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세상의 모든 일’은 지도자에 의해서만 움직여지지 않는다.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꿔내는 더 큰 힘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백 사람의 한 걸음이 어디를 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지도자의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지면에서는 격주로 한국의 노사관계, 노정관계를 주도하는 ‘지도자’, 이른바 ‘선수’를 만난다. 경총 김영배 부회장,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편집자주>



석 달이 지났는데 삭발한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난 6월26일, 정광호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레미콘노조 파업 지원을 나갔다가 사측의 대체차량에 깔려 비참하게 사망한 고 김태환 지부장을 추모하며, 또한 그렇게도 절박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노무현 정부를 상대로 총파업을 조직할 것을 호소하며 삭발을 했다. 새싹이 나듯 듬성듬성 흰색, 검은색 머리카락이 자랐지만, 그 사이 바뀐 것은 없고, 충주의 김태환처럼 울산에서 류기혁, 부산에서 김동윤, 또 두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타살이냐, 자살이냐 형식적 차이만 있을 뿐 실질에서 ‘타살’임이 분명했던.

‘이율배반’적 참여정부

공교롭게도 정광호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을 만난 지난 10일은 여당이 당정 협의 연기를 수용키로 했음에도 노동부가 비정규법안 발표를 강행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국노총 회의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자연 냉랭한 노정 관계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다. 참여정부가 주장하는 ‘2만불 시대 성장주의’와 ‘참여민주주의’는 상당히 이율배반적 절충이다. 전자는 반드시 불평등을 야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고, 후자는 평등 원리에 기반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다.”

참여정부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던 그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얘기하지만 정작 비정규직을 보호하기보다는 대공장노조를 이기주의라고 매도하는 데에만 치중하고 있다. 과거청산이나 국가보안법 폐지, 지역균형발전 등 일부 의미 있는 정치행위들은 성장주의를 은폐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계산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과정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고조됐고, 특히 고 김태환 지부장 사망 사건으로 폭발됐다. 양대노총은 ‘김대환 노동부장관 퇴진’ 슬로건을 걸고야 말았다. 하지만 3개월여, 노정관계는 여전히 교착상태다. ‘해결’의 실마리보다 ‘공격’의 꺼리들만 양산되는 모습이다. 급기야, 노동계의 ‘퇴진’ 요구가 정권 입장에서 ‘수명연장’의 명분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장관 퇴진) 구호를 접자는 흐름도 있는 것 같다. 이는 성과주의적 조급성의 발로다. 사실 그동안 국민생활과 밀접한 요구나 경제정책, 노동정책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적이 거의 없었는데, 비정규법 협상에 이어 김태환 열사투쟁과 장관 퇴진 요구가 그렇게 만들었다. 장관 퇴진은 단지 ‘김대환’ 개인 거취 문제가 아니라 노동·경제정책 전반의 실패를 자임하고 정책을 바꾸라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내릴 수 있는 요구가 아니다.”

"딜레마는 있지만 손 털 수는 없어"

약력
1960년  출생
1970년대말  부천지역서 야학활동 시작
1985년  홍익회 입사
1989년  부천노동자문학회 등 노동자문예운동
1995년  홍익회노조 부위원장
2001년  홍익회노조 위원장
2003년  철도산업노련 위원장
2004년  한국노총 비상대책위 위원
2005년  한국노총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
그렇다면 문제는 ‘실력’이다. 고 김태환 지부장 사건 이후 한국노총이 퇴진 구호에 맞는 활동을 해 왔는지, 정권 압박수단으로까지 유효한 활동을 해 왔는지, 그래서 어떤 변화가 초래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총파업을 비롯한 직접적인 투쟁은 못했지만 내부 현실을 반영하면서 노동위원회 탈퇴나 ILO 아태총회 불참선언 등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활동은 해 왔다. 물론 딜레마도 있다. 총파업이 능사인가 하는 고민도 있고…. 그만큼 현실적인 힘이 없다는 거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손 털 수는 없다.”

