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는 ‘공직선거후보 선출 규정 중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지역구 후보의 30% 이상을 여성후보에 할당(단, 2006년 지방선거는 20%)’하는 방침을  통과시켰다. 애초에 여성위원회에서 준비했던 안을 2006위원회에서 지역실정에 대한 고려로 2006 지방선거에 한해 수정안을 제출하여 중앙위에 제출한 안이다. 적잖은 논란이 있었으나 예상보다는 쉽게 통과되었다.

여성단체의 민주노동당 환영 논평

이 안건을 처리하기 전에 김혜경 대표와 여성최고위원, 여성의원들이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안 관철을 위한 논의를 했다. 여성지도부 전체가 나서서 언론에도 공개하지 않고 작전을 짰던 것이다. 그러나 준비했던 것에 비해 결의과정은 순탄했다. 중앙위원회 이전에 내가 일일이 파악한 것으로도 좌우파를 막론하고 남성중앙위원은 물론 관점이 뚜렷하다는 여성중앙위원들조차도 지역실정이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던 것에 비하면 너무 쉽게 처리된 것이다.

이런 안건이 부결되면 진보정당의 이미지가 손상된다는 기본 인식이 이미 자리를 잡았던 것일까? 더 이상 할당제에 관해서는 저항(?)을 포기한 것일까? 이 논의 과정에서 반대 논리를 펼친 중앙위원에게 “동지의 진보적 원칙과 철학을 되돌아보라”고 일침을 가한 심상정 의원의 토론 등 중앙위원들의 치열한 논쟁이 있었고 당 여성위원회와 관계자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놀랍고 새로웠다.

중앙위원회 직후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이하 여세연)에서 환영논평을 냈다. 가장 진보적인 여성정책과 당내 제도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30대 남성노동자의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 민주노동당에 대해 여성단체가 늘 미온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내 제도의 진보성에 비해 여성의 정치 진출의 구체적 지표가 될 지역구 여성 후보의 미진함을 비판하며 민주노동당의 여성의 정당으로서의 한계를 지적했던 여세연 조현옥 대표의 칼럼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을 하며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렇게 할당제가 논란이 될 때마다 수많은 반대논리와 싸워왔던 과거 중앙위원회의 치열했던 논쟁이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가벼운 성장통으로 기억되는 할당제 논란

나는 1999년 창당 준비위원회에서 여성위원회 준비를 함께 하는 것으로 당 활동을 시작했다. 당헌 당규에 여성할당제를 명시하는 것과 이것을 구체적으로 각 단위에서 실행하는 것, 반성폭력 규정을 만들고 당내 성평등 문화를 만들기까지 무수히 많은 논란과 갈등이 있었다.

창당 대의원대회에서 당헌에 ‘모든 임명직과 선출직 여성할당 30%’를 명시하기까지 벌였던 논쟁과 이후 이것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과정, 2002년 광역비례대표 후보 홀수 순번 여성 배정, 그리고 이번 중앙위 결정까지 할당제를 적용하는 과정은 당내 여성주의자들의 투쟁의 과정이었다.

여성위원회가 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위원회 내부 논란부터 시작되었다. 민주노총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여성의 반대도 있었고 지역사정 때문에 반대하는 여성도 있었다. 그 다음은 대표단, 상집이었다. 전국집행위원회를 거쳐서 중앙위원회까지 안건이 올라가는 과정 모두가 철저한 난관이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근거 없는 반대논리에 맞서 싸웠고 외국사례, 다른 정당 사례를 들이대기도 하였으며 ‘진보정당에서 이 정도를 부결시키면 망신이다’고 협박하며 설득했다. 모든 중앙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화통화를 하여 사전 토론을 하고 설득하며 표 계산을 했고 회의장에서 직접 주변 사람들 표 관리를 했고 비디오 녹화까지 해서 투표 행위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전국집행위원회 구성에서 여성할당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수많은 타협의 안을 만들어 냈던 기억…, 상무집행위원회 구성에서 단 한 번도 여성할당을 지키지 않아 권영길 대표에게 여성 지구당위원장들이 집단 항의 방문하고 사발통문을 돌려 중앙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인준을 거부했다가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통과시켰던 일들….

할당제가 제기될 때마다 ‘여성위원회가 일은 안하고 할당제만 물고 늘어진다’는 비난이 공공연했을 정도로 우리 진보에 여성주의는 황무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당의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가벼운 성장통으로 기억될 정도로 우리 당은 많이 변했다. 

나를 대중정치인으로 만든 여성주의

할당제가 제기될 때마다 ‘여성이 없다’는 반대논리대로 2000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21명의 후보를 출마시켰지만 그 중 단 한명도 여성후보가 없었다. 당의 여성적 관점과 실천의 한계이기도 했고 준비된 여성이 없다는 것을 그대로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2002년 영등포갑지구당 위원장으로 지역에 대중정치인으로 나선 것은 이 한계를 누구보다 먼저 느꼈고 누구보다 많은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2002년 지방선거에 우리 지역에 여성후보를 출마시켰고 다른 지역보다 여성활동가를 많이 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2004년 내가 여성후보로 총선에 출마하고 중앙당에 대변인으로 돌아온 현재까지 나에게 진보정당운동과 여성주의의 확립은 절대균형을 갖춰야할 원칙이었다.

보통선거권도 투쟁하지 않고 부여 받았던 우리 여성들이다. 그러나 여성의 정치진출은 그 어느 후진국에 견줄 바 없이 취약했다. 이런 현실에서 진보정당에서조차 20%라는 여성당원비율의 한계를 깨고 무능할 것이라는 의심과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이 권리장전이 때로는 당 사업을 방기하는 것으로 매도되고 노동자 중심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오인되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지속된 여성 당원들의 당내 지위 확보 투쟁은 이제 진보정당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여성주의는 진보성의 척도로 자랑만하는 상품이 아니다

우리에게 여성주의는 더 이상 진보성의 척도로 자랑만하는 상품이 아니라 모든 사안에서 반드시 관철시켜야 할 구체적 원칙이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당 중앙당 당직자 중 실장급 인사에서 공동대변인 중 한 사람만 여성인 경우를 제외하고 단 한명도 여성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헌에 못 박혀 있는 할당제의 현실 안착 정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역구 여성할당 강제조치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논란 중에 실제로 여건이 안 되는 지역도 있다. 현실이 그렇기에 이 제도를 만들었으며 각 지역에서는 당이 만든 소중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다각도의 고민과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중앙당은 김혜경 대표가 직접 여성후보발굴과 육성을 위해 일선에서 진두지휘할 의사를 밝혔다. 단지 숫적 비율을 높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후보들이 보다 더 경쟁력을 갖추고 정치영역의 진출을 높일 수 있도록 여성만이 아닌 전당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2002년 지방선거 여성비례대표 의원을 모두 여성으로 당선시켰다. ‘과연 여성이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안고 출발했지만 이제 임기를 거의 다 마치기까지 ‘과연 잘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우리가 만든 제도를 우리가 얼마나 잘 운영해왔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중앙위 방침으로 2006년 선거를 잘 치르고 4년 후에 우리는 이보다 더 좋은 점수를 매기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아니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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