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산수도 삼성만 관련되면 고등수학으로 바뀐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국회 한 토론회에서 꺼낸 말이다. 국회에서 법안이 처리될 때 삼성의 로비로 정책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빗댄 말.

국회의원들의 금융문제 연구모임인 '금융세계화와 한국경제'는 28일 국회 본관에서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 개정과 관련한 정책워크숍을 열었다. 정부, 법조계, 학계 등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한 이 토론회에서 비판의 화살은 단연 한국사회 '절대권력'으로 자리잡은 '삼성'에 모아졌다.

박영선 의원 "금산법, 삼성만 치외법권"

발제자로 나선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금산법 개정안 적용에 있어 삼성그룹만이 편법을 일삼으며 법 제정의 취지를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산법의 제정 취지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시켜 금융산업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보하는 것. 금융기관이 다른 회사의 지분 20%(동일계열회사의 경우 5%) 이상을 소유할 경우 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외환위기 전까지 국내에서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에 따라 편법적인 기업확장이 만연했고, 그 결과 대우그룹 하나를 처리하는 데에만 29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금산법 24조는 이러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핵심 법안.

금산법은 외환위기 전인 96년 10월 입법예고 됐지만 재벌 등 이해당사자들의 각종 로비를 거치며 막상 법 위반자에 대한 벌칙과 시정 조치 내용은 빠졌고, 이후 2000년 법률 개정 때도 법인의 법 위반에 대해서는 시정을 강제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지난해 4월 금융감독원은 일제조사를 실시, 10개 금융기관의 13개 위반 사례를 적발했다. 이에 기아차 지분 6.82%를 보유했던 현대그룹(현대캐피탈)은 지분을 매각해 5% 이하로 낮췄고, 동부화재와 그린화재, 대우증권 등도 극동유화, 아남반도체, 델타정보통신 등 산업계열사 지분을 매각했다. 동부생명과 흥국생명 등은 앞으로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유독 삼성그룹만은 지분을 매각할 수 없다고 버텼다. 에버랜드 지분 25.64%를 보유한 삼성카드는 지분을 매각하지 않는 대신 보유한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안을 제시했고, 삼성전자 지분 7.25%를 보유한 삼성생명은 신탁의 특별계정(변액보험특별계정)에서 매입된 것이므로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재 재경부는 "금융상품의 편입 종목이라 할지라도 금산법 적용대상"이라고 밝힌 반면, 금감위는 이렇다 할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와 관련, 재경부는 지난해 11월 매각명령권과 이행강제금 신설을 주요 뼈대로 하는 금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개정안 시행 전까지 법을 위반한 사례에 대해서는 '의결권 제한' 제재를, 향후 적발되는 위반 기관에 대해서는 '주식매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삼성이 흔들리면 나라도 흔들린다'는 세간의 국민감정을 등에 업고 사실상 법안의 무력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의 사례는 위법성이 없다는 것.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계열사 지분을 매각한 현대캐피탈, 동부화재 등의 사례에 비춰 삼성의 주장은 법치주의의 기본인 형평성의 원칙에서 어긋난다"며 "의결권 제한이 아닌 주식매각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삼성그룹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점을 감안해 금산법 개정안으로 삼성그룹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된 법 적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이 '제대로' 잘 나가야 한국경제도 제대로 굴러간다는 것.

박 의원은 "국민들에게 헌신하는 기업의 이미지는 없고 특정기업이 법망을 피해나간다는 이미지만 있다"며 "원칙을 지켜 기업투명성을 높이고 이로 인해 브랜드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진정 삼성이 가야 할 길"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조 교수 "금감위가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인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금산법 적용에 있어 정부와 감독당국의 미온적인 대처를 문제삼았다. 13건의 법 위반 사례를 적발하고도 유독 삼성그룹에는 법에서 규정한 제재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

지난해 금감위는 보험업법 및 금감위 내부규정에 의거, 동부그룹에게 아남반도체 지분을 매각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금감위는 '삼성카드-에버랜드'의 경우에는 해당 금융기관이 카드사이므로 보험업법이 아닌 여신전문업법(여전법)을 적용해야 하는데 여전법에는 보험업법과 비슷한 규정이 없어 매각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금감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과 같은 사례에 대해 여전법 52조에는 금산법 24조를 적용한다고 명시돼 있고 처벌조치 역시 금산법을 따른다고 53조에 규정하고 있어 감독당국이 법 적용 의지만 있다면 매각명령을 충분히 내릴 수 있다는 것. 금감위가 삼성 눈치를 보며 봐줬다는 의혹이다.

