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만이 길이다.' 누구나 그렇게 말한다. 굳이 외국의 경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말은 아마 정답일 것이다. 그리고,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심상히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성과들이 쌓여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산별이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앞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산별 건설운동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부터 점검해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매일노동뉴스>가 산별 위원장들의 목소리를 중계한다. 지난주 윤영규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인터뷰에 이어 이번주에는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 인터뷰를 싣는다. 다만 금속노조가 4기 임원선거를 진행 중임을 감안, 상대 후보인 문영만 위원장 후보의 인터뷰를 함께 게재한다. 문 후보 인터뷰는 7일자로 실릴 예정이다. <편집자 주>



114개 노조, 3만1,213명 조합원으로 지난 2001년 2월 출범한 금속노조. 한국노조운동에서 본격적인 산별노조 운동의 역사를 열었던 금속노조가 올해로 5살이 됐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현재 174개 지회, 3만9,548명의 조합원이 가입했으며, 산별 중앙교섭 역시 3차례나 진행해 손배가압류, 주5일제, 불법파견 정규직화, 사용자단체 구성에 합의하는 등 명실상부 한국 산별노조운동의 길을 열어가는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 금속노조는 3기를 마감하고 4기 임원을 선출하기 위해 분주하다. 매년 단독후보로 치러졌던 선거와 달리 올해 4기 임원선거는 김창한 후보조와 문영만 후보조가 경선에 나섰다. 특히 올해 선거는 2007년 복수노조 체제에 대비해 금속연맹 소속 노조의 산별노조 전환뿐만 아니라 금속노조 제2의 도약기를 준비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번 선거가 지난 5년의 금속노조 역사를 명확히 평가하고 새로운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는 기대가 높다.


김창한 현 금속노조 위원장이 그 길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지금까지 연임이 없었던 금속노조 역사를 감안할 때 ‘재출마’는 그 자체가 부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4기 금속노조 위원장의 역할이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지금이라도 현장으로 들어가서 땀 흘릴 수 있는 자세는 갖고 있다. 내 스스로의 동의만 아니라 조합원 다수의 동의를 통해서 기꺼이 그 역할을 맡겠다. 3기 위원장을 하면서 내 운동이 보다 치열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점이 많은 3기였지만 최선을 다했고 신자유주의 공세가 보다 거세질 4기 금속노조에서도 위원장으로서 비정규직 조직화, 산별전환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 결의와 자신감이 있다.”

2003년 첫 산별 중앙교섭을 성사시켰던 금속노조. 당시 노조는 금속관계사용자회의와 기존임금 저하 없는 주5일제 근무제 시행을 합의하는 성과를 안았다. 이는 ‘주5일 근무제’와 관련해 현대차노조를 비롯해 노정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던 시기,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2003년 두산중공업 조합원 고 배달호씨의 죽음, 한진중공업 고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됐던 손배가압류 폐지에 대해서도 금속노조는 2004년 산별 중앙교섭에서 이를 합의했다. 그밖에도 2004년 산별 중앙교섭은 비정규노동자 및 이주노동자를 포괄하는 법정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최저임금에 합의, 금속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역시 노동계의 최대 화두인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관련해서도 금속노조는 ‘관계기관에 의해 불법파견 확인시 소정의 절차에 따라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한다’고 합의하는 성과를 낳았다.

30만 산별시대…꿈은 이루어진다

“4만 조직의 산별노조는 5년의 역사 동안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왔다. 그러나 160만 전체 금속노동자 중 금속산업연맹으로 조직된 노동자 수는 16만여명에 그치며, 금속노조는 이 규모의 1/4인 수준인 4만여명만을 조직한 상태다. 특히 현대차노조를 비롯해 대공장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못해 산업정책 개입과 위력적인 파업을 벌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힘있는 산별노조로 나아가기 위한 최대 과제는 대공장노조의 산별전환을 통한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는 길뿐이다.” 김창한 위원장의 말이다.

이를 위해 그는 2006년 상반기 현대차, 기아차 등 대공장 조직전환 실현, 2006년 하반기 노조 조기선거를 통한 통합지도력을 구축을 제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대정부 투쟁과 교섭을 통해 산별노조 및 산별교섭을 제도화하고 현대재벌 등 계열사 및 2, 3차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해 30만 산별시대를 이끌겠다는 것.

