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허풍쟁이가 언젠가 자신이 로두스 섬에서는 거인처럼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고 우겨댔다. 그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었다. “이곳이 로두스 섬이다. 이곳에서 뛰어라!”(이솝우화에서)

최근 ‘노동운동 위기’에 대한 논쟁이 새삼스럽진 않지만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내용과 유쾌하지 않은 문제제기의 의도는 논외로 치더라도 많은 노동조합 간부와 활동가들에게 있어서 “지금의 노동운동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대다수가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 원인을 노동운동을 둘러싼 변화된 현실로 바라보든, 노동조합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로 바라보든,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현장의 약화문제로 바라보든 간에 우리의 열망과 괴리되고 답답하기만 한 현실을 과감히 돌파할 수 있는 ‘그림’은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미래를 예언자와 같이 깔끔하게 보여줄 수는 없어도 ‘현실의 모순을 폐기하는 과정으로서 현실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에게 ‘현실은 항상적인 위기이고 항상적인 기회의 긴장 상태’로서 우리 앞에 다가온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기가 로두스 섬이고 이곳에서 뛰어 보이는 수밖에 없다.

이곳이 로두스 섬이다

산별노조 건설논의는 노동운동에 있어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에 공공연맹에서 산별노조 건설논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고 현실의 문제로 급부상 하는 형세이다. 반면, 산별논의는 현장의 각급 노조간부나 활동가들의 논의와 고민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간 공공연맹은 20세기말인 1999년부터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이하 공공산별노조) 건설 논의를 시작하였고, 21세기인 2004년까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세 차례의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보고서의 내용은 각각 다른 산별노조의 형태와 활동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러나 동일하게 건설시기만큼은 2006년을 목표로 잡고 있는데 그 시기가 이제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특히나 올해초부터 시작된 6대 집행부의 가장 핵심사업으로서 2006년에는 반드시 공공산별노조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공공연맹은 올해초부터 대의원대회를 통해 ‘산별노조 건설 추진기획단’을 설치하여 활동해 오고 있고, 5월에는 1천여명의 간부들이 합동수련회에서 산별노조건설에 대한 결의를 다졌으며, 이제부터 본격적인 공공산별노조 건설 토론(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또 연말에는 연맹 대의원수련회를 통해 공공산별노조 건설(안)과 내년 투쟁계획을 확정하여 힘 있는 활동을 전개하려고 한다.

공공산별노조는 공공연맹을 해체하고 하나의 노조를 만들자는 것!


업종 중심으로는 현장 운영 어려워, 지역 중심 투쟁해야

공공산별노조(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갔다. 그중 핵심적인 내용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첫째는 공공연맹을 해체하고 하나의 노동조합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일정시한까지 공공연맹을 유지하며 그 산하에 업종소산별 노조를 만들 것인가와, 둘째는 조직체계를 업종을 중심으로 할 것인가, 지역을 중심으로 할 것인가이다.

아마도 이러한 고민과 논쟁은 산별노조를 건설했거나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본 조직이라면 한번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은 문제였을 것이다.

나(필자보다는 ‘나’ 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에 이런 표현을 쓰고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필자 주)는 이 문제를 업종과 지역이라는 개념을 대립시키거나 논쟁적인 함의로 바라보기보다는 공공연맹의 현실적인 조건에서 접근해 보았다.

공공연맹은 이미 건설된 보건, 금속, 금융의 산별노조와는 달리 한 노조의 조합원이 2만5천명인 조직에서부터 조합원이 5명인 노조까지 약 170개의 노조가 가입되어 있을 정도로 규모의 편차가 심하고, 또한 약 80%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관련된 정규직, 비정규직의 조합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6개의 업종분과와 7개의 소산별 노조가 존재하는 등 업종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따라서 업종을 중심으로 산별노조의 조직체계를 구성한다면 철도, 지하철 등 궤도노조의 경우는 약 5만명 정도의 소산별 노조를 만들어 나름의 활동내용을 채울 수 있겠지만, 다른 노조들의 경우는 최소 10여개의 업종소산별 노조로 분리되어 산별노조의 활동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전국에 흩어져 있는 현장조직을 운영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또한 교섭구조를 위해서 업종을 중심으로 조직체계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지하철이나 지자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경우 해당 지자체가 사실상 사용자인 경우여서 교섭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해당지역의 연대와 투쟁이 유용한 것이 현실인데도 업종별 산별이 교섭구조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따라서 공공연맹의 경우 정부의 정책에 따라 노동조건이 달라지고 공공서비스의 내용과 질이 달라지는 노동조합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정부에 대항할 수 있는 하나의 노조를 만들어야 하고 그럴 경우에 전국에 있는 현장과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원활한 활동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은 ‘조직건설 운동’이어야

나는 2002년 궤도연대를 결성하며 빠른 시간 내에 궤도를 하나의 노조로 만들자고 했다. 제대로 한번 싸워보자는 생각에서, 그리고 2003년 연맹 운수분과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연대의 경험과 파괴력 있는 조직들을 ‘중심’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하여 정부에 제대로 맞설 수 있는 조직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산별노조건설을 ‘몇몇 힘있는 조직들이 패배를 설욕하고 잘 안 풀린 요구조건을 관철하기 위한 덩치불리기’로 사고했던 이전의 생각을 심각하게 재고하고 있다. 이 시기 산별노조를 건설하자는 것은 기업별노조를 크게 해서 이전의 ‘성과’를 되찾자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라 노동자의 생존이 좌지우지되는 기업별노조 체제를 벗어나 노동조합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세력화의 확고한 진지로 만들자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된 노동조합의 ‘전환’이 아닌 노동자의 이념과 지향을 분명히 하는 ‘조직건설 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산별논쟁은 어느 때보다도 실천적인 과제를 중심으로 시작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전인미답’의 과정에 우리는 이전 산별노조들의 소중한 경험과 미래의 설계에 대해 비난이 아닌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공공연맹은 산별노조 건설운동에서 뒤늦게 출발하였지만 이제 공공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시작되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항상 현실은 해결 가능한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의 운동이 현실의 모순을 폐기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존재한다면 허풍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여기가 로두스 섬이다. 여기에서 뛰어 보아라!’ 할 때 우리는 힘을 모아 함께 도움닫기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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