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역업무는 전체 국가산업의 동맥인 물류의 중심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것을 단순히 신자유주의적인 생산성, 시장성의 원리에 따라 구조조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국가나 공공부문이 하역시장의 보호자 혹은 보장자의 위치에 서서 하역시장의 안정성과 하역노동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안정적 운영을 도모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항만노무·인력체계의 특성

통상적으로 운송이나 항만 등에서 하역부문의 경우 그 작업량이 계절이나 경기 등의 요인에 의하여 변동이 심하며, 그에 필요한 노동력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하역업체의 경제적·경영적 능력이 열악한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 이러한 불안정성으로 인하여 노동력의 공급과잉 혹은 수요과잉의 시장적 불합리성이 발생하게 되면, 전체적인 산업의 효율성은 급격히 저하될 뿐 아니라 하역부분에서 구조적 실업의 상태가 발생하는 등 시장전체의 실패가 나타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항만, 도로, 철도 등은 지역사회의 공동부담(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에 의하여 운영된다는 점에서 지역성이 가장 강한 산업부문에 해당한다. 이에 하역노동 및 하역업무는 지역사회가 주도가 되어서 운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 그것이 비용부담자가 수익도 향유한다고 하는 정의의 차원에도 부합하게 된다.

이러한 필요에서 항운노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작업장을 단위로 일정한 조직을 갖추고 사업자들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하는 한편, 그 조직에 속한 노동자들만 배타적으로 작업의 기회를 가지게 하는 관행을 정착시켰다. 그리고 이 조직이 지금 현재 항운노동조합의 형태로 수렴되어 하역노동자의 공급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체제로 변환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항운노조에 대한 비리척결, 지배구조개선 등의 개혁논의와 더불어 ‘항만노무공급체제 개편을 위한 노·사·정 협약서’와 ‘항만하역근로자 고용안정화에 관한 노·사·정 합의서’가 체결되면서 항만하역체계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이를 기화로 국회에는 항만노무공급체제개편지원특별법(안)(이하 ‘법안’)이 제출돼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가가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시장경제에 개입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와 지원을 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이 법안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규명해 보기로 한다.

상용화법안 이래서 문제다

법안 제4조 제1항은 항만운송사업체 등이 항운노동조합의 근로자를 직접 상시 고용하는 상용화의 방식으로 전환함을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단순히 항만하역부분에서의 상용화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획일적으로 강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실제 항만하역은 상용화나 현재와 같은 항운노조의 노동자공급방법 외에도 용역이나 위탁 혹은 공동관리 등의 방식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 그럼에도 법안은 이러한 다양한 방식들 중에서 단지 하나의 방식(상용화)만으로 이전할 것을 강제함으로써 항만운송사업체 등이 자유롭게 하역노동방식을 결정할 권리 즉, 자유로운 계약체결권(이는 헌법상의 기본권이다)을 침해한다.

나아가 항만하역노동자의 권리 또한 제한한다. 그것은 기존의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 하역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권리, 즉 직업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지금 현재의 소속과 지위를 변경하여 항만운송사업체 등에 고용되거나 아니면 하역노동직의 포기가 강제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안은 어떠한 보상이나 보전의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법안은 지원금을 줄 수 있다고 하고 있으나 이 경우는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보상의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법안은 항운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던 노동자공급권을 정면으로 부인한다. 대체로 항운노조의 노동자공급권은 우리 항만의 역사와 같이 할 정도로 오랜 관행이자 동시에 직업안정법 제33조에 의하여 그 관행을 거듭하여 승인받음으로써 명실상부한 관습법상의 권리로 고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는 헌법상 재산권, 단결권, 직업선택의 자유 등에 의하여 보장되는 기본권적 권리라 할 것이다.

법안은 그러나 바로 이러한 기본권적 권리를 그 자체 부인하고 이를 별도의 제도-상용화-로 대체하면서도(이는 일종의 토지수용과 유사한 권리침해에 해당한다), 그에 대한 어떠한 보전의 장치도 구상하지 않고 있다.

상용화가 항만생산성 증가시키나?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마땅한 근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대체로 이 법안이 지향하는 목적은 ①항만근로자의 직업안정, ②항만생산성 향상, ③국가경쟁력 강화, ④항만근로자의 복리증진 등 다섯 가지로 나뉜다.

