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진행된 경총 김영배 부회장과의 인터뷰는 바로 전날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에 대한 긴급조정권 발동 이야기로 시작됐다. 아시아나 파업은 노사관계 전문가는 물론 정치, 교육, 부동산 문제와 함께 전 국민이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있다는 ‘노사문제’였기 때문이다.

“다른 조치가 없었다고 본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항공사의 파업이 이렇게 길어진 역사가 없고, 또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단 두 항공사밖에 없기 때문에 한 항공사의 파업은 산별파업 같은 비중을 갖는다. (파업이 마무리되기까지) 25일이나 걸린 건, 너무 길었다. 긴급조정권 발동이 늦었다고 본다.”

‘자율교섭’과 ‘정부 개입’의 간극에 대한 판단은 어떨까?

“정상적인 노사관계라면 긴조권(정부 개입)이 노사 모두에게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쟁의를 주도하는 계층이 소수일 때는 정부 개입을 원한다. 이번 파업에 참가한 아시아나 직원은 350명(노조 발표 402명)이다. 나머지 7천명의 일할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2천명 규모의 노조(아시아나항공노조)의 협상이 또 기다리고 있다. 쟁의 자체가 '전체' 근로자에게 민감한 사항인 만큼 원천적으로 협상이 어렵다. 이건 복수노조의 서막이다. 이런 경우에는 긴조권을 발동해서 조업을 하는 가운데 협상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공정한 3자가 결론을 내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경우에서든 긴조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긴조권 얘기를 이제 1년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기업단위 복수노조 설립 허용 문제로까지 연관시켜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는 과연 ‘전문가 중의 전문가’다운 식견을 과시했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얘기는 노조의 리더십이었다. “후발업체로서의 핸디캡도 컸을 것이다. 대한항공 수준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기에는 문제가 있고, 또 어떤 협상이든 노조가 원하는 걸 100% 가져갈 수는 없다. 내부에서 이를 자연스럽게 정리할 리더십이 갖춰져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여러 의문을 자아내고 있는 회사쪽 발표 손실액과 국민경제에 대한 피해에 대해서도 그의 입장은 확고했다. “매출 손실도 손실이지만 여행객들로서는 우회로를 찾거나 재예약을 해야 했고, 여행사나 화주들의 손실도 만만찮았다. 또한 국내선이 국제선과 연결돼서 움직이는 비중도 크기 때문에 ‘국내선은 운항할수록 적자’라는 논리로만 접근해선 곤란하다.”

하지만 본지 기사(8월16일자)에서도 드러났듯이 수치상으로 확인되는 아시아나의 손실 규모는 크지 않다. ‘18일 국내선 무료 운항’이라는 아시아나의 대책을 놓고 볼 때 이미지 훼손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오히려 근본으로 들어가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날아도 직선거리 500km도 안 되니 수지가 맞지 않는 좁은 국토에다, KTX의 등장으로 1일 생활권이 더욱더 안착된 현실에서 노선조정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노사갈등의 조짐이 보였을 때 정부가 미리부터 부실한 항공산업 정책을 손보는 방식으로 나서줬다면 '그 25일'은 없었어도 될 시간이 아니었을까.

“항공산업의 정책적 문제에 대한 논란은 이번 파업이 남긴 과제여야 한다. 이를 빌미로 노사 양쪽을 조율하려 들면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할 수 있다. 과거 택시와 화물 등에서는 정부 정책으로 돌파구를 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화물은 ‘근로자가 아닌 사람’들의 집단행동이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풀 여지가 있었지만 노사문제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또 하나 문제로 지적될 부분은 ‘합법보장 불법필벌’이라는 이른바 참여정부의 ‘원칙’이다. 정부는 조종사의 파업이 ‘합법’이라는 이유로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보름이 넘어서야 여당이 나서고, 노동부가 나섰다. 빈약한 분쟁조정시스템만을 탓하기에는 정부여당의 ‘무능’ - 결과적으로는 손익계산을 따질 때 최종 승자가 됐지만 - 은 질타하기조차 민망한 상황이었다.

