의 경우, 노조의 주요 요구와 버스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 등이 대중교통운영과 밀접한 연관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책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노정관계가 매우 중요한데, 자동차노련은 지금까지 안정적인 노정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실시된 버스준공영제와 더불어 버스재정지원금 확보 등이 모두 자동차노련에서 주요하게 요구해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준공영제 실시는 버스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대폭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서울에서 시행하고 있는 준공영제는 버스 중심, 정부지원의 대중교통 운영제도로서 버스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제도 실시 이후 서울에서는 교통사고가 크게 감소하고 근로조건이 대폭 개선됐으며 시민들의 버스이용도 편리하게 변화되고 있다. 특히 버스와 지하철의 연계 강화로 대중교통의 이용객이 증가했고, 중앙버스전용차로제 등의 실시로 버스사고가 감소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준공영제 실시 이후 교통사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올 7, 8월 26.3% 감소했고, 운수노동자들의 법규위반 건수도 77.8% 감소했다.

“과거에는 적자누적에 따른 부실 업체 때문에 임금이 체불되는 사업장도 많았고, 고용이 불안해지다보니 운수노동자들의 근무의욕이 상당히 저하됐다. 또 수익금 압력 때문에 동일 노선의 업체간 과다경쟁으로 난폭운전이 자행되고 이로 인해 승객이 감소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물론 이로 인한 운수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강화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준공영제가 실시된 이후에는 노선간 경쟁이 사라지고 규칙적인 운행이 가능하게 돼 근로조건 개선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임금에서도 서울의 경우 지난해 16.14%의 획기적인 임금인상이 이뤄졌고, 올해도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주40시간제를 동일하게 도입했으며, 이로 인해 임금삭감 없이 3.8% 임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는 등 근로조건이 상당부분 개선됐다. 그러나 미흡한 부분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앞으로 지속적인 정책 활동을 통해 시정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자동차노련은 또 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대중교통에 대한 투자와 확고한 정책 수립 등을 요구해왔다. 그 결과로 정부는 지난 2001년부터 사양사업에 접어든 운수업에 대해 해마다 중앙정부 1,100억, 지방자치단체 1,100억 등 2,200억의 재정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강 위원장은 이를 계기로 운수업의 재건 기회가 주어지게 됐다며 버스재정지원금을 확보한 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

노조 위원장도 “발떡으로 먹고 산다”

노동운동 경력 37년, 올해 나이 65세인 강 위원장은 실제 나이보다 상당히 젊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 위원장의 외모만으로 50대 중·후반이라 짐작하곤 한다. 강 위원장에게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 답은 '현장성‘이었다.

“특별한 비결은 없다. 다만 아침 저녁으로 매일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시간 이상 걷기 운동을 한다. 옛말에 양반은 글떡, 상놈은 발떡으로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내 경우가 발떡에 해당한다. 몸을 놀리고 편히 있으면 좀이 쑤신다. 그래서 매일 시간을 쪼개서 현장에 자주 나간다. 아마도 이러한 조직 활동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으로 젊은 간부들과 꾸준히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이를 통해 마인드를 젊게 하고 원기를 찾게 하는 것 같다.”

위원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제까지 한번도 결근을 한 적이 없고, 늘 연맹 사무실에 먼저 출근해 각종 신문을 보고, 현안을 직접 챙기는 위원장. 자동차노련 사상 유례없는 4선 위원장을 하게 된 것도 조합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귀 담아 들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4번째로 찾아온 임기동안 2006년 산별노조 건설과 버스사업장 체불임금 청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 등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강 위원장의 어깨는 그래서 무겁지만 그간의 노동 운동 경험에 따른 연륜 때문인지 그의 눈동자는 한층 더 깊었다.

“87쌍 ‘행복결혼식’의 주인공”
조합원들의 행복이 그 어느 투쟁보다 값지다
사람들이 치르는 행사 가운데 가장 기쁘고, 가장 잊지 못하는 일이자 가장 큰 행사로 꼽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결혼’일 것이다. 강성천 위원장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 가운데 하나인 그 ‘결혼’을 87쌍에게 선물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 1993년 5월, 87쌍의 신랑, 신부들에겐 잊지 못할 특별한 결혼식이 있었다.


강 위원장이 서울시버스지부 지부장을 지내던 시절, 당시에는 식을 치를만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결혼식을 치르지 못하는 조합원들이 많았다.


“그때 당시만 해도 근로조건이 열악하다보니 결혼식도 못 올리고 그냥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이도 많은데, 모아놓은 돈도 없으니 그냥 살림만 차린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결혼시킬 방법이 없나 싶어서 합동결혼식을 기획하게 됐다.”


그때부터 강 위원장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87쌍의 예비 신랑, 신부들을 결혼시킬 수 있는 결혼식 비용을 모으기 위해 찬조를 받으러 다녔다. 강 위원장의 좋은 뜻대로 많은 사람들이 찬조해 결국 당시 한국노총 예식장에서 87쌍 부부들의 행복한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


강 위원장은 또 결혼식뿐만 아니라 2박3일간의 제주도 신혼여행까지 준비했고, 87쌍의 예비부부들 앞으로 통장을 만들어 각 1만원씩을 입금시켜줬다.


“그때 당시에 평화은행 통장을 만들어서 78명의 조합원들에게 1만원씩을 입금시켜줬다.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보람있었다. 한번은 남한산성에 등산을 갔었는데, 어떤 부부가 내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일단 인사를 받기는 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부부가 우리를 모르겠느냐고 일전에 합동결혼식한 아무개라면서 결혼식을 올려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얘기해줬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때 가장 보람이 있었다.”


노동자 87쌍이 합동결혼식을 올린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 예식장이 무너질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조합원들과 그들의 신부들이 기뻐하고 눈물 흘리던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종종 기억된다”는 강 위원장.


37년간의 노동운동 속에서 87쌍의 합동결혼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조합원들이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그 어떤 투쟁보다 값지다는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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