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끝에 두번째 대대적 기업퇴출이 이뤄졌다.

11.3 기업 퇴출은 1998년 6월의 1차 퇴출에 비해 강도나 판정절차의 투명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게 대체적인 시장의 평가다.

금감위가 사실상 판정을 주도했던 1차 때와 달리 채권단의 자율결정에 맡겨 빌려준 돈을 돌려 받을 수 있는지를 철저히 따지는 방식으로 기업판정이 이뤄진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현대건설. 쌍용양회 등의 퇴출여부를 놓고 채권단간 이해가 엇갈려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한데다, 일부 기업의 경우 주채권은행의 득실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등 문제점도 노출됐다.

마치 벼락공부하듯 시한을 정해 놓고 많은 기업을 일시에 퇴출시킴으로써시장혼란을 부추긴 점도 문제다. 차제에 부실기업이 시장원리에 따라 수시로 정리되는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은 과제는 이번 퇴출판정에 따른 후유증을 얼마나 빨리 효과적으로 극복해내느냐는 것이다. 그래야 자칫 반짝효과로 그치지 않고 기업구조조정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시장 불확실성 제거에 초점=정부가 강조한 판정기준은 '원칙대로'였다. 1차 기업퇴출이나 금융개혁의 실패 이유가 원칙을 분명히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 내에선 이번에도 정치권이나 외부 압력에 밀려 제대로 기업퇴출이이뤄지지 않을 경우 우리 경제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란 위기의식이 최근 크게 확산돼 왔다.

이근영(李瑾榮)금융감독위원장은 3일 "부실기업 판정을 제대로 못할 경우 우리 경제는 당장 내년부터 희망이 없다" 며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의구조조정을 지켜보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 원칙대로의 판정을 채권단에 줄곧 주문했다" 고 말했다.

◇ 시장 기대엔 미흡=채권단은 이번 판정의 초점이었던 현대건설. 쌍용양회의 처리를 놓고 진통을 거듭하다 사실상 판정을 유보했다.

채권단은 "신규지원을 끊고 유동성 문제가 생기면 즉시 법정관리에 넣겠다" 고 했지만 두 회사가 자구계획을 이행하는 동안은 만기가 돌아오는 여신을 연장해주기로 했다.

채권단은 또 현재 워크아웃이나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대부분 '조건부 회생' 판정을 내렸다.

이는 은행들이 기업의 회생 가능성보다는 '은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먼저 판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 퇴출 후유증 조기 수습이 관건=정부가 내놓은 기업퇴출 후 대책은 우선 산업기반 붕괴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동아건설. 우방 등 건설업체의 국내외 공사는 계속 추진해 실업을 최소화하되 고용보험을 활용해 실업의 고통을 가능한 한 덜어주기로 했다.

또 퇴출기업의 어음을 사주는 은행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이 연 3%의 저리로 자금을 지원해 연쇄부도나 신용경색을 막기로 했다.

금융연구원 김상환 박사는 "이번 조치로 연쇄부도나 실업확대 등 단기충격은 있겠지만 통제가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다" 며 "정부는 단기 비상대책뿐 아니라 퇴출에 따른 명확한 손실분담 원칙을 세우는 등 부실기업상시퇴출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데 주력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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