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에서 미셸 초스도프스키 교수를 만나라는 연락을 해 왔을 때,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가 고민이 되었다.

지난 1998년 여름 서남아의 한 나라에서 50년 동안 전국노동조합의 사무총장을 지낸 팔순이 가까운 노인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고령으로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뼈가 도드라진 그는 한국의 원로 노동운동가를 만나 2시간 동안 ‘맑스레닌주의’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나는 당시 통역을 맡았다). 맑스와 엥겔스의 공동저작인 <공산당선언>에서 시작된 그의 강의는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서 막을 내렸다. 혹시 이런 식의 만남이 되지나 않을지.


“IMF-미재무부-주한미대사관, 정치 조작의 메커니즘”

18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자신의 이름이 한국 사람들에게 낯설다는 점을 의식했는지 “나의 한국이름은 '초'”라고 너스레를 떤다. “나는 유토피안이 아니며, 실제적인(practical) 사람”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국제운동은 매우 취약하며, 결국 일국 차원의 운동이 강해져야 국제연대도 발전하는 것 아니냐”는 정확하지만, 평범한 진단을 내놓았다. 노동운동과 관련된 좀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자신은 노동운동에 직접 관여하고 있지 않으며 캐나다 노동운동과 독립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에 준비한 질문 몇가지는 접어야 했다.

한국을 방문한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97년 IMF 위기 이후 한국은 미국재무부- IMF-주한미대사관이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식민지로 다시 전락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경식 당시 부총리의 사퇴가 IMF-미재무부-미대사관이 연결된 정치적 조작기제의 산물이라는 주장으로 시작되는 그 다음의 이야기는 그리 새로울 게 없다.

IMF 이후 한국에 쏟아져 들어온 외국돈들은 외국투자자가 아니라 외국투기자본의 것이라는 이야기, 강경식이 경질되고 임창열이 새 경제수장이 된 배경, 산업금융업 경험이 전혀 없으면서도 들인 돈 얼마 없이 정부의 보증 아래 제일은행을 인수해 떼돈을 챙긴 뉴브리지와 미국 정가의 커넥션, 무너지는 한국의 산업자본들(재벌들), 미국자본과 미국정부의 압력 하에 진행된 한국통신과 한국전력 따위 알짜배기 공기업의 민영화, 한국 경제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서방자본, 특히 미국자본의 발 빠른 행보, 그 결과 한국은 재식민지화 되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흐르면, 나는 개인적으로 IMF 이전의 한국 경제, 그리고 한국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떤 성격을 가졌던 것인가 하는 의문에 다다른다. 사실 노동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사회운동은 박정희식 경제발전모델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지나치다고 느낄 정도인데, 군사독재가 없었어도 ‘이 정도’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넘어, 이런 식의 경제발전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대목에 이르면 따로 할 말이 없어진다. 명백한 민간정부인 김영삼 정부까지도 군사독재의 대열에 올려놓는 입장에서 보면, 사실 김영삼 정권 말기인 97년까지의 한국 경제는 미국과 일본에 종속된 식민지 경제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데, IMF 경제위기 이전에는 그토록 종속적이고 비자주적이며, 문제가 많던 우리의 경제제도가 경제위기 이후에는 우리가 반드시 사수해야 할 그 무엇으로 사람들의 의식 속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

“경제적 재식민지화와 주한미군의 존재는 밀접한 관계”

세계은행이나 IMF가 70년대부터 칭찬하기 시작한 한국 경제를 두고 80년대의 치열한 이념 논쟁 시기에 혹자는 ‘식민지 반봉건사회’를, 혹자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를 이야기하기도 했으나, 두 주장의 공통점은 남한이 어쨌든 “정치경제적 종속이 심화되는 비독립적 국가이자 사회”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97년의 외환위기 이후 그 ‘문제 많은’ 체제가 지켜야 할 그 무엇으로 하루아침에 이름표를 바꿔단 것이다. 이런 혼란된 인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시기의 경제정책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바가 있지 않을까?

너무나 우문(愚問)이었는지, 초스도프스키 교수의 답은 너무나 쉽다.

“군사독재의 경제정책은 값싼 노동(cheap labor)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체제였다. 노동기본권은 억압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침해되었다. 그것은 군부-재계-관료의 엘리트가 모든 것을 독점하던 지배체제였다.”

그런데 이런 지적은 이제 한나라당의 인사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걸 모르는 한국 사람은 별로 없다. 문제는 그럼 왜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였는데, 지금 그 모양 그 꼴이고 한국은 훨씬 못사는 나라였는데 이 모양 이 꼴이냐다.

“그것은 한국의 노동자 농민이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부는 모두 노동자 농민 그리고 민중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걸 뺏기 위해 IMF-미재무부-미대사관이 서방자본과 합심해 한국을 재식민지화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미군의 군사적 존재와 따로 떼어내서 설명할 수 없다. 경제적 식민화와 미군의 존재는 밀접히 연관된 문제이다.”

정권과 자본에 대해 투쟁과 반대만 하는 입장에 있다가 이제 한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남아공이나 브라질의 노동운동가들을 만나면 한국의 경제발전모델에 관심이 많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모델은 군사독재 시기의 모델이다. 우리가 개발독재체제로 부르는 이 시기의 경제정책모델을, 그들은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라는 세계은행이나 IMF식 용어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 국제문제 관심 가져야”

한국의 경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국이 다시 IMF 이전 체제로 돌아갈 순 없을 것이다.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민주적인 경제구조로 가야 한다. 노동자가 기업의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 부는 경영인이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노동자, 과학자, 기술자, 농민 등 한 사회의 구성원이 모두 같이 만드는 것이다. 그 부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자본가만 권리를 독점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하다. 유고슬라비아의 자주관리경제체제를 기억하는가? 그것은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었다. 시장경제의 요소와 계획경제의 요소가 반반씩 섞여 있었다. 유념해볼 만한 모델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대안모델이라는 측면에서 남북통일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대안과 관련하여 남북경제의 통합은 새로운 가능성을 줄 수 있다. 북한 경제체제에서 얻는 교훈을 통해 한국 경제체제의 단점을 교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은 남북의 통일 과정에서 보다 민주적인 경제모델을 만들려는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 운동 진영이 최선을 다한다면, 통일 과정은 기간산업의 재국유화, 재벌-국가동맹 체제의 해체, 국가체제의 민주화, 보다 민중지향적인 정부의 출범, 미국 및 서방 이익의 억제, 한반도의 탈군사화, 종국적으로 남북한 국민의 뜻을 따르는 주권과 자율성을 가진 새로운 코리아의 등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대화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초스도프스키 교수의 말처럼 IMF-미재무부-주한미대사관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조작 메커니즘’은 분명히 있으며,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메커니즘은 97년 이전에도 존재했으며, 지금보다 더욱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래서 ‘재식민지화’란 표현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외부 요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내부 요인과 주체 역량의 문제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음모’가 작동하지 않도록 만드는 우리의 실천일 텐데, 그것은 저기 늑대가 있다는 외침만으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운동은 국내의 사건은 물론 국제적인 사건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IMF 위기와 관련해서도 국제 수준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여러 가지 기록물들을 통해 검토하고 평가해 보아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운동 진영에 보다 실증적이고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소리로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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