그러면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맞은 지난달 25일 KBS가 진행한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말을 끄집어냈다. “(기억하기로) 대통령은 ‘내가 잘못 한 게 뭐 있나, 단지 실패한 것은 노동정책’ 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 얘기는 노사정 대타협을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문제만 생각하면 암담하다”는 말과 함께 “노사정 대타협, 내가 노동자들 위해서 좀 한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되면 노동자들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노동자들 설득 못했고 사용자도 설득 못했고, 그것이 가장 뼈아픈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이 말이 노동정책 실패를 국정 책임자가 인정한 것이라면 그걸 총괄하는 장관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앞으로 사회적 대화 안 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한 그는, “그렇기 때문에라도 노동운동으로선 자폭·자해하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러나 내부 혼선도 감지된다. “노동부장관과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한국노총의 방침과 달리 일부 간부는 장관을 만나기도 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노정관계에 대한 다른 상을 그리는 사람이 조직 내에 있다는 얘기인데, 이는 (내부자의)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외부 압력에 의한 내부 질서 해체, 즉 내부 흔들기다.” “공식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해 줄 수 없다”던 그는 이런 해석을 내놨다.

또한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설사 만났다 하더라도 노동계가 주도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만약 노동계가 주도했다면 어떤 제안을 했을 것이고 조직적인 책임을 지려 했을 텐데 아무런 상황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노동계 전향적 태도? 어차피 똑같은 전철 밟을 것

그렇다면 노동계가 국면전환의 이니셔티브를 노동계가 쥘 수 있는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지금은 ‘연기’돼 있는 ILO 아태총회에 먼저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는 방식같은. 참여는 하겠지만 ‘노동부장관 퇴진’ 깃발은 여전히 내리지 않았다는 걸 천명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저쪽(정부)에서 아무 생각이 없는데 무슨 효과를 갖겠는가, 똑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불신만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 근거는 이렇다. “얼마 전에 로드맵을 놓고 대화하자는 제안도 했는데,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다. 사전에 당사자들(노동계)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기자회견장에서 선언하는 게 대화를 하겠다는 태도로 읽혀지는가. 오만불손한 대화 제의는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노동부장관과는 대화를 못하겠으니 총리나 대통령이 나서라고까지 했는데, 그런 노동부장관이 대화제의를 하면 누가 받겠는가.”

결국 이런 교착상태가 한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정부나 노동계나 다 압박을 받고 있다. 고민 지점이 모아질 거라고 본다. 정부도 후반기 정책을 어떻게 끌고 갈지 고민해야 하고, 노동계 또한 고갈된 투쟁력 회복 등 획기적 자기혁신 노력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구체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권 후반기로 접어든 올 하반기, 정부는 노사 모두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노사관계 선진화방안(로드맵) 34개 과제를 국회에 일괄제출 하겠다고 공언했고, 잇따른 비정규노동자 자살과 분신으로 더더욱 비난을 받고 있는 비정규정책에 대한 노동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어 냉랭한 노정관계의 숨통이 터질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서는 게 현실이다.

“모든 문제는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야 해법이 나온다. 지금은 (최고조가) 아니다. 어설프게 타협하기보다 주체들 모두 이 상황의 한계와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정확히 풀어야 한다.”


비정규법안, 그때 타결했어야

이용득 '개혁호'가 보궐이 아닌 3년 임기의 본격 항진을 시작한 첫해, ‘교섭과 투쟁’이라는 한국노총 개혁구호의 첫 시험대는 비정규법 협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법안은 아직 ‘표류’ 중이다.

“그때(4월 협상) 타결되는 게 가장 바람직했을 것이라 본다. 조건도 성숙돼 있었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대한 의지가 컸고, 한국노총도 내부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마침 인권위 의견이 나와 내용적으로는 최고조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그걸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 실제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인권위에 대해서조차 “무식하면 용감하다”, “선진사회로 가는 마지막 돌부리” 라며 폄훼하기 급급했다.

그런데 그는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얹었다. “(막판 협상에서) 민주노총은 받아들이는 자세가 덜 돼 있었던 것 같다. 내부 이견도 있었을 것이고, 현실 투쟁이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최종 결단을 못 내린 것 같다.”

이는 역으로 한국노총은 막판 결단을 내릴 수도 있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내부 이견이 있었지만 양 노총 공조를 확실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민주노총 결정을 기다리며, 민주노총이 결단하지 않는 것까지도 공조한다는 원칙을 견지했다.”