“사전예방 등 분쟁조정시스템은 우리도 고민이다. 노조가 협상과정에서 얻은 것은 전리품이 되는 반면 양보한 것에 대해선 돌아가서 조합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러니까 100% 다 얻어가지 못하면 계속 투쟁, 투쟁만 외치기도 한다. ‘설득’이라는 그 힘겨운 일을 나눠 갖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협상 단계별로 중간자에 의존 또는 위탁해서 합의를 도모한다든가 하는.”

그는 이렇게도 표현했다. "조합원들의 요구가 너무 무절제하니까 지도부가 볼모로 잡힌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관철시켜내지 못한 요구사항에 대해 조합원들을 설득하는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 등으로 노조 지도부가 운신의 폭을 넓혀 확실한 리더십을 갖는 것이 노사관계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앓고 있던 병이 증세로 드러났다

긴조권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지난 9월 정부의 비정규법안 발표 이후 현재까지도 ‘냉랭한’ 노정관계로 옮겨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우리 사회에 그동안 감춰져 있던 여러가지 문제들이 한꺼번에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노사문제 역시 그렇다. 서로가 상대방을 환하게 들여다 보듯 치부가 나오는. 환자가 앓고 있던 병이 증세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다. 그러니까 처방에 대해서 과거 어느 때보다 고민해야 한다.”

감춰졌던 갈등, 증세로 나타난 갈등, ‘채용비리’ 같은 것들을 말하는 걸까? “채용비리 등도 있겠지만, 예를 들어 노동계가 민족민주주의 노선과 같은 정책적 이념과 사상 등을 떳떳하게 판 위에 내놓은 것은 국민으로부터 심판받겠다는 자신감을 꺼내든 거 아닌가. 사용자도 마찬가지다. 정치자금이니 뭐니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심판받았다. 꺼낼 때는 힘들지만 꺼내놓고 나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혼자 끙끙거리고 갖고 있는 생각을 공표함으로써 치료할 수 있는 의사와 약사를 만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내용물과 상표명(라벨링)의 불균형을 지적했다. 그가 말하는 ‘불균형’은 안과 밖이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노사정 논의테이블에 앉아야만 노동계가 유리한데 조직적 입장을 감안해서 앉지 않는다는 것은 불균형이란 것이다. 본심과 태도가 일치하는 상황이 얼른 와야 한다는 것. 결국은 테이블에 앉지 않는 사람이 가장 손해를 볼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그는 이제껏 ‘알면서도 해결하지 않고 감춰놨던’ 복수노조, 전임자 등의 문제를 논의 테이블 위에 올려 해결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노사정위에 이어 노동위원회에서도 ‘탈퇴’를 했다.

노사정위, 노동계에 엄청 도움된다

“고양이가 쥐 생각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노사정위는 노동계에 엄청 도움이 되는 기구다. 세계적으로 봐도 각부 장관을 불러서 노조 대표가 큰 소리 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노사정위를 통해 노동계가 알게 모르게 얻은 게 있다. 어떤 결정을 확 바꾸는 건 없을지 몰라도 논의될 것에 대비해 미리 정책이 결정된 것도 많다. 노동계가 노사정위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조합원들을 위한 진심이 아닐 수 있다.”

그는 좀더 나아갔다. “엄마가 꾸지람 하니까 어린애가 밥 안 먹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비유가 좀 지나친 듯해 “그렇게 써도 관계 없겠느냐”고 물으니, “사실이 그런 거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업계에서는 노사정위가 정상가동 되지 않는 것을 '즐기는' 측면이 있다. 나도 안 불려가니 이렇게 편할 수 없다. 하지만 노사는 만나야 한다.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노사정위밖에 없다. 귀찮지만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구다.”

아무리 노사정위 활용론을 얘기한다 하더라도, 노동계도 그 필요성을 100% 인정한다 하더라도 노동부장관 퇴진은 물론 10월로 예정된 국제노동기구(ILO) 아태지역총회 불참까지 선언할 정도로 경색된 노정관계를 풀기 위해선 ‘뭔가’ 계기가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너무 성급하게 생각지는 말라. 속에 다 열이 나 있는데 지금 바깥 날씨도 덥다. 더운 날씨가 한 풀 꺾이게 되면 계기는 만들어지지 않겠나.”

산별교섭, 사용자도 얻을 수 있는 게 있어야

그는 이어 노사 상생을 위해 노동계가 자신의 요구 100% 관철에만 나서기보다 ‘관계’를 고려해 사용자에게도 유인책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산별교섭에 대한 질문에서였다.

