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김기준 위원장의 인터뷰는 어렵게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현재 직무정지 상태다. 지난 3월 제3기 산별노조인 김기준 체제가 출범했지만 선거후유증으로 소송이 이어졌고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6월10일 양정주 부위원장이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은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어찌보면 김 위원장은 취임 후 정상적인 위원장 직무보다는 직무정지 기간이 더 긴 셈이다.

하지만 지난 2000년 3월 산별노조가 된 금융노조의 창립 과정부터 참여를 해 왔고 비록 직무정지 처지이지만 한국 금융산업의 한 축인 금융노조의 수장을 맡고 있는 김기준 위원장 만큼 산별노조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한 노동운동가는 드물 것이다.
이달말에 나오는 직무정지 가처분에 대한 이의제기 신청의 결과를 기다리는 김 위원장에게 부탁한 인터뷰는 며칠의 고민 끝에 어렵게 받아들여졌다.

금융공공성 회복이 고용안정

김 위원장에게 던진 첫번째 질문은 산별노조의 위기에 대한 부분이었다. 창립 5년을 맞고 있는 금융노조이지만 다른 산별노조와 마찬가지로 '무늬만 산별'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초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에서 "산별의 완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본조와 지부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모습은 어떠할까.

"여전히 어렵다. 본조와 지부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 본조가 공통의 의제를 설정해 지부를 견인해 가야 하는데 산별노조 시스템이 정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려움이 많다. 또 지부 입장에서 보면 현장 조합원들의 요구들은 대부분 개별 금융회사들의 현안 문제이기 때문에 본조에 대한 역할과 기대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금융의 공공성 회복'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조합으로서 금융노조가 바라보는 공공성에 대한 관점은 시민단체와는 차이가 있다"고 전제한다. "중소기업과 서민이 금융으로부터 소외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공성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금융산업이 지금처럼 단기업적주의를 기조로 하면 소수의 인원으로 단기적인 이익만 추구하게 되고 이는 곧 고용축소로 이어지고 결국은 금융혜택 수요자가 줄어들게 된다. 즉, 공공성의 회복은 고용안정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셈이며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현장의 조합원들과 토론하고 교육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이어 "금융노동자들의 경우 비록 외환위기 이전에는 철밥통이니 관치금융이니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지만 금융이 경제의 혈맥이라는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해온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소유구조와 지배구조가 변화하고 모든 이익이 주주 중심으로 쏠리면서 금융노동자들이 자기 노동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느끼기 어렵게 된 면이 있다"며 "공공성의 회복은 금융 노동자들에게 자부심을 되찾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당장 본조와 지부 간부들의 '산별노조'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못하다는 평가가 있다. 지난 1월 선거 이후 현재까지 조직을 안정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후유증은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노동조합 활동가들 그리고 나 역시도 (산별노조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라며 "기업별 노조의식이 아직도 지배적으로 남아 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흐름을 인정하고 노조도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7·11 총파업 이후 '수세적' '국지적' 싸움

약력
1957년생
1985년  한국외환은행 입행
1995년  한국외환은행노조 위원장
1998년  금융노련 부위원장
2000년  금융노조 사무처장
2000년  노사정위 금융특위 위원
2002년  금융노조 정치위원장
2005년  금융노조 위원장 당선
김 위원장은 금융노조가 창립한 2000년 7월에 벌어진 7·11 총파업을 예로 들면서 "당시는 정부가 IMF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면서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하던 시기였고 모든 지부와 조합원들이 이를 막아내기 위해 벌인 7·11 총파업은 공세적이었고 성공적인 싸움이었다"라며 "하지만 그 이후 전개된 싸움은 수세적이고 (각 개별 은행만의) 국지적인 싸움이었으며 여기에서 얻은 패배감은 산별노조를 강화해 나가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특히 개별 금융회사의 경영이 좋아지면서 지부들이 임금인상과 고용유지를 개별 회사의 문제로만 갖고 가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노조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게 이용득 현 한국노총 위원장에 대한 부분이다.

산별노조 3기 선거가 경선으로 치뤄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누가 포스트 이용득 체제를 끌고갈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있었지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이용득 위원장 이후의 위원장은 어떤 리더십을 갖고 이끌어갈 것인가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최근 금융노조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부에서는 "이용득 위원장이었다면…"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금융노조 초대와 2대 위원장을 지낸 이용득 위원장의 경우, 이 위원장 특유의 권위적인 리더쉽이었다면 산별 3기 위원장에게 요구되는 그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김 위원장은 "현재 필요한 리더십은 이해와 설득, 토론을 통해서 공유해 가는 민주적인 리더십"이라고 밝혔다.

