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먹고살기 버거웠던 70년대, 내가 살던 동네에 할머니와 함께 살던 소녀가 있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미싱을 밟던 어머니는 결핵에 걸려 공장을 나온 후 빚을 내어 작은 국밥집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생활보호대상자’ 지원정책으로 여성가장 가족에게 정부미나 밀가루를 배급하고 있었다. 추석 즈음에 동회에서 배급하는 밀가루 부대를 외할머니와 함께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던 소녀….

내가 그 소녀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의 미소 때문이다. 그는 저와 비슷한 처지의 동네 친구들을 부추겨 동회로 배급을 타러가고, 무거운 부대를 이고지고 낑낑대면서도, 시종일관 즐겁고 당당한 미소로 또래들을 이끌고 있었다.

배급이 가난한 자의 낙인이 될 수 있음에도 자신의 삶에 당당한 웃음을 키울 줄 알던 그 소녀가 매년 생각이 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한 여성중심 가족의 빈곤의 쳇바퀴를 멈출 방법을 누구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자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한 소녀를 잊지 못하는 이유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여성은 남성의 75%, 적으면 50%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고, 시장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결혼이나 임신을 이유로 가장 먼저 해고당하는 존재이다. 또한 여성의 노동은 시간제 노동·계절노동·하청 등의 비정규직이며, 여성 노동자의 94%가 비조직·비정규 부문에 일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만일 10여 년 동안 전업주부로 남편의 사회노동에 의존하던 여성이 이혼하게 되었다면, 손에 쥔 것은 자녀의 양육권 밖에 없고 전세금조차 거머쥐지 못했다면, 빈곤은 곧 그의 미래가 된다.

요즘 여성중심 가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인터넷 모자가정 카페에 자주 들른다. 카페를 통해 그들은 현재의 모부자복지 정책으로는 모자가정 중 많은 수가 아이의 우유값 2만원의 생활비 지원밖에 받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현재 복지정책은 부양 의무를 2촌까지 지우고 있어 형제가 있거나 아주 적은 수입이라도 있다면 기초생계비 수급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자가장이어야 한다.

당장 입에 풀칠할 일자리를 잡아야함으로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들은 노동력을 업그레이드 할 만한 훈련의 기회를 잡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자녀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어머니는 생계를 포기하거나 자녀양육을 포기해야 한다. 일례로 정신지체장애아를 키우는 한 어머니가 자신이 일하는 시간 동안 아이를 차에 묶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연은 같은 어머니로서 그 피눈물이 짐작 가고도 남을 일 아니겠는가. 

빈곤의 사슬에도 여성은 자립을 꿈꿨다

그러나 여성이 독립을 선언하는 그 순간 다가오는 빈곤의 사슬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가족을 만들고 사회적으로 자립을 꿈꾸는 여성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히 호주제 폐지 시행이 코앞에 다가선 오늘, 당차게 다양한 가족문화의 한 획을 긋는 여성들이 있다면 나는 비혼모를 꼽고 싶다.

내가 비혼모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우선 그들은 주체적으로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와 가족을 만들고 사회적 자립을 계획한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혼모 쉼터인 ‘애란원’의 관계자는 이 어머니들이 얼마나 열심히 직업훈련에 임하고 있는지,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회노동을 찾고 있고, 또 모자시설을 졸업해 독립된 세대로 사회에 뿌리내리고 싶어하는지를 말한다.

저출산의 시대라고 해서 이미 생활 패턴이 달라진 여성들이 아이를 더 낳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젊은 어머니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저출산에 대한 하나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빈곤의 여성화가 진행되는 역사 속에서, 여성은 단순한 수급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여성은 아주 오랜 빈곤 속에서도 사회가 배제한 가족을 돌보고 구축해왔고, 스스로 혹은 아이를 키워 사회적 일꾼으로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제라도 빈곤 속에서 당당하게 사회를 지탱해온 여성가족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자활지원정책을 고민해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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