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전 어머니에 이어 이번에는 아버지까지. "성환이 언제 나오냐."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불효자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갈 뿐이다. 김성환(47)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부산교도소에서 일시석방 돼 부친상을 치렀다. 29일 월요일 저녁 서울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장례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휴일이라 대법관 4명의 동의가 늦춰졌던 것.

삼우제를 치른 다음날인 1일 오전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눈시울은 붉었고, 초췌하고 야윈 모습이었다.


감옥의 하루하루 뼈와 살이 녹는 느낌

“나에게 삼성 수사권을 달라!” 삼성SDI가 ‘불법위치추적’을 통해 노동자를 사찰하고 감사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기소중지 결정을 내린 검찰을 향해 던진 김성환 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삼성과 10여년 넘게 외로운 싸움을 전개해 왔다. “하루하루가 뼈와 살이 녹아드는 느낌입니다.” 그런 그이기에 기자와의 만남에서도 삼성 이건희 회장의 고대학위사건과 'X파일' 사건 등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삼성과 권력, 사법부, 언론의 결탁 문제가 흐지부지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음은 물론이다.

“친삼성, 삼성장학생 검사들이 ‘도청내용’ 수사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X파일 사건 주임검사인 김병현 검사와 김 위원장은 악연이 있었다. 2003년 6월 울산의 삼성SDI 노사협의 위원선거에 사측이 개입한 것을 검찰은 수사를 종결했다. 사건은 단순방화로 처리되었고 노동자 3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담당검사가 김병현 검사였다는 것.

“대통령은 ‘X파일 내용이 본질이 아니라 권력의 도청이 본질’이라고 하니 삼성의 불법비리를 누굴 믿고 맡기겠어요.” 김 위원장은 권력과 자본, 사법부와 언론의 검은 카르텔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했다.

108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X파일공대위’ 활동에 대한 기대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은 공대위에 대해 “단순한 폭로와 항의가 아닌 국민적 저항을 조직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쓴소리가 나왔다. “지난해 상집에서도 ‘삼성특대위’ 구성이 통과됐지만 흐지부지 되면서 힘이 실리지 않고 있습니다. 금속노조는 지난해 개별가입한 삼성노동자들이 삼성에 의해 강제탈퇴 당했는데도 규탄성명조차 안 냈어요.” 김 위원장은 삼성에서 조합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토로했다.

오직 하나, 삼성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김 위원장의 안타까움은 곳곳에서 묻어났다. 올초 단병호 의원실을 통해 삼성의 노조탈퇴 강요·금품회유를 폭로하며 양심선언한 홍두하 등 삼성노동자들. 이들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검찰고소를 취하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며 ‘잠적’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후속보도를 하면 그들이 오히려 위안받을 수 있을 텐데.” 5년여 투쟁 끝에 지난해 8월 삼성으로부터 산재승소한 김명진씨 이야기로 이어졌다. “제대로 치료받고 있지 못하고 합병증으로 고생하는데도 근로복지공단이 최근 치료를 종결할 예정이랍니다.” 이외에도 김 위원장은 ‘공룡삼성’과의 싸움 뒤안길에서 쓸쓸하게 쓰러져간 삼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삼성의 가공할 노동탄압은 현재진행형임에도 언론은 무관심하고 후속보도는 이뤄지지 않는다. X파일 사건이 터진 이후 더욱 김 위원장은 삼성과의 싸움에서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애를 태운다. “군부독재 시절 양심수들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이제 6개월밖에 안됐지만 그래도 하루하루가 귀중한 시간인데…”

김성환 위원장은 지난 2월22일 삼성SDI 명예훼손 혐의로 징역10월(1심)을 선고받고 구속중이며 대법원 상고중이다. 오는 10월21일로 8개월(2심) 만료가 되기 때문에 대법원 상고판결도 그 이전에 이뤄질 전망이다. 만약 형이 확정되면 2002년 삼성 명예훼손으로 인한 징역3년과 집행유예 4년의 기간이 합산되게 된다.

김성환 위원장은 토요일 오전 부산교도소로 돌아간다. 또 ‘상복’에서 ‘수의’로 갈아입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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