"상황에 따라서 요구되는 지도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강제적인 구조조정에 맞서 정부와 대항하기 위해 필요했던 리더쉽이 있었다. 현재는 정부와 자본에 맞서 정책을 만들어내고 내부의 단결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설득, 토론의 과정이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이를 설명하면서 "민주주의적인 원칙, 다수가 결정했을 때는 이견이 있더라도 함께 가야 하는데 이 점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금융노조는 현재 37개 지부가 있다. 이들 지부는 크게 은행권과 비은행권으로 나뉜다. 금융노조 내에서는 "금융기관이라는 큰 틀은 같지만 업무영역이나 조건들이 다른 조직들이 하나의 산별로 묶여 있다 보니 산별을 강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라는 의견도 있다. 이는 금융노조내에도 '소산별'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으로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개별 금융회사들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런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사안에 대해서는 유연성을 가지고 접근해가야 한다"며 "소산별의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않으며 의견을 수렴하는 데 있어서 비슷한 기관끼리 자연스럽게 협의할 수 있는 시스템 정도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아직도 풀어야 할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금융노조지만 사용자쪽과의 교섭과 관련해서는 다른 산별노조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금융노조의 산별교섭은 국내 내노라 하는 금융기관장들이 대부분 참석을 해 노조와 머리를 맞대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지난 2003년에는 전 산업 중 최초로 노사가 주5일근무제에 합의해 실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산별교섭이 정착을 한 데 대해 김 위원장은 "지난 2001년 최초의 통일단협이 체결된 이후 4번에 걸쳐 중앙교섭을 거치면서 금융 노사 간의 교섭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며 "이러한 경험들이 노조뿐 아니라 금융회사 기관장들에게 산별노조의 존재를 각인시켰다"고 설명했다.

"조직 화합 위해 최선을 다할 터"

김기준 위원장과의 인터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질문이 '직무정지'와 관련된 현재의 상황이다. 선거이 후 서울은행지부의 선거무효소송이 이어졌고 급기야 지난 6월에 법원은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현재 금융노조는 직무정지 가처분에 대한 이의제기를 신청했고, 이달 16일에는 결심이 있을 예정이며 이달말 이전에 이에 대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빠르게 진행되던 질문과 답변이 이 부분으로 넘어가자 템포가 느려졌다. 예민한 사안인 만큼 질문도 어렵게 던져졌고 이에 대한 답변도 김 위원장의 입으로 나오기까지 수십번 머릿속을 맴돌다 정제된 단어들로 이루어져 나온 듯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조합은 자주적인 조직"이라며 운을 뗐다. "노조가 자주적인 조직이라는 데 어느 누구도 다른 생각을 갖을 수 없다. 지금까지 법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주적으로 풀려는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그 노력이 벽에 부딪히다 보니 법적인 대응을 할 수 에 없었다. 법원의 결론이 나기 전에 자체적인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것이 조직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은 이어 '조직의 화합'을 얘기했다.

"금융노조 조직의 발전을 위해 (선거무효소송) 소취하가 이뤄져야 하고 그동안 각 지부대표자들이 논의하고 합의했던 화합과 단결된 금융노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 산별노조를 완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더욱 설득을 하고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내는 데 노력을 할 것이다."

직무정지에 대한 이의신청 결과 이후 금융노조의 정국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지만 여기에 대해 김 위원장은 언급을 피했다. '끝까지 노력해보자'라는 대답을 마지막으로 예민한 질문을 마무리 지었다.

산별노조 3기가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갈등과 조정'의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산별노조 운영계획에 대한 질문에 김 위원장은 "산별노조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라며 "규약, 규정 등 운영과 관련된 제반 제도에 대한 본조와 지부간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한 "은행산업의 공공성회복이라는 화두를 정책적인 뒷받침을 통해서 사회적인 이슈로 만드는 사업도 지금 시기에 중요하며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차별해소 등도 반드시 해나가야 할 사업"이라고 밝혔다.

금융경제연구소 이찬근 소장(인천대 교수)은 김기준 위원장을 '선비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지만 '고지식하고 원칙적인 성격' 때문이다.


김기준 위원장이 노동조합 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7년이었다. 외환은행에 입사한 지 2년만에 노조 간부활동을 시작한 김 위원장은 "솔직히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노동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며 "단지 대학 4학년 때 일어난 광주항쟁은 나에겐 충격적인 경험이었고 그 이후 '앞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개인의 안락함보다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역할을 하자'라는 다짐을 해 왔다"고 말했다.


이후 4년간 간부생활을 하던 김 위원장은 다시 현장으로 가서 근무를 했고, 1995년 주위의 권유로 노조위원장에 출마해 당선된다.


하지만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시절의 기억은 그에게 있어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장 가슴아픈 상처를 줬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조합원의 임금을 반납하고 정부의 강제적 구조조정에 굴복, 패배해서 32%의 동료들을 내보냈던 일은 지금도 쓰라리면서 가슴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얘기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3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갑 재선거에서 사회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산별노조가 앞으로 정부와 자본에 대한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는 체 게바라의 말을 좌우명으로 가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 말은 많은 운동가들이 염두해둬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며 "인간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운동을 통해서 사회를 바꿔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말이기 때문에 늘 마음 속에 새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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