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건설 퇴출은 예고편에 불과할 수 있다. ”

이틀 후 부실기업 퇴출 발표를 앞두고 정부와 채권단이 ‘한계기업은 예외없이 정리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퇴출기업수도 당초 예상했던 20여개사보다 크게 늘어난 50∼60개에 이를것이란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동아건설의 퇴출결정에 이어 현대건설이 지난달 30일 1차 부도를 내자 정부 고위 관계자는 31일 “(현대그룹 처리는)전적으로 채권단이 알아서 할일”이라며 “자구노력을 못하면 시장원리에 따라 법정관리로 갈 수도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금까지 현대위기설이 돌 때마다 장관이 직접 나서서 “현대건설의 유동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두둔하던 것과는 사뭇 양상이 달라진 것이다.

정부·채권단은 이번에는 시장원리에 따라 부실기업을 정리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현 정부가 출범이후줄곧 강조해 온 ‘고용과 구조조정’의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던 정책기조를 포기하고, ‘선(先)구조조정 후(後)고용안정’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어쨌거나 이제부터 각 경제주체들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부실기업을 원칙대로 퇴출시킬 경우 자금시장이 동요하고 실업자가 늘어날 것인데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얘기다.

퇴출기업의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경우 기업·금융기관은 물론 투자자나 고객도 1997년 외환위기 때 못지않은 시련을 겪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당시보다 상황은 크게 나아졌지만 당시에 비해‘경제살리기’의 절박감이 떨어진 만큼 체감고통은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양대 김대식 교수는 “대우사태때 치뤄야 할 대가를 지금 치르는 것”이라며 “당장은 고통스럽겠지만 장기적으론 죽을 기업이 죽어야나라경제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부실기업 원칙대로 처리한다=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부실기업 판정이결고 엄포가 아니라고 말한다. 원칙을 바꾼 게 아니라 당초부터 이번 2차기업퇴출은 ‘시장원리’를 씨줄에 ‘채권단의 자율결정’을 날줄로 짜여지는 기업·금융개혁의 완결판으로 준비됐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난달 21일 부실기업 판정을 다시 하라고 주채권은행들에게 공문을 보낸 점을 상기시켰다. 지난달 23일 ‘정현준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보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정부내에 있었다는 것이다.

되레 채권단이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면서 이번 부실기업 퇴출도 구두선으로 끝날 것이란 ‘헛소문’이 돌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강력하게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나온 데는 우선 이번에 대거 기업퇴출이 이뤄지더라도 시장붕괴 같은 극단적인 충격은 없을 것이란판단이 깔려 있다.

정부는 지난 2년간 1백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쏟아부으면서 부실을 대거털어냈고, 추가로 50조원의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다.

우량은행은 부실대출이 별로 없어 감당할만 하고, 부실은행은 지원할 실탄(공적자금)이 충분한 만큼 기업퇴출이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지지는 않을것이란 계산이다.

◇고통 이겨내야=무더기 기업퇴출은 당장 해당기업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휴지조각으로 만든다. 따라서 이를 보유한 투자자나 이런 채권이 편입된 금융상품은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하다. 이들 기업에 대한 은행이나 종합금융사·보험사의 대출도 떼여 해당 금융기관은 상당한 손실을 입게 된다.

이럴 경우 회사채·CP 시장이 일시적으로 얼아붙고 퇴출기업 채권을 많이보유하거나 대출을 많이 해준 금융기관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자금난을 겪는 금융기관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동아건설처럼 덩치가 큰 기업이 아예청산될 경우 피해는 더 커진다.

한화증권 채권팀 신민식 대리는 “부실기업이라도 많은 기업이 한번에 퇴출될 경우 채권시장이 일시 마비되는 등 충격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길게 보면 한계기업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금융시장을 정상화하는 지름길이란 지적이 우세하다. 부실기업과 회생가능 기업이 섞여 있어 살아날 수 있는 기업까지 자금지원을 못받고 이 때문에 금융시장 불안이 가시지 않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경제연구소 권혁부 선임연구원은 “부실기업 정리로 은행은 추가로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어 공적자금을 더 넣어야할지 모르지만 이를 통해금융시장을 정상화하면 주가가 올라 은행이 입은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을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건설 퇴출과 현대건설 1차 부도 소식이 전해진 31일 증시에서 주가가오름세로 돌아선 것도 이같은 투자자들의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이진용 크레디리요네 증권 서울지점장은 “외국인투자자들은 정부의 이번조치를 기업과 금융권 동반부실의 악순환을 끊는 신호탄으로 인식해 매우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외국인들은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성이 확실해졌다고 판단하면 저가매수에 나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기반이 무너지는 건 막는다=정부는 이미 기업퇴출에 따른 모든 상황분석과 대책점검을 마친 상태다. 대대적인 퇴출이 이뤄지더라도 산업기반이 무너지는 일은 없도록 한다는데 대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건설업체의 경우, 아파트 등 국내 공사는 계속 되도록 채권단이 지원협약을 마친 상태다.

당장 퇴출기업에 만기가 안된 어음을 돌리는 일도 막기로 했다. 이런 조치들은 이미 채권단간 협약에 반영돼 있다.

또 물품을 건네주고 받은 진성어음은 전액 결제가 이뤄지도록 해 하청업체나 자재공급업체 등 협력업체의 줄도산은 철저히 막아줄 방침이다.

단기적으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 한국은행이 통화공급을 늘려서라도 돈을풀기로 돼있다. 건설업체의 해외 수주분은 채권단이 이행보증을 한 만큼, 정부가 해당 정부에 사절단을 보내 상황을 설명하는 한편 현지에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등을 통해 계속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실업자 증가도 당장은 불거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이 법정관리로 들어가면 대거 인력조정이 불가피하기는 하지만 일시에 퇴출기업이 청산되지는 않는 만큼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게 정부측 설명이다.

다만 생계형 실업자가 생길 경우 취업대책을 세워주고 필요하면 별도의자금지원 방안을 강구한다는 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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