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9일 일본 삿뽀로에서는 일본의 전국신용카드사금융문제대책회의 전국집회가 개최된다. 십년이 넘게 개최되고 있는 이 대회는 그간 일본이 사금융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가를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일본변호사연합회 소속 변호사 1200명과 사법서사, 시민단체, 피해자모임이 사금융의 박멸과 채무자 구제를 위한 사회적 힘을 모으기 위해 마련하는 대규모 집회다.

세계 최초로 사금융을 합법화한 국가가 일본이고, 그 뒤를 이은 나라가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한국 사금융 잔혹사는 일본의 그것을 빼닮았다. 그러나 일본은 이 비극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사회가 전력을 다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이 비극이 얼마나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판단이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고 있다.

단속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등록제도가 마련됨으로써 판도라의 상자에서 빠져나온 사금융업자들이 일본사회를 자신의 이익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2차대전 후 고인플레와 서민금융제도의 부재를 틈타 자라나기 시작한 고리대는 공금융기관을 자금원으로 만들 정도로 엄청난 사회적 파워를 장악한다.

현재 일본의 중앙은행 재할인율이 연 0.1%, 은행의 보통예금 금리가 연 0.02%. 초저금리다. 그런데 사금융업체의 대출금리는 연 25~29.2%, 신판계와 유통계의 신용카드에 의한 현금서비스 금리도 거의 사금융업자와 같은 연 25~29.2%, 또한 은행계 카드에 의한 현금서비스의 금리도 다음달 결제의 경우는 연 27.8% 정도의 금리, 결국 현재의 신용카드·사금융업자의 대출금리는 은행의 보통예금금리에 비해 1,250~1,460배나 되는 초고금리이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이 신용카드, 사금융업자들의 금리는 일본의 이식제한법의 제한금리(연15~20%)를 위반한 위법금리이지만 이식제한법에는 벌칙조항이 없기 때문에 일부상장기업인 대형사금융업자들도 포함해 이 사업자들은 동법의 제한금리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

한편 ‘출자의 수입, 예금 및 금리 등의 취체에 관한 법률’(출자법)에 의한 금리규제로는 금융업자의 금리가 연 29.2%를 초과하면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0만엔 이하의 벌금, 또는 이를 병과당할 수 있기 때문에 신용카드사금융업자는 형사처벌이 따르는 출자법의 상한금리 이하로 영업하고 있다.

이렇듯 등록제도를 등에 업고 어엿한 비즈니스로 인정받게 되자마자 지하사금융업자들이 창궐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이자제한법이 폐지되고 대부업법이 제정된 이후와 거의 일치하는 현상이다. 

합법영업을 하든 지하영업을 하든 이들이 채무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상상을 초월하기는 양국이 똑같다. 줄을 잇는 자살, 일가족 집단자살, 급증하는 홈리스, 차중생활자, 범죄건수 등의 사회파괴현상이 사금융업자가 합법화된 공간에 펼쳐지는 것이다. 

다행히도 한국에서는 아직 일본처럼 사금융업자들이 단단히 뿌리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처럼 잘못 판단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주는 우를 범하였지만 아직 멀리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멸의 대상을 시장의 주체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보수정치의 대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역할은 막중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약간의 개선이라는 미끼에 혹해 그들을 육성하려는 자들에 이용 당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눈앞의 참혹함에 견디지 못해 대부업법의 이자율 제한을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사금융의 합법화에 찬성했다. 그러나 6월 임시국회는 8월에 재경부 실태조사를 보고받은 후 논의하겠다며 넘어갔다.

민주노동당은 소수정당이다. 보수정치의 농간에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전투에서 지더라도 신용카드·사금융의 피해자들로 하여금 민주노동당이 자신들을 위해 장렬히 전사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다른 정치개혁 과제들에 쏟는 관심과 역량 이상의 더 결사적인 투쟁을 보여야만 보수정당은 사금융업자와 ‘연대’를 포기할 것이다. 실패한다면 국민들은 민생정당의 간판을 끌어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수좌파정당'이라는 깃발만이 초라하게 펄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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