김창한 위원장은 이러한 산별노조 전환의 가능성은 간부와 활동가들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총자본과 총노동의 싸움으로 현장의 간부나 활동가, 조합원들이 이를 인식하고 함께 나가기만 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며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경우 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조직률이 11%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사내하청,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계약해지, 징계해고 등 여전히 노조를 설립하는 데 어려움이 존재한다. 금속노조는 올해 중앙교섭에서 ‘불법파견 확인 시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노조가입을 이유로 고용문제 발생 시 정규직 채용’에 합의했다. 이러한 3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노총 차원의 대정부 투쟁과 교섭으로, 전체 중소영세사업장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화를 확대하고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으로 산별교섭이 제도화되면 30만 산별시대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된다.” 김 위원장의 말에는 자신과 확신이 배어 있었다.

최근 INI스틸 포항지회가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노조인 INI스틸 인천공장으로의 통합을 추진한 것을 비롯해 경주지부의 동진지회, 부산양산지부의 동신유화지회가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는 징계위를 열어 이를 반조직행위로 규정하고 임원진을 금속노조에서 제명했다. 그러나 대구지부 현대금속지회에서도 회사쪽이 금속노조 탈퇴를 추진하는 공문이 발견되는 등 잇따르는 금속노조 탈퇴에 대한 조직진단이 필요할 시점이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초기 출범 당시 모두 ‘산별’ 하면 ‘도깨비 방망이’를 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산별노조로 전환하니까 재정도 절반 이상 줄고, 간부들은 조직 방침을 받아 안기 위해서 쉴 새 없이 조합원들을 조직해야 했다. 반면 조합원들의 경우 과거보다 피부에 닿지 않는 사회적 요구를 가지고 투쟁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산별노조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산별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김창한 위원장은 INI포항스틸지회를 비롯해 최근 자본에 의한 금속노조 '흔들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일부 지회가 탈퇴를 하긴 했지만, 조직을 위협할 정도의 큰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선의 간부와 활동가들이 노조 사업에 부담을 느끼고 스스로 자기 발전을 해나갈 수 없는 구조, 이로 인해 누적되는 조직의 피로도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5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출발할 당시보다 조직이 안정돼 있고, ‘한다면 하는’ 금속노조 기풍에 대한 자부심, 간부나 활동가들이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핵심조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의식이 강화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집회와 투쟁으로 이들은 자기 운동에 대한 결의를 스스로 다질 수밖에 없는 구조 속으로 내몰리게 됐다.”

즉, 금속노조 초기였던 1~2기, 규율과 강제를 통해 사업 진행이 가능했지만 모든 투쟁의 전면에 나서야 했던 간부와 활동가들의 피로도는 조직에 구심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이제 금속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에게 산별노조의 분명한 전망을 심어주지 못하고 계속된 규율과 강제를 강요할 경우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위기 인식에 그가 내세운 대안은 ‘현장조직력 강화를 위한 일상 활동 강화, 전략사업장 재건’이다. 구호성 사업이 아닌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생활하며 일상활동을 강화하겠다는 것. 노조사업에 대해 조합원 설명회를 의무화하고 노조활동에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안과 비판 수렴을 제도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간부들 역시 재충전과 사상 재무장을 위한 1주일 연수교육 실시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노동진영이 처해 있는 현실은 암혹하다. 금융과 공기업, 알짜배기 기업이 모두 외국자본에 팔려나가고 국내자본은 동남아로 앞 다투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기 금속노조에서는 이러한 산업정책에 적극 개입해 경제주권을 지키고 노동자들의 고용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전망을 내세울 때만이 산별노조운동의 전망을 말할 수 있다.” 김창한 위원장은 조직복원을 통해서만 산별노조의 전망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그는 4기 금속노조는 △산업공동화, 바이백(buy-back) 저지, 산업구조조정 정책 대응 강화 △단가인하, 납품이원화 등 원·하청 불공정거래 시정 △투기자본, 부도, 법정관리, 폐업 사업장 대응 강화 △산자부, 재경부, 공정거래위 등 대정부 교섭과 투쟁 강화 △복수노조 인정과 전임자 임금제한으로 노조를 통제하려는 로드맵 저지를 반드시 실현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외에도 김창한 위원장이 4기 금속노조를 책임지면서 하고 싶은 일은 지면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쉴 새 없는 기자의 질문에 단 한번도 머뭇거리지 않고 산별노조 운동의 한계와 과제, 전망을 제시했던 그가 금속노조 현안 문제를 묻는 질문에 한 템포 대답을 늦춘다.

