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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자본의 아킬레스건을 겨냥하자
노동운동이란 무엇인가? 보통 경제적 이익을 쟁취하는 운동이고, 좀더 나아가 노동계급 전체의 정치·사회적 권익을 향상시키는 운동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를 용인하고 자본의 조건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정의를 내릴 때 맞는 말이다. 노동운동은 본질적으로 자본으로부터 무엇을 쟁취하는 운동이 아니라 이미 빼앗긴, 혹은 빼앗기고 있는 권리를 가급적 줄여보자는 운동이고, 궁극적으로는 원래의 권리를 죄다 되찾자는 운동이다. 그게 바로 ‘노동해방’ 아니던가?

▲ 임성규 전진 의장.
· 56년 출생
· 94년 서울지하철노조 정책실장
· 96년 서울본부 사무처장
· 97년 민주노총 서울본부장/국민승리21
총무위원장
· 98년 서울지하철노조 사무국장
· 2003년 공공연맹 사무처장/민주노동당
회계감사
· 2004년 <전진> 의장

확신에 찬 목소리로 ‘노동해방!’을 외치던 시절, 급진적 혁명을 꿈꾸지 않은 자는 없다. 노동운동하는 사람들 중 아직도 상당수는 그 꿈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혁명이란 진행 속도보다 그 내용과 주체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해방세상, 과연 어떤 사회인가. 인류 사회에서 불평등을 몰아내고, 분쟁과 전쟁이 발붙일 수 없는 영구적 평화를 구축하며, 궁극적으로는 “노동과 분배”가 최대한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노동운동은 역사의 변화 발전을 믿을 때 성공 가능성이 열린다. 역사의 일시적 후퇴나 배반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그 신념을 간직할 때 희망의 빛을 볼 수 있다. 역사의 변화 발전이 자연의 일부 현상이라고 믿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역행하려는 힘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진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할 때 비로소 역사가 앞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올바른 노동운동, 변혁의 길은 결코 순탄한 길이 아니다. 또한 새로운 사회가 아무리 빨리 도래한다 해도 우리는 아마 그 사회의 수혜를 온당히 입어보지 못할 것이다. 아니 새로운 사회의 수혜를 입어보기는커녕 현재보다 더욱 야만적이고 열악한 상황을 목격한 채 변혁의 임무를 유산으로 남기고 떠나는데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역량이 흩어지고 부족한 탓도 있지만, 맹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위기를 돌파해나가는 자본주의의 전략과 비교할 때 전 세계 변혁운동은 단 두 개의 국가도 전략적으로 연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인구 대다수 존재의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으나, 세계 변혁운동은 반동의 신자유주의 흐름을 되돌려놓기는커녕 노동자·민중에게 사실상 전혀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한 때 국제사회에 주목받는 운동으로 자자하게 소문났던 한국의 변혁운동도 신자유주의 행진에는 거의 차질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 중 특히 노동운동의 무기력은 일시적인 우려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신자유주의 반동 정책에 자극받아 퇴색되었던 계급성이 복원되고 이완되었던 저항 전선이 강화되어 더욱 더 완강하게 투쟁해야 할 노동운동이 지리멸렬 퇴조하고 있는 것이다. 심하게는 신자유주의와의 타협과 거래도 서슴지 않는, 정도를 넘어선 몰계급적 행태까지 드물지 않게 목격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변혁운동이 그러한 몰계급적 행위에 대해 비판적 시각 이외에 아무런 처방도 대책도 갖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몰계급적 행위가 변혁운동 내 하나의 운동 조류로 당당히 자리 잡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대중을 광범위하게 포섭하면서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과연 역사가 진보했는가, 진보할 수 있는가, 의심까지 들게 한다. 노동운동의 심각성은 역사적 전진이자 한 가닥 희망인 민주노동당으로 고스란히 전이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의 존재 가치는 노동자·민중의 계급적 이해에 기초할 때 유의미하다. 민주노동당은 3.1운동에서 87년 노동자 대투쟁까지 도도히 이어져온 민중투쟁사의 계승자를 자임하고, “외세를 물리치고 반민중적인 정치권력을 몰아내어 민중이 주인 되는 진보정치를 실현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을 선언하며 출발했다. 그러나 당의 현재 모습은 과연 강령 정신에 입각한 실천에 매진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때때로 언제 노동자·민중의 이해를 저버릴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낳게 한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계급성이 현저히 흐트러진 노동운동의 책임이다. 그 중 특히 대의원대회 파행 한번이 당 지지율의 곤두박질로 직결될 만큼 민주노동당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민주노총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소속 조합원들만의 조직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대표이자 대변자의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력은 지난 시기에 비해 현격히 떨어져 있다. 민주노동당과의 관계에서도 민주노총의 지위는 처음과 같지 않다. 아직도 민주노동당의 색깔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는 있으나, 실제로는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당이 강령으로 정한 정체성과 지향을 강화·실천하는 주체로서, 당의 절대적 기반으로서, 당 운영의 주체로서 역할해야 할 민주노총은 제도적으로 할당받은 최소한의 역할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변혁운동 바깥에서는 민주노동당과 거의 한 몸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70만 조합원 중 당원은 5%에도 못 미친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그런 점들이다.

변혁운동에서 '민주노총 운동'의 정비와 강화는 그 어떤 것보다 우선에 두어야할 실천과제다.