약력
1956년 출생
1987년 경총 조사부장
부설 노동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1992년 경총 조사담당이사
1996년 경총 상무이사(정책본부장)
1998년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현)
1999년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현)
2001년 경총 전무이사
2002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현)
2003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위원(현)
2004년 근로복지공단 이사(현)
경총 부회장(현)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사용자 위원(현)
검찰 공안 자문위원회 위원(현)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위원(현)
“교섭구조의 대세는 분권화이지만 다양화라는 점에서 산별교섭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산별, 지역별 교섭이 노사에게 가장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게 가능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중앙, 지부, 지회 등으로 중층화 된 교섭에 다 나서야 하는데 곤혹스런 일이다. 어떤 곳은 중앙교섭을 하고 있는데, 지회가 독자적으로 파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용자가 기업단위를 벗어난 교섭구조를 원하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데, 노조는 요구조건도 다 얻고 교섭구조도 다 얻는 그림만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용자가 산별교섭을 통해서 얻을 장점은 하나도 없을까? “개별 기업에서 노사가 감정 격해져 싸우는 것보다 산별차원에서 정리해주면 기업 안에서 노사는 협력적 관계를 가져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게 큰지, 산별노조의 강력한 요구에 굴복하는 것이 큰지는 따져봐야 한다.”

오히려 사용자가 주도적으로 기업단위를 초월한 교섭형태를 필요로 하는 경우도 없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불법파견 문제로 원하청노조가 함께 쟁의행위를 준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이 문제는 기업 안에서만 풀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기존 정규직 라인재배치, 사내하청 인력운용 방안은 물론 사외에 있는 2,3차 부품업체들간의 관계 등등을 고려할 때 회사가 먼저 지역단위 노동시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을까?

숙련 중요도 느끼는 기업, 별로 없다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가동률 높낮이에 따라 인력투입을 조정해야 하는데, 정규직노조가 이 문제를 풀 단초를 제공하지 않는 한 상당히 풀기 어렵다. 만약 정규직도 자연스럽게 인원조정 할 수 있는 키만 주어진다면 모두 정규직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뒤집어볼 때 '하향평준화' 우려를 낳게 한다. 그러나 산업과 고용, 경쟁력 등을 얘기할 때 국내에만 시선을 제한시켜서는 곤란하다. 지금 현대차는 인도, 중국, 터키에 이어 미국 앨라바마에까지 공장을 지어 해외생산을 늘리고 있다. 아직까지 산업 전반으로 가시화되진 않았지만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는 노사 모두 마찬가지로 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는 고용안정을 확실히 보장해 주고, 노조는 ‘숙련’ 형성에 매진하면서 국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꾀해야 할 시기 아닐까.

“숙련의 중요성을 느끼는 기업이 별로 없다. 비정규직을 썼을 때 불량률이 올라가 정규직을 동경하는 분위기가 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매뉴얼웍은 로봇이 다 하니까 사람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똑같다. 하지만 정규직 고용조정이 힘드니까 비정규직을 쓰다가 이마저도 한계에 부딪히면 기업은 장기적으로 경쟁력 있는 ‘지역’을 찾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얘기는 뮌헨 사회과학연구소 알트만 교수 등이 주창한 ‘시스템합리화론’에 근간한 것으로 보인다. 유연자동화가 진전될수록 기술이 중심이 되면서 노동의 역할은 부차적이 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숙련의 문제는 작업을 단순화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논리도 만만찮다. 괴팅켄대 사회학연구소 슈만 교수 등은 유연자동화가 진행될수록 노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본다. 기술적으로 복잡해질수록 생산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니 여기에 자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노동의 역할이 중요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바로 신생산개념론이다.

어떤 이론이 맞다, 틀리다 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생산직들의 기술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필요성에 가장 민감히 반응해야 할 기업이 다른 방식으로 기술력을 보완하고 있는 만큼 고용조정이 어려운 현재의 생산직에 대한 숙련문제는 기업으로선 큰 부담은 아니다”는 말에서 보듯 그의 입장은 ‘시스템합리화론’에 가까운 것 같다.

