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인터컨티넨탈호텔에 대해 “불법파견근로자 직접 채용 거부는 부당한 해고”라며 해당 노동자 2명의 직접고용을 명령했다. 앞서 지난 3월 중앙노동위원회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에 대해 “현대중공업도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노조법상의 사용자 지위에 있다”고 판정했다.

최근 노동위원회에서 나온 두 판정은 파견, 도급,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노동자들을 놓고 논란이 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노동자 손’을 들어준 결정들이다. 특히 노조법상 원청의 하청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은 노동위원회, 법원 등을 통틀어 ‘법리적 판단’으로는 처음 나온 결과다. 두 판정은 현대차, 기아차, GM대우, 하이닉스, 기륭전자 등 현재 힘겹게 싸우고 있는 간접고용노동자들에게 ‘작은 희망’을 품게 했다.

두 사건을 승리로 이끈 ‘이 사람’, 바로 33살 ‘젊은 청년’ 김철희 노무사(노무법인 참터)다. 김철희 노무사를 지난 9일 구로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노무법인 참터에서 만났다.

2000년 노무사로 노동자를 만나다

김철희 노무사는 지난 99년 시험에 합격하고 2000년 4월부터 참터에서 노무사의 길을 걸었다.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운동을 한 친구들이 모두 그렇듯 졸업 이후 의미 있는 활동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현장 진출도 생각했지만 쉬운 상황이 아니였습니다. 그때 주변 친구가 노무사를 제안했어요. 직접 노동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법률적 구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의미 있는 활동’을 고민하며 노무사를 택한 그는 5년 동안 ‘노동자들의 사건’만 맡았다. 절박함, 그가 맡은 사건들 속에 항상 따라다니는 단어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걸려 있는 해고, 부당노동행위 등 5년 동안 200~300여건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김 노무사는 많이 울어야 했다.

“3년을 싸웠는데 결국 졌습니다.” 불법파견의 사용사업주 직접고용 문제였던 대성산소 사건을 말하면서 김 노무사는 지금도 아쉽다는 표현을 썼다. “대성산소는 단 3명의 노동자가 싸운 사건이었습니다. 안산공단에 천막치고 사계절을 넘기며 싸우는 그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공허함도 들었구요.” 노동자들의 사건을 맡는다는 것은 ‘절박함’을 함께 짊어져야 하는 만큼, 마음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난 2001년 초심(지노위)에 이긴 인사이트코리아 사건이 재심(중노위)에서 뒤집어지자, 김 노무사는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기도 했다고 한다. “불법파견의 고용의제를 놓고 지노위에서 이겼는데 재심에서 졌습니다. 상당히 충격을 받았죠. 사건에 대해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그만큼 노력을 투여해서 그런지, 도저히….” 이 일 이후로 쉽지 않지만 맡은 사건에 대해 ‘애정’을 갖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애정을 갖다보면 후유증도 심하지만 오히려 냉정하게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인사이트 사건 지고 일주일 ‘식음 전폐’

이러한 이유로 ‘승리’했을 때 기쁨은 누구도 짐작하기 힘들 것 같다. “지난해 울산에 내려가 현대중공업 사건을 맡았습니다. 현대중 사건을 접하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한 달 사이 협력업체가 일제히 폐업을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죠. 하청노동자 출입통제, 식당 사용, 노조 활동까지 원청의 영향력이 미치는 등 현대중공업은 노조법상 사용자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청(현대중)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한 이 사건에 대해 사실 김 노무사는 ‘질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여태 노조법상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법리적 판단’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이 사건에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주장을 실컷 하지 않으면 한이 남을 것 같았습니다. 독일 사례 등을 들면서 악착같이 나섰습니다.” 결국 김 노무사는 중노위에서 이겼고 간접고용노동자들에게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물했다.

