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경 지부장은 인터뷰를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지방 시, 군 등지에서 열심히 싸우다 해직된 '동지'들도 많은데 거기에 비하면 자신은 인터뷰 할만한 인물이 못된다는 이유였다. 현재 중앙부처 노조원들의 소극적인 노조 활동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이 큰 듯 했다.

<과천, 이 사람>은 이럴 경우를 대비해 릴레이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소설 한 권 못쓸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전 인터뷰자인 홍성호 공정위 지부장이 다음 인터뷰자로 지목한 이유도 분명 있을 터였다.

그렇게 설득하니 정 지부장은 ‘총액임금제’ 얘기를 꺼냈다. 총액임금제는 일반 기업으로 치면 일종의 연봉제. ‘철밥통’으로 통하는 공무원사회에 성과급제를 도입, 임금을 차등화하겠다는 것으로 참여정부의 야심찬 기획 가운데 하나다.

"공공성 훼손, 피해는 국민에게"


과천청사에서는 현재 농림부와 노동부가 시범기관으로 ‘강제’ 지정된 상태. 지난 2월 정부혁신지방분권위가 제도 도입을 선언할 때만 해도 각 부처의 자율적 참여 방침을 밝혔지만 자발적으로 나선 부처는 조달청 뿐이었다. 그래서 정부 내 '힘 없는' 부처로 통하는 농림부, 노동부가 올 7월1일 명단에 올라갔다.

정 지부장은 총액임금제 반대 투쟁이 외로운 싸움이라고 했다. 사실 시범기관으로 지정되지 않은 다른 기관들은 별 관심도 없는 데다 일부 부처 직원들은 매우 혁신적인 제도로까지 평가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정 지부장은 이 제도가 공무원 사회에 ‘혁신’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가뜩이나 약해진 공공성을 더 훼손시켜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갈 것으로 우려했다.

“일반 기업들이야 이익이 최고의 선이지만 정부기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안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공공영역으로서 정부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병원에서 외과나 마취과가 찬밥 신세이듯 사실 농림부는 정부부처 내에서 선호도가 높지 않다. 농민단체로부터 욕 먹기를 밥 먹듯 해야 하고 일의 추진도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다. 부처 평가를 받을 때도 항상 ‘꼴찌’ 근처를 맴돈다. 때문에 고시출신 사무관들은 도망가지 못해 안달인 상황. 그렇다고 국민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림부의 중요도가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병원에 성형외과만 있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간 임금차별을 공식화하고 확대한다면 아무도 농림부로는 오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농림부 직원들은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이는 곧 행정서비스의 질 저하로 연결돼 농민들은 물론이고 국민들 다수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됩니다. 게다가 정부는 결원이 생기면 정규직보다 계약직을 적극 활용할 것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정 지부장은 이런 내용을 알리기 위해 장관에게 항의도 하고 1인 시위도 벌였다. 농림부 전 직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니 78%가 총액임금제를 반대했다. 그러나 정 지부장이 아무리 ‘악악’ 거려도 과천 공무원들은 묵묵부답이다. 친정식구들인 농림부 직원들조차 ‘소 닭보듯’ 관망만 하는 상황. 혼자 안달하다 보니 지난 7월에는 지부장 취임 넉 달만에 목 디스크를 얻었다.

아무리 '악악'거려도 돌아오는 건 디스크 뿐,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교조 활동을 하고 있는 아내조차 은근히 노조 활동을 만류한다. 부모님은 아직 노조 활동에 대해 모르신다. 사실 정 지부장도 노조 조끼를 2년 넘게 입어 왔지만 지금은 힘에 부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렵게 올린 공무원노조 깃발이기에 쉽게 무너질 수는 없다는 각오다.

농림부는 지난해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했다가 행자부로부터 집단행동이라며 고발을 당했다. 중앙부처로는 처음이었다. 지금은 1,2심을 거쳐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이런 역사가 차곡차곡 쌓이면 미흡한 중앙부처 노조의 활동력도 언젠가는 달라질 것으로 정 지부장은 믿고 있다. 현재는 공무원노조특별법 반대와 총액임금제 저지가 당면과제이지만 앞으로는 보다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에 천착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의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공무원 사회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교육개방, 의료개방으로 공공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공무원사회도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정책을 담당하는 중앙부처 공무원으로서 공공성 회복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공무원노조의 역할과 책임이 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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