“어렵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의 노조 인정과 산재승인, 현대차 아산·전주 사내하청지회를 비롯, 사내하청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등 현안 투쟁사업장을 비롯해 곧바로 가시화될 해외시장 이전, 비정규노조 인정 등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는 것이 없는 금속노조의 현안 문제들이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장기투쟁사업장도 천막 한 번 치면 3개월 기본이고, 몇년씩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는 사업장도 부지기수다. 워낙 자본이 악질이라 갑갑한 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투쟁들을 전체의 동력으로 효율적으로 안배하고 가져가야 하지 않겠나. 신중하고 또 치밀하게 조직해 힘있게 실천할 수 있는 기풍. 조직운영의 ‘근본’을 잡는 것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이 선이라고 본다.”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창한 위원장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여실히 나타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금속노조는 규약상 출마를 하더라도 현 위원장 직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3기 금속노조의 사업일정과 4기 금속노조 임원선거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

금속에는 장기투쟁사업장 문제만 아니라 해외시장 이전, 비정규직 문제 등 ‘힘들다고 피해갈 수만은 없는’ 중요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4기 금속노조를 책임질 것을 약속하고 출마한 김창한 위원장에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조금이라도 더 들어야 한다는 욕심에 질문을 계속했다.

김창한 위원장은 ‘답은 간단하다’고 답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실마리는 산별노조 전환의 완성에 있다. 해외시장 이전 문제도, 비정규직 문제도 원·하청노조의 공동투쟁, 연대만 있다면 자본의 힘에 강고히 맞설 수 있다. 물론 보이는 답처럼 이를 이행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완성차에서 일하는 노조간부나 활동가들, 깨어 있는 조합원들이 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러한 연대투쟁의 틀은 결과적으로 금속노조가 힘있는 조직, 보다 큰 산별노조로 완성되고 노조의 투쟁방침을 ‘명확히’ 가져가고 ‘정확히’ 배치한다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물론 산별노조로 이행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에 대해 김창한 위원장도 동의한다. 올해 기아차노조가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산별노조추진위를 구성해 산별노조 추진을 결의하고 현대차노조도 산별특위 추진사업 예산을 책정하는 등 산별노조 전환 과정을 밟고 있긴 하지만, 대공장노조의 산별전환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 또 그동안 금속노조의 산별과정에 대한 명확한 평가, 금속노조와 금속연맹과의 관계 재설정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지만 시간은 촉박하다.

김창한 위원장은 “많은 난관들이 있겠지만 ‘금속노조가 한다면 한다’는 기풍에 걸맞게 열악한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총자본의 공세에 최선을 다할 것이고 저항이 아닌 공격으로 가기 위해 4만이 아닌 규모의 확대를 통한 질적 강화까지, 금속노조가 자신 있게 나서겠다”고 밝혔다.

4기 금속노조의 과제에 대해 민주노조운동의 산별노조 역사를 확립하고 제2의 금속노조 도약기를 실현하겠다는 김창한 위원장. 인터뷰 내내 이에 걸맞는 금속노조 위원장이 되겠다고 장담했다. 내년 상반기 산별노조 완성의 틀이 잡히면 하반기 기득권을 포기하고 과감히 조기선거를 치르겠다는 그. 형식적인 운동이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앞으로의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 자기를 던지는 투쟁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일면 지나친 ‘욕심’으로도 보여지는 그의 약속에 대한 평가는 4만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몫이다.

"현장 반감은 사라졌지만 지지는 아직 모자라"

민주노동당의 평당원인 김창한 위원장은 12살 된 딸, 노모와 함께 산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집에 들어가니 사실 어머니에게 얹혀사는 모양새다. 그나마 4기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출마한 뒤에는 집에 들어간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그가 ‘마누라’라고 부르는 동갑내기 아내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인 유선희씨다. 아내 역시 당 일로 가정생활에 충실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


최고위원 아내를 곁에 둔 탓에서 일상적인 노조와 당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그. “당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현장의 대중들과 보다 밀접히 접근할 필요성이 있어요. 총연맹이 투쟁과 정책 생산을 병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당에서도 이를 적극 받아 안아서 정책을 생산하면 좋을 텐데 말이죠. 물론 노조와 당의 관계는 보다 돈독해야겠죠.”


김창한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이 보다 대중적인 정당이 되기를 소망했다. “당원을 중심으로 당이 운영돼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선언·강령에 대해서는 좀더 대중적으로 열어둘 필요가 있지 않을런지. 물론 당원들을 의식화시키고 선언·강령을 체득화 시키는 과정이 필요하죠.”


2004년 민주노동당이 국회 10석을 획득하기까지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냉담했다. 오히려 ‘정치적 자유’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선거권에서 노조가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는 것.


“지금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반발은 사라졌죠. 그러나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선회하지도 않고 있어요. 이는 당의 책임이라기보다는 노조의 책임이겠죠.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의 정치권력을 잡기 위해서 민주노동당의 ‘위상’과 ‘역할’을 노조 스스로 만들어야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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