한국노총, 개혁 토대 확고히 다졌다

얘기는 자연스레 최근에 또 불거진 양대노총 통합 문제로 옮겨갔다. “통일에 반대하는 사람 없듯이 통합은 필연적인 일”이라던 그는, “노동계가 사회적 힘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도 양대노총을 뛰어넘는 통합이 필요하다, 분열하면 조직률도 떨어지고 조직력도 낮아진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을 ‘부정’하면서 만들어진 조직이고, 실제 운동의 역사나 방식, 정권에 대한 태도 등에서 차이가 적지 않게 존재해 왔다. “지금은 많이 좁혀져 있다. 민주노총 정책 방향을 보면 한국노총과 거의 차별성이 없다. 조직활동 방식에서도 파업횟수나 집회 참석자 수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그는 2007년 복수노조 시대, 더이상 자기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규직-비정규직간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조직의 규모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십분 그의 말을 이해하더라도 조직 구성원들 간 생각차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노총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2004년 말)에 따르면 75.6%가 통합을 지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한다던 20.2%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조직 내에선 최근 한국노총 개혁이 민주노총 '흉내내기'라는 얘기도 있다. 민주노총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교섭·타협으로 대표되는) 예전 한국노총식 운동방식’에 대한 애정일 수 있다. 반드시 보수파의 목소리라고만 보진 않는다. 한국노총 개혁의 핵심은 교섭과 투쟁을 병행한다는 것이다. 취약한 투쟁력을 보완하기 위한 것도 고민해야 하고, 예전 교섭력의 실체와 장단점이 뭔지 살펴 장점을 강화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이같은 대외적 운동방식과 함께 한국노총은 내부 개혁에도 칼을 빼들었다. 혁신안이 그것이다.

“여러 혁신방안 가운데 임원선거 시 선거인단제 도입이 있다. 조직의 민주성 확보를 위한 획기적인 진전이다. 실제 이 방안에 근거해 임원을 선출하는 것은 앞으로 2년 반 뒤의 일이지만 새 제도가 실험되는 그때 한국노총의 개혁이 본격화될 것이다. 혁신안에서는 산별이나 지역에 대해 강제조항을 두지 않았지만 한국노총 선거인단이 산별 선거인단(대의원)보다 훨씬 많은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집행부 귀책사유로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 강제수단으로 작용할 것이고, 그렇다면 한국노총 중앙은 물론 산별, 지역에서도 폭발적인 변화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중기협, 좋은 파트너 될 수도 있을 것

인터뷰 거의 말미에 그는 색다른 제안도 했다. 주로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들로 조직된 금속노련의 경우 매년 파업 사업장이 줄어들고 올해는 한 곳도 없다는 점에 착목, “노사관계 안정이라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집단적 노사관계가 사장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질문을 한 대목에서였다.

“중소기업은 사실상 절망 상태에 빠져 있다. 회사가 망하고 있는데 싸우면 문 닫을 게 뻔하고, 다른 대안도 못 찾으니까 가만 있는 거다. 노총이 중소기업정책에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우리 운동 풍토에선 중기업이든 소기업이든, 마찌꼬바든 ‘사장’은 화해할 수 없는 ‘적’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볼모가 된 중소기업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면 고용도, 노동운동도 없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과도 연대해 정례협의회나 세미나를 하면서 중소기업 활성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노조운동이 과거 권위주의적 개발모델 하에서 성장의 과실을 ‘쟁취’하는데 급급했던 이전 모습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옛날과 똑같이 활동해도 옛날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나” 하는 게 그의 고민이었다. “기업규모 간, 산업 간 격차가 크고 고용형태별 차별도 심각한 현실을 감안해 일정규모 이상의 노조들에서 정치·사회적 요구도 많이 내걸고 있다. 하지만 자금여력이 있는 곳은 결국 초기 은폐해 놨던 경제적 요구에 몰입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대다수 사업장에선 기업단위 노사 교섭에서 경제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굉장히 어려운 조건임에도….”

그래서 몇해 전부터 노동계에선 저성장체제 하에, 개별기업 차원으로는 풀 수 없거나 푼다고 해도 기업간 격차만 더 벌리는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개혁적 요구도 많이 내걸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공허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도 했다.

“실현가능성이 별로 없거나, 너무 이상적이기만 한 구호들이 많다. 오히려 당장 손에 잡히는 부동산 문제 등에 대해서는 해법을 제시해 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 현실 가능한 안을 만들고 투쟁을 조직하는 게 효율적일 것 같다.”

