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는 유일하게 2년간의 실업자생활 이력이 있다. 나는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사무관으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이후 25년 동안 줄곧 간부로서의 직책에 충실하면서 공직생활을 계속해왔다. 그 과정에서 관청과 주민과의 의사소통에 특별한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착각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내가 공직생활을 떠나 한 사람의 평범한 민간인의 신분으로 되돌아온 뒤의 일이었다.

98년 공직생활을 떠난 후 민원인의 한 사람으로서 구청을 찾고, 시청을 찾고, 등기소를 찾고, 기타 다양한 관공서를 찾았을 때 그곳의 문턱이 왜 그렇게도 높아보이던지, 그리고 왜 그렇게도 모든 일이 민원인 중심이 아니라 관청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끼면서 내 공직생활 25년동안의 환상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그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듯이 조직과 조직인의 관계도 일정한 `거리'를 두지 않고 그 조직 속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으면 그 조직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그 동안 나는 왜 간과하면서 공직생활을 해왔던가 하고 아픈 각성의 시간을 가졌었다.

이러한 각성은 나에게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지평을 열어주었다. 그것은 `주민이 곧 하늘이며 인간은 개개인이 소우주와 같은 존재이므로 모든 행정은 주민중심, 인간위주로 펼쳐져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올 6월 나는 2년간의 실업자생활을 마감하고 송파구청장이라는 공직자 신분으로 다시 돌아왔다. 평범한 민간인에서 다시 공직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다르다.

우선 탁상에서 하던 행정에서 현장중심의 행정으로 스타일이 바뀌었다. 직원들에게는 가끔 나의 2년간 실업자생활의 교훈을 말하며 조직의 틀에갇히지 말고 매사에 긍정적, 능동적, 적극적인 자세로 민원인을 대할 것을주문하고 있다.

우리 구의 경우 내가 부임한 이후 행정관청의 문턱 한치 낮추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 어렵던 재건축사업이 3개월 이내에 해결되었고 구청장 집무실 앞에 장사진을 치던 집단민원이 거의 사라진것이다.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 인간사이기에, 생각하나 바꾸면 천지가 바뀌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공직자가나와 같이 실업자 생활의 아픈 체험 없이도 `주민이 하늘'임을 깨달을 수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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