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인가보다. 여성빈곤문제에 대한 현장의 얘기를 듣고 싶다는 요청으로 정부측에서 주최한 여성빈곤정책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빈곤여성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각 정부부처의 담당자도 참석했는데 그 중 한 사람에게 ‘별도의 여성빈곤정책이 왜 필요하냐? 사실 참여정부 이후 각종 빈곤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여성 아니냐?’라는 말을 들었다.

순간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빈곤정책의 수혜자가 여성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빈곤의 여성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실증적 증거이며 여성일수록 빈곤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성인지적 대책이 더욱 절실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여성이 최대 수혜자라니. 이것은 이미 여성은 혜택을 받고 있으니 무엇을 더 요구한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 아닌가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이런 시각은 그 사람만의 시각은 아닌 것 같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빈곤의 여성화가 얼마나 심각한가는 여러 통계자료가 보여줄 뿐만 아니라 본 회 지부의 실업상담, 빈곤여성상담의 증가에서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도 여성이 빈곤하게 되는 사회구조적인 원인은 놔두고 수혜 대상자가 여성이 다수임을 예로 들어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여성 빈곤의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어도 한참 뒤바뀐 잘못된 인식이다.

바로 며칠 전에 서울지부 구로삶터자활후견기관에 교육을 하러 간 적이 있다. 교육 대상은 사회적 일자리 및 자활근로 간병인 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는 수급자 및 차상위 빈곤여성들인데 대부분 30~50대 여성들로 한부모여성이 많았다. 복지수혜자인 이들은 자신이 빈곤하게 된 원인에 대해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식당에서 일하려 해도 40대가 넘으면 식당 주인이 채용하기를 꺼려하고 중국에서 오신 조선족 여성들이 싼 값에라도 일하려 하기 때문에 자신들을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제조업 생산직 취업은 취업 연령이 35세이며 그나마 잔업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며 일해야 하는 여성한부모는 취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지금의 간병 일자리는 월 급여 60만원선이어서 이 돈으로 굶지는 않겠지만 정말 근근히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열심히 일을 하고 싶지만 갈 곳이 없는데 어떻게 탈빈곤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 제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달라는 이들의 요구에는 현 정부의 빈곤정책에 대한 비판과 절실함이 함께 묻어나왔다.

여성이 빈곤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성(sex)에 따라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가장 크다. 여성이 빈곤정책의 수혜대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성이 일을 통해 적정한 소득을 벌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빈곤여성의 일자리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지는 않고 마치 이들이 수혜자로 계속 머물고 싶어서 수혜비율이 늘어나는 것인 냥 생각하는 것은 빈곤여성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나 모른 처사이다.

대부분 30대 이상의 여성들은 살림 잘하고 남편 내조 잘하는 것이 최고라는 분명한 성역할 교육을 받았던 세대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닥친 남편의 사업실패나 가정폭력, 사별, 이혼 등에 아무런 준비 없이 노출되어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는 이 여성들은 현재의 성차별적 노동시장 하에서는 빈곤의 덫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부모 여성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도 당당한 직업, 전문 직업을 갖고 싶고 노후대책을 위한 직업을 갖고 싶지 공장에서 잠깐 일하다 말고 늙어가지고 이제 그만 나오세요, 이런 직장에 가서 이 나이에 비난과 수모를 겪으며 일하고 싶지 않다. 정말 사회의 부산물, 혹 덩어리, 짐 덩어리가 아니라 나도 세금 내며 당당하게 일하고 싶다.”

일을 할 테니 일자리를 달라는 빈곤여성의 당연한 요구에 정부는 언제까지 수혜비율이라는 숫자만 이야기 할 건가? 여성빈곤을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성인지 여성빈곤대책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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