국제기준이 무조건 ‘기준’이 될 수 있나

마지막 질문은 하반기 로드맵 논의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미리 보내온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그동안 로드맵 논의과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제기준이란 걸 잘 보자. 만들어놓고도 힘 있는 나라는 다 빠져나간다. 미국은 ILO 87호 협약(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도 비준 안 했다. 또한 그런 국제기준은 아프리카에 공장 하나 정도 있는 나라도 강대국과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면서 만들어진다.”

국제기준에 대한 아전인수격 해석도 문제이지만, 그 국제기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불신도 상당해 보였다.

“그것 역시 사대주의적 근성 아닌가. 우리(경영계)도 국제기준을 그렇게 활용하기도 하지만 너무 국제기준만 강조하지 않았으면 한다. 예를 들어 노조 설립에 대한 규제를 말하는데 외국 사례를 보면 적어도 20명 이상 모여야 설립 가능하다는 나라도 있다. 또한 조정전치제도도 없애자고 하는데,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도 조정전치주의가 있다. 절차적 의미로 법제화한 곳도 있고, 쟁의정당성을 조각할 정도로 강하게 해 놓은 곳도 있다. 일방적으로 외국 사례에서 조정전치주의 없다고만 주장할 게 아니다. 행태는 국제기준이 아닌데 제도만 어떻게 국제기준으로 할 수 있느냐.”

그러면서 그는 집단적 관계에서 노조의 파워가 상당하다며 “로드맵 논의는 바로 균형점을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계에선 그를 ‘재계의 싸움닭’이라 부를 만큼 확실한 카운터파트너로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런 전문성에 비해 정치력이 미흡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다(전문성) 하더라도 ‘인간적 관계(정치력)’가 없이 일을 풀기 어려운데, 통합 조정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것이 오너 출신이 아닌 그의 한계일런지 모르겠지만, 주로 회장이 비상근인 경총의 특성을 감안할 때 노사관계에 관한 한 경영계의 핵심 전략전술은 그를 통해서 나올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가 경총에 몸담은 지 어언 20년. 사실상 87년 노동자대투쟁기 이후 노동운동의 성장과 궤를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손을 거쳐 갔던 법제도며 현안만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고생은 많았지만 가장 보람 있었던 때가 언제였냐”고 물었다. 그런데 순간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 적이 없다.”


뒤통수를 치듯 짧게 답을 한 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 준다. “고생은 했지만 보람은 있더라 하는 부분이 있으면 우리 노사관계가 엄청 안정됐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같이 고생하고서 내가 보람 있으면 상대방(노동계)은 보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그는 93년 노-경총 임금합의 때 얘기를 끄집어냈다. 임금과 고용(95년 고용보험 도입 합의)에 관한 중앙단위 협약 말이다. 노사간 힘의 균형이니 진보정당의 존재여부니 하는 것들을 다 배제하고서라도 어찌 보면 노동계가 임금을 양보하는 대신 정부와 사용자는 물가와 고용 안정을 약속하는 코포라티즘의 전형에 가장 가까웠던 합의 아니었던가.


“고생했지만 당시로선 보람도 컸다. 그런데 효과가 오래 못 갔다. 민주노총이 출범 전이긴 했지만 ‘어용’들 간의 협력이라는 포장이 씌워지면서 내용은 좋았음에도 선물 받는 사람이 아무도 좋은 걸로 생각하지 않는. 그래서 가장 보람 있었으면서도 가장 실망스러웠던 합의였다.”


어쨌거나 합의든 협의든, 노사관계에는 상대방이 있는 법. 노동계 사람 중에 “얘기가 된다”, “신뢰가 간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그러자 그는 민주노총 현 집행부 몇몇 간부들의 이름을 말하다가 도중 “내가 칭찬하면 그 사람들이 욕먹는 구조이니 말하기 참 난감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앞서 거론한 분들은) 협상을 잘 해서 노사관계를 잘 풀 수 있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현재 우리 조직 구도 상의 문제 때문에 어려운 거다.”


마지막으로 이걸 물었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1초도 안 돼 돌아온 답변은 “정리해고 당하지 않는 것, 당하더라도 명퇴금 좀 받아서… 어이쿠 이런 얘기 내가 하면 안 되지. 하하” 농반진반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발언(?)을 수습하던 그는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내용물과 라벨링의 일치’를 강조하면서 “심각한 노사갈등이 빚어진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서 노사 대표가 국민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악수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꿈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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