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주택공사가 시공한 임대아파트에서는 해마다 5%씩 오르는 임대료 인상과 함께 가압류라도 걸리면 재계약을 하지 않는 횡포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마저도 민간건설사에서 지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입주민들에 견주면 사정이 좀 낫다고 해야 하는 형편이다.

임대아파트 50만 세대 가운데 전국의 부도아파트는 40만 세대에 이른다. 3인 가족을 기준으로 무려 120만명이 사업자의 부도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날 처지이이다. 이미 양산 장백 등 전국 12만 가구가 사업자의 부도로 살던 집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렸다. 그런데 이 부도난 아파트는 43조원에 달하는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아 지어졌다.


민간건설사는 이 기금과 입주민의 보증금으로 아파트 건설과 운영자금을 충당하고도 만기후 돌려줘야 할 보증금은 주지도 않는다. 국민은행은 대출이자 연체를 아파트 가압류로 경매에 넘기니 서민들은 눈뜨고 당할 뿐이다. 정부의 정책실패로 주거안정은커녕 서민들은 졸지에 길거리로 나앉게 될 판이다. 정부는 6월7일 ‘부도임대아파트 조치방안’으로 막아보려 하지만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쫓겨난 서민들은 물론 부도가 나지 않은 채 경매중인 세입자들은 보호대상에서 제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4일 찾아 간 충남지역은 3만5천여 세대가 부도로 신음하고 있었다. 천안 병천, 아산, 당진 등 부도아파트 입주민들은 그들의 전 재산과 다름없는 ‘보증금 반환’과 ‘분양 전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곳곳에 물새고, 곰팡이… 부도 후 주민자치관리

충남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에 위치한 신한아파트. 외관은 최근에 페인트칠을 다시 한 흔적이 역력했다. 주민들은 분양가를 높게 받으려는 건설사인 신한의 꼼수라며 비난했다. “실 분양가가 평당 186만원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업주측은 평당 380만원을 얘기해요. 우리는 분양받을 여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분양받고 싶지도 않아요.” “평당 170만원이면 떡을 치고도 남아요.”

낮은 가격으로 분양받으면 좋으련만 주민들은 아파트 분양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옆집 휴대폰 소리와 코고는 소리,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인 이 아파트에 정나미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눅눅하고, 장맛비에 천정이 뚫려 자다가 물세례를 받아야 했던 주민들에게 이곳은 오래 살고 싶은 삶의 둥지가 아니었다. 도시가스는 들어오지도 않고, 지하실은 물이 가득 차 있고, 놀이터 아래 지하에 변전소가 설치된 아찔한 아파트.


그나마 주민들은 70~80만원 하는 베란다 섀시를 끼워 넣을 돈이 없어 비닐로 막아놓은 집들이 많았다. 주차장에 흉물스레 버려져 있는 차량들은 신용불량으로 채권추심을 피해 도망 다니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채권독촉, 주민등록 말소를 의뢰하기 위해 소재파악을 요청하는 경우가 한 달에도 여러 건이에요. 집에 들어오지 않는 가구가 100여 세대는 될 걸요.” 농사와 화물트럭 운전을 병행하고 있는 정화진(54) 이장은 “심각한 생존의 위기”라며 “자신도 보증금이 나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한 집 건너 한 대 꼴로 설치된 즐비한 위성안테나였다. 한달 수신료만 2만5천원, 주민들은 어떻게 감당을 할까? “이 지역이 난시청지역이래요. 케이블을 설치해도 지상파방송이 나오지 않으니까 아이들 있는 집들은 어쩔 수 없이 설치하는 거죠.”


임대보증금 묶여 신용불량, 자살 늪으로


신한아파트는 지난 97년 3월 입주가 시작돼 총 474세대가 15, 16, 19평에서 1,470만원에서 1,890만원의 임대보증금을 내고 살고 있다. 2002년 2월 5년간의 임대기간이 만료되었지만 임대사업자인 신한은 분양 또는 재임대계약을 하지 않았다. 신한은 아파트 건축 당시 대출한 국민주택기금 이자는 물론 원금 78억여원도 상환하지 못하며 자금악화에 빠졌고 사실상 부도 상태인 부실기업이었다.