이 중에서 ①직업안정은 이 법안이 내세우는 제1의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보장방식은 가장 취약하다. 즉, 상용화과정에서 발생하는 현 노동자들의 지위변동은 차치하더라도, 항운노조의 경우 격심한 경쟁이 불가피한 항만운송사업체의 경우 도산이나 구조조정의 문제가 있을 때, 그에 고용된 노동자의 지위는 지금보다 더 열악해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점과 관련하여 ④항만근로자의 복지향상 역시 실제 이 법안에 가장 반대하는 집단이 항만근로자 자신이라는 점에서 그 허구성은 잘 드러난다.

②항만생산성의 향상 및 ③국가경쟁력 강화와 상용화의 관계는 이 법안의 핵심부분이다. 하지만, 법안이 추구하는 무조건적, 강제적 상용화라는 정책이 과연 최선의 대안인가에 대한 답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법안은 하역운송체계 전반에 대하여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고자 한다. 그것은 항만 및 항만관리주체, 항만운송사업자, 항운노조, 하역노동자 등 모든 구성원의 법적 지위를 근본에서부터 변혁시키는 효과를 야기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그 경제적 비용만 하더라도 2조 6,032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있을 정도로 상용화는 고비용의 정책일 뿐 아니라 그것이 지역사회에 미치게 되는 영향 - 특히 고용주체의 변화로 인한 노동자사회 및 그에 기반한 지역공동체의 변화 - 은 이루 측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상용화가 그러한 비용을 능가할 정도로 우리 항만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것인지, 또는 지역사회의 맥락에서 항만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던 지역공동체의 통합과 발전에 기여하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이 법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과거 이에 관한 여러 연구결과들이 있었고 그와 관련한 열띤 토론이 있었음을 부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논의들이 이 법안에 어떻게 반영되었으며, 그 결과 법적 수준에서 어떤 효과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것은 원래의 정책이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는지, 혹은 논의과정에서 지적되었던 문제점들을 제대로 치유하였는지 등을 검토하였다는 징표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효율성도, 적법성도 담보 못한 이상한 법안

그러다 보니 이 법안은 위의 합의서·협약서가 체결되자 그를 빌미로 서둘러 ‘숙원사업’이었던 상용화의 정책을 그대로 법제화하여 제출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그것은 효율성도, 적법성도 담보하지 못하는 이상한 법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실제 이상에서 지적한 입법상의 오류는 그 자체만 가지고 본다면 사소하거나 하찮은 것 혹은 '지우개질' 몇번으로 고쳐질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하나하나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항만운송체계의 전반에 대하여 거의 변혁적인 변화를 야기하게 될 이 중차대한 입법안이 이렇듯 날림으로, 경솔하게 제정되어 국회의 입법절차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조차도 법제처나 노동환경부 등 유관기관의 협의를 거칠 기회조차 마련하지 않고 의원입법의 형식을 빌어 진행된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인 것이다.

현재와 같은 항만하역체계의 문제점은 누차 지적되어 왔고, 그것이 항만운송사업자의 입장에서건 아니면 항만운송노동조합의 입장에서건 혹은 하역노동자의 입장에서건 나름의 틀과 근거를 가지고 처방이 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러한 대안들보다 더 급한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다. 이 법안처럼 항운노조의 위기를 빌미로 '떡 본 김에 제사지내듯' 해치우는 '히트앤드런'의 방식이 아니라, 항운노조와 하역업체 그리고 항만이 스스로를 추스르며 자율적으로 합리적 대안을 모색해나갈 수 있도록 여유와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최선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부의 조급증 혹은 개혁강박증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철저한 자기반성을 도출해내는 환경조성책이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의 입장에서는 무조건적 상용화정책보다는 하역노동자들에 대한 등급제를 실시하면서 그것의 관리와 운용을 항만하역주체들이 공동으로 이끌어나가는 시스템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를 진행하기에는 현재의 상황은 너무도 열악한 상태에 있다. 사법처리의 와중에서 아직 제대로 정비조차 되지 못한 항운노조와 이를 빌미로 ‘숙원사업’ 하나를 처리하고자 조급해 하는 정부와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영세하역업체 등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와중에 필요한 것은 그들간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보해야 하는 게 정부의 헌법상의 의무이기도 하다.

위기는 지혜가 동반될 때 기회로 전환된다. 항운노조의 비리사태로 비롯된 항만하역체계의 조정논의들이 나름의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혜는 어느 누구의 반짝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여러 가지 대안들을 열어 놓고 그의 효율성·생산성·경제성의 논의와 더불어 헌법적, 법제적 타당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심도 깊게 고민하는 작업에 의해서만 창조된다.

그리고 바로 그 때에만,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과 노동복지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는, 더 건설적인 항만운송노무공급체제의 구축이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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