이기도 지고를 반복하는 일. 김 노무사에게 일은 ‘전투’다. “외줄타기와 같은 것 같습니다. 팽팽한 상황 속에서 어느 순간 무게가 한쪽으로 실리게 되면 바로 이기고, 지고가 결정되죠.” 긴장 탓인지 심판사건이 끝나고 나면 결과 여부와 상관없이 ‘폭주’로 이어진다. 김 노무사의 술 주량은 ‘절대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다고 한다.

노무사에게는 ‘일급비밀’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슬쩍 승소율을 물었다. “초기에는 승소율을 따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따지지 않고 있어요. 노조, 노동자 사건만 맡고 있는 상황에서 승소율을 따지게 되면 이기는 사건만 맡고 싶게 되거든요.(웃음) 어떤 사건이든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구상하고 그게 현명한 방식이죠.”

노동위원회 실효성·전문성 고려해야

전문성, 형평성 문제 등 노동위원회 판정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계에서는 노동법원 도입을 주장하고 있으며 실제 움직임도 있다. 노동위원회를 가까이에서 접하고 있는 김 노무사에게 문제점에 대해 물었다.

“노동위원회가 신속하게 판단하고 노동자들의 접근이 쉽다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다만 저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은데요. 먼저 실효성 부분입니다. 비교적 명백한 사건인데도 사용자가 불복하면서 법원까지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럴 경우 사건이 장기화되면서 고통을 받는 것은 노동자들이죠.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구요. 뭔가 대안이 필요합니다.”

그의 말이 이어 진다. “전문성 문제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많은 공익위원들이 적절히 판단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끔 정말 어이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익위원들이) 법률적 전문가가 아니니까 정치적, 경제적 논리를 들이대면서 사건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준사법기관인 만큼, 법리적 판단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는 것은 노동위원회 위상을 놓고 봤을 때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화제를 조금 바꿨다. 지난 1년 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비정규법안에 대해 물었다. 김 노무사가 유독 비정규직노동자 사건을 많이 맡았던 터라 그의 생각이 더욱 궁금했다.

“너무나 자명합니다. 비정규법안을 보면서 지난 97년 부실한 파견법 입법과정을 보는 듯 합니다. 항시적으로 사람을 필요로 하는 업무가 있습니다. 당연히 정규직을 써야 하는데도 3년 단위로 계약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 있다면 기업주들이 어떻게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겠습니까. 사유제한 없는 기간제 사용은 패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간접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 3권을!

간접고용 자체가 사회적 차별을 낳고 있다. 하지만 고용의 유연화는 막을 수 없는 ‘해일’처럼 노동시장을 뒤 덮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간접고용의 확대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비정규노동운동을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요. 정규직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당장 정규직화가 어렵다면 제도적으로 사실상의 노동3권을 확보해 나가는 투쟁도 중요한 대목이라고 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 필요하겠죠. 노동자들도 직접교섭을 요구하는 투쟁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이 점은 정부가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아직 사법부가 보수적인 판단을 하고 있지만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은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 전형적인 경우라고 김 노무사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비정규직의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법을 바꾸는 등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조법상 사용자성을 판단할 때는 노사관계의 영향력을 봐야 합니다. 이것은 학계에서도 정설이죠. 현실에서는 버젓이 원청이 사실상 하청노동자들의 사용자처럼 영향력을 미치는데 법만 계속 ‘아니다’라고 하는 형국입니다.” 어쨌든 조금이라도 빨리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 ‘대세’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위원회 판정, 법원 판례의 ‘승리’가 절실히 필요할 것 같다. 그만큼, 김철희 노무사 같은 법률대리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김 노무사의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공부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참터’의 경우, 앞으로 노조를 위한 다각적인 법률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할 예정인데요. 예를 들어 현재 노조가 임단협을 앞두고 임금인상률을 결정할 때 조합원 설문조사가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들이 필요합니다. 조합원 의견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경영상태를 전문적이고 효과적으로 분석해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방식 등이 필요하다는 거죠. 정말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그는 불법파견 사업장인 기륭전자로 발길을 돌렸다. 또 다시 ‘전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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