채권자인 국민은행은 지난해 6월 경매를 통한 강제매각을 신청했고 올해 주민들은 배당 신청을 했으나 정부의 부도아파트 대책발표로 3개월간 경매가 중단된 상태. 그러나 ‘세입자 우선매수제’를 골자로 한 7월 임대주택법 개정안에는 우선매수제 대상으로 ‘민간임대사업자의 부도로 인해 경매중인 세입자’로 한정하고 있다. 부도가 나지 않은 채 경매가 진행중인 세입자들은 보호대상에서 제외되는 실정인 것.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가득 차 있었다. “임대사업자는 부실아파트를 지어 서민들을 골탕 먹이고, 임대보증금도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도 정부는 서민들 입막음 요량으로 정책을 만들고,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지자체는 나몰라 하니 이게 말이 됩니까.”

신한임대아파트의 이안나 입주민 대표는 분통을 터트렸다. “주민들의 전재산인 임대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국민은행 대출 빚은 고스란히 주민에게 떠넘기는 악덕사업자를 왜 가만두는 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임대보증금이 묶여 있다 보니 주민들은 나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살고 있었다.

보증금이 몇년째 묶여 있다 보니 최근 팔순의 노인이 신병을 비관해 자살하는 일도 벌어졌다. “부산으로 직장을 옮긴 아들에게 가려고 했죠. 그런데 보증금이 묶여 있으니 옴싹달싹 못하는 거예요. 생활보호대상도 안되고 세를 놓지도 못하죠. 돈은 없는데 몸은 아프고 병원신세를 진 며칠 뒤 6층에서 뛰어내렸어요.”

주민들의 이야기는 청년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IMF때 정리해고 당해서 내려왔는데 몇년간 서울과 병천을 출퇴근하면서 힘들어했죠. 보증금이 묶여 있다보니 서울로 올라갈 수도 없었어요. 올 2월경 음독을 한 것을 주민들이 발견해 겨우 목숨은 건졌는데 아직도 몸은 붓고 얼굴은 새까맣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죠.”
 

아산시 배방면의 또 다른 신한아파트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총 240여 세대 가운데 22세대는 분양을 받았으나 사업주는 분양과정에서 사실상 부도가 난 상태. 2003년 양도양수 과정에서 인수업체인 OO부동산쪽은 91세대에 대해 5~6백만원의 임대보증금을 올려 받았고, 월세를 놓는 등의 불법을 저질렀다. 9월부터 경매가 재개되면 낙찰되더라도 1200여만원 보증금 가운데 800여만원 정도다. 이 돈으로 시내에서 방 한 칸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최소 2천만원에 육박하는 시세 때문이다.

“부도임대아파트 경매중단! 보증금 보장!” 현수막이 놓인 아파트 입구를 산책중인 노부부. 교사, 공무원으로 평생을 번 돈은 퇴직금까지 모두 자식에게 쏟아 부었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 등 37만원으로 한달을 살아가지만 관리비, 세금, 식대, 약값 등 빠듯할 뿐이다. “분양받을 형편은 안되고, 생활터전이 없으니 어떻게든 살 수 있도록 해결이 되어야지….” 칠순의 부부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조용히 지내고 싶을 따름이다.

부실사업자들 ‘돈 없다’ 배째라식

아산시 건축과는 주민들의 민원과 관련 사업주에게 8월19일까지 인상보증금의 반환 시정지시를 내렸고, 분양전환과 경매시 세입자들의 우선매수권 부여 법령개정과 분양자금을 지원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당진군 당진읍 지석빌라트(96세대)의 경우처럼 계약기간이 만료된 세대의 임대보증금 반환청구에 대해 사업주들은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 또한 분양이라도 받으려고 하면 분양조건을 수시로 변경하는 등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회사측은 가압류를 풀 자금이 없으니 분양금을 선불로 납부해 가압류를 해지하고, 계약기간이 지났어도 임대료는 내야 하며, 하자보수도 밀린 임대료로 임차인이 해결하라는 것.

