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에 위치한 정부과천청사는 국가의 중요 정책이 입안·집행되는 대한민국 중앙행정업무의 중심지다. 1982년 12월 설립돼 재정경제부 등 11개 중앙행정기관이 입주해 있으며, 공무원만 약 6천여명 가량이 근무하고 있다. 공무원노조의 출범과 함께 이들 또한 한국노동운동사의 주인공이 됐다.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향해 뛰고 있는가. <매일노동뉴스>는 <과천, 이 사람>이란 인터뷰 코너를 마련, 중앙행정부처 공무원들의 삶과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첫번째 인터뷰에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중앙행정기관본부 홍성호 공정거래위원회지부장이 초대됐다. 이 연재는 1주일에 1회 실릴 예정이다. <편집자 주>




노동부와 환경부가 들어서 있는 정부과천청사 5동. 이 건물 3층 구석의 한 문을 조심스레 열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공정거래위원회지부’라는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간판 하나 달아놓기 위해 홍성호 지부장은 상당한 투쟁을 해야만 했다. 행자부에서 철거를 지시했기 때문. 안타깝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공무원노조의 현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직도 ‘노동조합’ 대신 ‘직장협의회(직협)’라는 명칭을 공문서에 쓰고 있다.

과천의 이런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도 홍 지부장은 공무원노조의 교섭부장직을 겸하고 있다. 과천 6천여명 공무원 중에 유일무이한 존재. 전임 정용천 공정위지부장이 중앙노조의 수석부위원장으로 가 있지만 이미 해직된 지 오래여서 민간인 신분이다.


홍 지부장 역시 지난해 11월 총파업 당시 해직됐지만 다행히 소청이 받아들여져 정직 3개월로 징계수위가 낮아졌다. 그렇다고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직 이후 18개월 동안 승진, 승급심사에서 제외돼 그만큼 동기들보다 승진이 늦어질 수밖에 없고 각종 수당도 낮아졌다. 동기들 중에 빠른 사람은 지난해 이미 사무관으로 승진했지만 홍 지부장은 아무리 빨라도 내후년은 돼야 자격이 된다. 6급까지가 노조가입 대상이므로 징계 덕택에 2년은 노조활동을 보장받은 셈이다.

서강대 국문학과 85학번인 홍 지부장은 대학 재학 당시 열렬 ‘운동권’은 아니었다. 당시는 사회 전체가 운동 분위기여서 집회가 있으면 나가서 시위를 함께 하는 정도였단다. 93년 1월, 7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 첫발을 내디딘 후 10여년 동안 한 일도 사회운동과는 무관했다. 각종 불공정거래, 시장지배남용, 결합심사, 부당내부거래 및 카르텔 등 사건조사 전문이었다.

그러다 2000년 9월 설립된 직협이 2002년 4월 공무원노조 지부로 전환되면서 일대 삶의 변화가 찾아왔다. 전임 정용천 지부장이 감옥소를 3번 들락날락 하며 약 150여명의 직협 회원을 노조원으로 바꾸어 놓았지만 막상 당사자는 해임됐던 것. 정 지부장 아래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홍 지부장은 지난해 4월 자의반 타의반으로 지부장으로 당선됐다. 게다가 중앙노조의 교섭국장까지 맡게 됐다.

이때부터 홍 지부장은 공무원노조의 ‘대정부 교섭요구’의 핵심 멤버가 되어 정부라는 ‘벽’에 소리지르는 일을 계속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행자부 항의 방문 투쟁도 직접 이끌었다. 지금도 노조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당시 몸을 흠뻑 적셨던 ‘장마’를 떠올린다. 원천봉쇄된 여러 집회에서 연행돼 유치장 신세도 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무원노조 사상 처음으로 지역별로 단체교섭안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지난해 총파업 때는 체포령을 피해 생애 처음으로 '잠수를 탔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탄압은 탄압자의 본의와는 달리 이렇듯 활동가를 탄생시키고 있다.

요즘 홍 지부장은 총파업 이후 300명에 이르는 해고자 문제와 조직 재건이 최대 고민거리라고 했다. 지난해 공무원노조법이 통과되면서 노조원들 사이에 패배의식이 팽배한 것도 걱정이다. 공정위 내부로는 위원장 수행비서의 특채 시도 저지와 결원 발생과 관련 내부 승진을 실시할 것을 요구해 놓고 있다. 그렇다고 본업인 각종 불공정거래를 감시하는 일도 소홀할 수는 없는 노릇.

7살, 9살 두 아들의 아빠이기도 한 홍 지부장은 그렇게 14만 공무원 노동자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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