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3년차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노정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부터 임단협 등 현안, 김대환 노동부 장관 퇴진 등 사람 문제까지 겹겹이 쌓여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특별한 해법 없이는 노정 사이의 ‘먹구름’이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사정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라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의 ‘대화와 타협’을 바탕에 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이미 실종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 노사정 최고지도자들이 지난해부터 야심차게 추진했던 사회적 대화를 통한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 구축도 사실상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산적한 현안, 노정관계 더욱 악화되나

경색된 노정관계가 당분간 지속되는 속에서 항공사, 병원, 금속, 완성차노조 임단협이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노정관계 숨통이 트일 것인지, 더욱 악화될 것인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현안 문제의 분수령은 병원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하는 오는 20일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파업의 첫 시동을 건 아시아나조종사노조는 18일 파업 이틀째를 맞고 있으며 19일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 경우 장기화가 우려된다는 것이 노동부의 판단이다. 아시아나 노사의 첨예한 쟁점인 △비행안전을 위한 조종사 휴식 보장 △정년 연장은 시간을 갖고 논의하기보다 어느 쪽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으로 일정 시점이 지나면 ‘기 싸움’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뒤이어 대한항공조종사노조도 18일부터 간부 파업에 들어가는 등 투쟁 수위를 높여갈 예정이며 아시아나항공이 어떻게 정리되는지가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합법파업을 하고 있는 항공사노조와 달리 ‘핵폭탄’은 병원노조다. 직권중재 등 노정관계와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는 만큼, 노조가 전면파업에 들어가는 20일 이전에 노사자율로 임단협이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병원 노사는 8일 직권중재 회부 이후 지난 12일부터 교섭을 재개했지만 사쪽이 타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노조는 임금 9.89% 인상, 온전한 주5일제 전면시행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사쪽은 임금 동결, 토요외래진료유지 등을 내세우고 있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중재안과 상관없이 20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어서 ‘불법파업’으로 인한 지도부 수배, 노사 자율교섭 불가, 장기파업, 공권력 투입 여부 등 병원 문제는 곧바로 노정 문제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핵심쟁점에 대해 의견접근이 어려울 것으로 보여 중노위 중재재정(22일까지) 전 자율타결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해 우려된다.

산별교섭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사는 조금씩 의견이 접근되고 있는 가운데 ‘해외부품 역수입’ 조항에 가로막혀 교섭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노조는 19일 교섭에서 합의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20일부터 4시간 부분파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완성차노조 임단협은 예년보다 시기가 늦어지고 있으며 정규직 현안뿐만 아니라 ‘불법파견’ 문제까지 겹쳐 교섭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노정경색 국면 20일 기점으로 상당기간 지속

임단협 등 현안 문제와 별개로 양대노총 등 총연맹을 중심으로 한 노정관계는 20일을 기점으로 7, 8월 등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대노총은 △김대환 노동부 장관 퇴진 △비정규직 문제 해결 △최저임금 현실화 등을 걸고 20일 공동 결의대회를 갖는데 이어 21일 노동위원회 노동자위원 전원 사퇴를 강행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노동계 ‘정치공세’에 좌지우지될 수 없다며 강경 입장을 밝히고 있어 당분간 노정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상태다.

한국노총 정길오 홍보선전본부장은 “경색돼 있는 노정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단초는 오로지 장관 퇴진 뿐이다”며 “그 전에는 장관이 면담을 요청해 온다 해도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이수봉 교선실장도 “최저임금, 중노위 직권중재 등을 볼 때 노사정 교섭은 정부가 폐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김대환 장관이 물러서지 않는 이상 대화는 힘들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양대노총은 노정 ‘냉각기’를 이어가는 속에서 7, 8월 내부 동력을 모아 하반기 비정규법안 투쟁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 이석행 사무총장은 “하반기 비정규 입법투쟁을 위해 휴가시기가 끝나는 대로 이수호 위원장이 직접 방송차를 타고 다니면서 현장 (파업)조직에 나설 것”이라며 “또 이번 주부터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관계자들도 적극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정관계 해법 없나

이처럼 점점 엉켜만 가고 있는 노정관계는 과연 누가 풀 것인가.

지금의 양상을 살펴보면 다소 ‘아이러니’라는 표현을 쓰는 전문가들이 많다. 예전에는 정부가 대립적인 노동계랑 대화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을 했으나 지금은 합리적 노동운동을 지향한 한국노총까지 포함해 노동계가 정부와 대화하기 정말 어렵다고 말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화를 강하게 원하는 노동계 집행부 등장 등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노사정 대화의 조건이 충족됐는데도 정부가 이를 끌고 가지 못한 만큼,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쓴 소리’가 나오고 있다. 열쇠도 정부에 있다는 의미다.

중앙대 이병훈 교수(사회학)는 “노사관계는 학술적으로 노동정치”라며 “현재는 정부가 노동정치를 포기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노동정치를 노동계에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굴복한다는 의미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이로 인해 정치는 사라지고 원칙만 남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조직노동자 배제 전략이 전환돼야 실타래가 풀릴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국노동교육원 박태주 교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는 국가 역할이 줄어드는 등 사회 문제를 정부 혼자 힘으로 풀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사회적 대화의 실종은 바로 노정갈등과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정규직노조를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전형적인 노조 배제적 표현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그동안 참여정부가 보여준 경제정책에 철저히 소외된 노동정책 기조 등도 불신의 큰 원인이라며 ‘방향 전환’을 주문하기도 했다.

어쨌든 노정관계의 긴장상태는 오는 9월 비정규법안을 놓고 다시 한번 중대한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노정관계의 ‘타협점’이 모색되거나 또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노동교육원 박태주 교수는 임단협 현안 문제가 ‘순항’한다는 것을 전제로 “비정규법안에 대한 합의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대화 원칙이 깨지지 않는 수준의 미합의, 즉 ‘양해’가 가능한 안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며 “첫 기대는 이목희 의원(열린우리당)에게 걸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박태주 교수는 “노사정위 개편방안, 로드맵 처리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해 구성된 노사정대표자회의도 부대표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 형식으로 가동시킬 수 있다고 본다”며 “복수노조, 노조전임자, 비정규법안 등 풀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문제를 기점으로 조심스럽게 노사정 대화 복원을 타진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보다 나쁠 수 없다’는 지금의 노정관계가 어느 시점에 조금이라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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