낡은 틀을 벗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그는 “집회문화도 싹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앉아 있는 사람도 졸고, 눈물나는 얘길 해도 감동이 없고, 똑같은 조끼에 똑같은 머리띠, 아주 위압적이다. 조합원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줘야 하고, 단식이나 삭발보다는 좀더 친근한 투쟁방식이 고민돼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약간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인터뷰 후기>

그가 이른바 ‘중앙’ 무대에 나타난 지는 오래지 않다. 70년대 말부터 부천지역에서 야학활동을 해 온 그가 ‘밥벌이’를 위해 택했다던 홍익회에서 노조위원장을 맡은 것은 입사한 지 16년이 지난 2001년이었고, 산별연맹(철도산업노련) 위원장이 된 것은 2003년이 돼서였다.


“중앙에 와서 보니 시간도 많이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하고 ‘선수’들하고만 만나니까 얘기해도 흥이 덜 하고…. 야학을 하면서, 노동자문예운동을 하면서 만났던 노동자들과 부대끼고 함께 울분 토하던 시절, 그게(현장이) 내 체질에 맞는 것 같다.”


인터뷰 내내 자신은 이 꼭지에 어울리는 ‘중앙판의 선수’가 아니라며 손사레 치던 그가 ‘고백’ 겸, 한마디 더 한다. “기질적으로 내 주장을 잘 못한다. 주로 남의 얘기를 듣고 절충을 잘 하는 편이다. 어차피 한국노총에서 내게 부여한 역할도 그런 것이고. 노총 개혁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노총에 들어왔다고까지 할 건 아니지만, 있는 동안 그 역할에 충실할 생각이다.”


그가 한국노총 중앙에서 활동을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4·15 총선 후 사민당 실험의 패배 책임을 지고 이남순 집행부가 총사퇴를 하면서부터다. 그를 포함, 5명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는 선거제도 개혁(직선제), 사무총국 혁신 등을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보궐선거를 해야 했는데, 자연스럽게 개혁후보로 이용득 현 위원장이 올라왔다. 이용득 위원장을 도와서 한국노총을 혁신시켜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결국 당선시켰고, 마지막으로 인사위를 맡아 사무총국 개편에 기여했다.”


단순 ‘조정자’ 역할만 하고 싶진 않다


당시 이용득 위원장은 정광호 처장에게 사무차장직을 제의했으나, 삼고초려도 ‘현장이 체질에 맞다’던 그를 움직여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개혁파 위원장 - 보수파 사무총장’ 체제가 갖는 불가피한 갈등구조를 ‘조정’해 내고, 사무총국의 안정적 운영을 꾀할 적임자로 다시 정 처장이 거론됐고, 올 3월에서야 그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일부에선 한국노총은 안 보이고 위원장만 보인다는 지적도 하지만, 현 한국노총 운동에 대한 현장의 지지는 상당하다고 본다. 또한 사무총국 내부적으로도 회의 정례화, 총국 전간부회의 수시소집, 서면회의 등을 통해 민주적으로 의사수렴을 하는 등 체질개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길은 녹록치 않았다. 비정규입법 쟁취 양대노총 위원장 단식, 권오만 총장 사태, 고 김태환 열사 국면 등 안정적 총국 운영을 담보하기는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출렁출렁 하는 것 같지만 현실적인 개혁방안을 꾸준히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그런 그는 조직 내·외부적으로 개혁적인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정’자의 색깔이 자칫 조정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편향적(개혁적)이라는 평가를 포기하고 조정자 역할만 하고 싶지는 않다. 타협이 아니라 원칙적이고, 현실에 맞는 개혁이 진짜 개혁이다.”


스트레스는 뭐… 술로 풀지


‘조정자’인 그이기에 더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할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았다. "뭐… 술을 무지하게 마신다. 주5일이니까 나흘은 술을 마시고, 나흘 중 이틀은 밤12시, 또 하루는 새벽3시를 넘긴 것 같고. 하하하….”


내친 김에 더 물었다. “이 사람 ‘인물’이다 싶은 분들도 많이 만났겠다.” “아, 이용범 본부장, 인물이던데.” 경쾌한 답이 돌아온다. “이용득 위원장은 상황을 읽는 눈이 빠르고 정확하며, 그걸 이슈화해내는 독특한 재주가 있다. 이용범 본부장은 여러 경험을 많이 해서인지 상부구조 메커니즘을 너무 잘 안다. 편향적이지 않고. 난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 많이 배운다.”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 동안 그는 분주히 십수통의 전화를 받았다. 단사(홍익회노조) 위원장 선거가 끝났다며 ‘현장 동지들’은 계속 그를 찾았다. 이번주는 6일 연달아 술을 마시는 주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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