“회사가 부도나지 않았다고 우선매수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너무 억울하다.” “회사의 관리부실, 사업실패를 왜 서민의 보증금으로 책임을 져야 하나.” “회사가 자기들 채무를 우리들(세입자)에게 떠안으라고 하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군청에 분쟁조정위원회 설치를 요구합시다.” “IMF때 부실기업들 공적자금 쏟아 부었잖아요. 그런데 기업들은 해주면서 힘없는 서민들은 그냥 나가 죽으란 말입니까.” 대책회의를 진행하던 동 대표들이 너나없이 비판의 말들을 쏟아냈다. 


노인, 장애인, 비정규직 등 대부분 극빈층인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전 재산인 보증금 반환에 대해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해당 지자체들은 답을 내놓고 있지 못했다. “그러길래 누가 서민아파트에 살라고 했냐.” 대책을 요구하며 항의하는 천안지역 등 서민들에게 돌아오는 지자체의 답은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었다.

이민기 충남부도아파트공대위 간사(민주노동당 아산지역위 사무처장)는 “국민주택기금과 임대보증금 등으로 집을 지은 민간건설사의 부실과 이를 허가해준 정부 및 지자체 등 임대아파트 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며 “40만 세대에 이르는 부도아파트 문제를 ‘무늬만 세입자매수제’란 미봉책이 아닌 임차보증금 전액보장, 피해구제 등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부도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오는 22일 오후 열린우리당 중앙당사 앞에서 ‘서민주거안정과 40만 부도임대아파트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2차 집중집회’를 열 계획이다.

부도 피해 계속, 정부의 부실대책도 계속
임동현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국장


정부의 민간임대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의 정책이 부실해 세입자들의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먼저 민간임대주택에 대해 정부는 지난 6월 민간임대사업자의 부실화가 초래한 세입자 피해에 대해 △분양전환이 가능한 단지는 경매중단 및 분양지원 △임차인 여건에 따라 경매중단, 임차인 우선매수권제 부여 △주공이 부도임대주택 경락을 통해 퇴거자에게 임대주택 공급 △다가구 매입임대, 전세임대 등 주거안정 지원 △부도 예방을 위한 사업장별 독립법인화 및 임대보증금 보증제도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부도임대아파트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대책은 대부분 ‘부실’로 드러나고 있다. △우선매수제 적용 범위의 협소화 △부실한 현장 실태조사 △경매 위기에 놓인 세입자에 대한 비현실적 대책 △기존 임대아파트 입주자 보호대책 부재 △퇴거자의 재정상태를 고려한 사후 정책대안의 부재 등 현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매 위기에 놓인 세입자에 대해 정부가 제시한 대책은 분양전환·본인 경락 및 임차인 주거 보장과 보증금 보호제도였다. 그러나 이 대책들은 경매 위기에 놓인 세입자들에게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민간임대사업자의 채무지급 연체로 인해 경매위기에 놓인 세입자들에게 분양전환을 추진키로 했으나, 이를 민간임대사업자가 악용해 자신의 채무를 임차인에게 전가하기 위해 주변시세보다 높은 분양전환액을 제시하는 등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7월15일 국회는 민간 건설임대아파트의 경매로 인한 세입자 주거권 피해 보호를 위해 세입자 우선매수제 도입을 골자로 정부가 제출한 임대주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법 개정이 졸속으로 이뤄져 사실상 경매 중인 세입자에게 우선매수제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법은 우선매수제 적용 대상을 ‘민간 임대사업자의 부도로 인해 경매 중인 세입자’로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도가 나지 않은 채 건설업자의 단순한 채무상환 지연 등으로 경매가 진행 중인 주택 세입자들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결국 정부는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임대주택의 경매 조치에 대해 눈감고, 오로지 임대아파트 부도에 따른 경매 조치로 세입자가 피해를 볼 경우에만 세입자 우선매수제를 적용하려는 것이다. 임대주택법상의 세입자 우선매수 조항은 사전 예고된 졸속 대책이었다.