한편, 노동운동이 제 몫을 못한다고 하여 민주노동당까지 강령 정신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노동자 중심성을 내팽개치고, 변혁운동의 역사적 책무를 소홀히 취급해도 되는 일인가? 그것은 계속되는 전쟁 중에 전투에 투입된 부대가 고전하고 있다고 하여 굴욕적으로 항복해버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노동당을 움직이는 전국의 당직자들 중 절대다수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 시기부터 최근까지 노동운동 발전에 적지 않게 기여했고, 현장 활동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쳐온 선진 변혁운동가들이다. 모두 당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의무와 책임의 절대량이 노동운동에게 있다면 질적인 면에서의 근본적인 책임은 당내 주요 역량들에게 있다.

민주노동당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보다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은 편이다. 아직도 주변부 정치세력이지만 현역의원을 10명씩이나 보유한 제3당으로서 당분간 외형의 성장은 이어질 것이다. 문제는 당 강령이 모든 사업과 실천에 스며들고 관철되는 이념정당·계급정당으로 발전할 것인가,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어두워진 부르주아 정당으로 점점 타락하면서 양적으로만 성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최소 3년 내지 10년의 시간은 바로 그 향배를 결정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노동운동은 당연히 전자의 달성을 위해 민주노동당에 개입하며 후자에 대해서는 조직의 사활을 걸고 배척·투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노동운동 자신의 체계정비 및 조직혁신, 민주노동당의 혁신, 사회공공성강화 투쟁전선 구축과 산별노조 건설, 변혁운동의 계급성 복원과 노동계급 당원 대폭확대, 남북평화통일체제 구축과 국제연대 강화, 자본주의 이후 대안사회 전망의 대중화 등을 각자 속해 있는 활동 공간에서 연구와 학습, 교육과 선전·선동, 대중사업으로의 관철과 실천, 투쟁조직 구축과 정치총파업 등 다양한 단위와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과 전술로 배치하고, 무엇보다 꾸준히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 중 특히 의료, 교육, 세금, 부동산, 사회복지, 공공서비스의 반사유화 등 사회공공성 강화투쟁은 대중적으로 가장 지지를 받을 수 있고, 사회적 명분까지 거머쥘 수 있으며, 비정규차별철폐와 고용확대로 연결될 수 있는 투쟁의제로서 무엇보다 시급하게 구체적 계획을 마련하여 실천해야 할 사안이다.

신자유주의의 기본방향은 무정부적 시장화와 맹렬한 세계화다. 모든 반자본주의 국가, 모든 국가의 공공서비스 등 비시장 영역, 국민국가의 보호를 받아온 자본, 심지어 국가자본에까지 공격을 퍼붓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제도든 법이든 가차 없이 바꾸거나 제거하고 있다. 무엇보다 핵심은 보다 자유롭고 손쉬운 착취를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민중의 강한 반발과 저항이 예견됨에도 자본이 신자유주의를 택한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그만큼 불황의 늪이 깊어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어쩌면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에게 마지막 남은 위기 탈출의 궁여지책일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자본은 위기로부터 탈출하고자 사력을 다해 저항세력을 억압할 것이다.

그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구조조정은 순전히 자본의 이윤창출과 축적을 보다 확고히 보장해주는 과정이었다. 자본은 과거보다 더 막강한 폭력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여유 있게 준비해둔 채, 훨씬 더 지능적이면서 악랄하게, 훨씬 더 교묘하면서 집요하게 저항을 억압하면서 벼랑으로 몰아붙여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값싼 비정규 노동력을 합법적으로 무한정 확대하려는 기도가 그렇고, 선진화라는 미명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등 노사관계의 후진 기도가 또 그렇다. 뿐만 아니라 변절한 사회운동가나 원로 등을 앞세워 진보운동진영의 분열을 야기·심화시키고,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회유하거나 도덕적 흠집을 캐내 협박과 협잡 수단으로 비열하게 악용하는 등 진보진영에 대한 재편과 분할관리, 지배 의도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럴 때 노동운동마저 평등사회, 해방세상의 이상과 원칙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와 타협을 통해 살아남기를 모색한다면 역사는 다시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극심한 사회양극화다. 1%의 인구가 51.5%, 5%의 인구가 82.7%의 땅을 점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팔면 캐나다를 여섯 번 프랑스를 일곱 번 살 수 있고, 미국도 절반을 살 수 있다. 땅부자 3.9%가 자본이득의 80%를 독식하고 있다. 양극화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소득계층 상위 10%가 하위 10%보다 10.26배,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5.87배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연간 1천만 원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야하는 가구가 300만 가구, 전체 가구의 20%를 상회한다. 법정 최저임금보다 소득이 적은 노동자가 무려 125만 명이나 된다. 비정규노동, 청년실업의 문제는 별다른 대안 없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사회공공성 강화투쟁은 개량주의적 요소가 다분한 투쟁의제이다. 그러나 자본이 이윤축적의 만성적·구조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 자체가 자본에게는 아킬레스건인 것이다.

임성규 전진 의장  sunglim@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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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차 2005-08-17

    [전진]에 기아차 입사비리 원흉 미래노 조직도 포함되었는지요? 논의시(금속연맹 선거시) 함께 했는데요? 지금 관계는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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