삼성뿐 아니라 금산법 24조를 위반한 나머지 기관들에 대해서도 "매각명령은 아니어도 당연히 과태료 부과는 했었어야 하는데 금감위는 이 또한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금산법 27조에는 24조의 위반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가 아닌 '처한다'로 강제 규정해 놓았다. 금감위가 직무를 유기했다는 것.

그는 또 "주식은 소유 자체로도 지배권이 생기기 때문에 의결권을 제한한다고 해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며 개정안 시행 전의 위반사례에 대해서도 의결권 제한이 아닌 매각명령을 내릴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동부그룹 김중기 회장이 아남반도체 매각 명령을 받고 계열사로부터 자금을 확보해 계열사로 되파는 편법을 저지른 사례를 들어 '매각은 반드시 제3자에게 할 것'이란 규정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홍종학 교수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재벌개혁은 허구"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경원대 홍종학 교수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는 관습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

1920년대 재벌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미국 정부는 재벌해체에 관한 명확한 목적을 갖고 강력한 입법안을 통해 이를 실현해 나갔다. 그 결과 현재의 투명하고 존경받는 기업문화가 정착됐다는 것.

그는 "재벌개혁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게 아니라 강력한 규제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규제의 공백이 너무 심하다"며 "미국에서 삼성과 같은 사례가 발생했다면 이미 여러번 소송이 진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주회사 설립이 재벌개혁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정부가 명확한 규제로 지주회사를 유도하지 않고 혜택 부여로 이를 유도할 경우 한국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방화벽이 충분하지 않아 삼성의 경우 부실화된 뒤 지주회사로 이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홍 교수는 또한 개정안이 소급입법이라는 삼성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현재의 독과점, 부당지원 등의 문제가 모두 재벌구조 때문에 생기는만큼 소급입법 여부에 연연하지 말고 계열분리 명령제를 도입하는 것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인 의원 "정부, 법 적용 의지 자체가 없다"

대표적인 경제개혁가로 통하는 민주당 김종인 의원은 "금산법 적용 문제는 복잡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의지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정전 금산법에 처벌규정이 미비하다고 하는데 과거 입법과정에서 (재벌의) 엄청난 로비가 있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다 해결됐어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다. 법이 있으면 당연히 적용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정부의 의지부족이라는 것.

그는 "미국에서도 1920년대 테오도르 루즈벨트부터 프랭클린 루즈벨트 때까지 록펠러, 카네기 등 법정에서 제재를 받지 않은 재벌이 없었다"며 "그 이후 (재벌의) 행태가 변했다"고 재벌 제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삼성이 흔들리면 한국경제가 흔들린다는 식으로 정부가 지레 겁을 먹으면 아무 것도 고칠 수 없다"며 "지금 금융에 있어 완벽한 장치를 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헤지펀드들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또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오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고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며 "법이란 완결해야 좋은데 입안과정에서 적당히 흐물흐물해져 버리고 한 기업에 좌지우지되면 정부가 경제 전반을 어떻게 운용할 수 있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열린우리당 이종구 의원 역시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상장 문제,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 에버랜드 문제 등 관련법 거의 모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정부는 이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올바른 안을 제시한 뒤 위헌, 과잉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전경련 등 재계 관계자는 불참했으며, 이에 따라 김상조 교수, 심상정 의원 등 참석자들은 재계가 참여하는 토론회를 다시 한 번 열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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