경매 중인 일반 임대주택의 세입자, 민간 건설임대주택의 세입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부 여당이 주도한 임대주택법 개정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우선매수제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임대주택법은 임대사업자로 등록된 일반임대주택, 민간건설임대주택의 세입자만을 보호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임대주택법상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되는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단독 주택 등을 임차한 무주택 서민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보증금을 빼앗겼음에도 마땅한 구제수단 없이 방치될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대한주택공사(주공)가 주공임대아파트 세입자들의 임대보증금에 대한 채권기관들의 채권 압류나 가압류 결정을 이유로 세입자들에게 임대차 계약 갱신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지난 7월11일 광주 광산구 신가주공아파트 세입자들이 주택공사를 상대로 낸 임차권 확인소송에서 광주지법의 재판 결과, 세입자 보증금에 대한 채권기관의 단순한 채권 (가)압류를 이유로 주공이 임대차 계약갱신을 거부할 수 없음이 확인되었다.


그간 주공은 이번 재판 결과와 달리 임대차 계약서 및 관련 법령에 그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입자 보증금에 대한 채권 가압류를 이유로 △해당 세입자에게 임대차 계약의 갱신을 거절하거나 △임대차 계약의 갱신 조건으로 채권 압류나 가압류를 해지하도록 하거나 △추가적인 임대보증금 납부할 것 등을 세입자에게 요구했다.


주공의 임대차 계약서에 따르면 △입주자의 요건이 유지되고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현행 임대주택법 제13조 규정을 위반하여 임대주택의 임차권을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임대주택을 전대한 경우 △임대차 기간 중 다른 주택을 소유하게 된 경우 등 임대차 계약 일반조건 제10조 각 호에 해당되면 계약을 해지하거나 계약의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채권 가압류 결정 등을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부하도록 명시되어 있지도 않다.


전국임대아파트입주자연합회(임대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계약갱신을 앞두고 있는 주공임대아파트 입주자 중 임대보증금에 대한 채권금융기관의 가압류 조치를 이유로 주공에게 재계약을 거부당한 세대가 조사대상 3,618세대 중 약 6.7%인 242세대에 이르고 있었다.


세부적으로는 경기 의정부 금오주공9단지 총 1,450세대 가운데 5.7%인 84세대, 대구 칠곡 주공5단지 총 714세대 가운데 9.8%인 70세대, 서울 신림주공2단지 총 818세대 가운데 6.2%인 51세대, 경기 부천 성동 하얀 마을이 총 636세대 가운데 5.8%인 37세대였다.


민간임대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부 여당은 민간 건설업자 ‘퍼주기’ 대책을 포기하고 임대아파트 세입자들의 재산권과 주거권을 보장할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부도임대아파트 문제와 관련해 △민간 건설 공공임대아파트 정책 폐기 △경매 중인 임대아파트 세입자의 보증금 보호 △실질적인 세입자 우선매수제 도입 △임차인 대표회의에 대한 법적 지위 인정 △피해 세입자에 대한 정부의 전액 보상이 필요하다.


아울러 민주노동당은 입주민 위주의 임대주택 정책으로 △완전 공영개발제 적용 △국민임대주택 정책 집중 추진 △공정임대차·공정임대료 제도 확립 △임대차분쟁조정위 설치 △민간건설임대아파트에 대한 직접적인 국민주택기금 대출지원 중단 및 민간업자 시공 후에도 이를 국민주택기금으로 매입해 국민임대주택으로 공급할 것 △임대료 보조제도 도입 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