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22일. 회사가 한달 후인 7월31일 호텔리베라를 폐업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170여명의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터에서 쫓겨 길거리로 내몰렸다. 2003년 4개월의 파업투쟁을 끝난 지 7개월만에 일어난 일이다.

‘폐업’, 날벼락을 맞다

오후 1시, 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종순(47·여)씨가 호텔리베라 농성장을 찾았다. 매일 같은 시각 이곳에서 ‘위장폐업 철회’를 촉구하는 노조 조합원들의 결의대회가 열리기 때문. 조합원들과 담소를 나눈 뒤 오후 5시 식당 주방일을 나서는 박씨는 오후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이어진 대리운전을 마치고 나서야 하루일과가 끝난다.

“2003년 4개월간 파업을 벌일 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낮에는 파업현장을, 밤에는 대리운전을 했어요. 아이들이 대학에 다니고 저 혼자 벌어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었어요”라며 쓴웃음을 짓는 박씨는 동료들에게 ‘억척이’로 불린다. 폐업이 단행되기 전 평상시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룸메이드 일을 마치고 야간엔 대리운전을 했다는 그.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박씨는 1년여 장기간 투쟁 속에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호텔리베라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다.

"89년 호텔리베라에 입사해 16년을 일했어요. 단 한번도 이곳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일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어느날 갑자기 경영이 어렵다며 회사를 폐업하고 직원들을 거리로 내 몬 거죠"

6월22일 ‘폐업’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지자 노조는 곧바로 농성에 돌입해 ‘위장폐업 철회, 원직복직’을 촉구했다. 그러나 호텔리베라를 운영하는 신안레저(주) 경영진은 같은달 27일부터 일식당과 대중목욕탕을 폐쇄했다. 이어 31일자로 비정규직 35명과 정규직 137명에게 해고를 통보한 것.


그리고 1년이 지난 22일 일터에서 쫓겨난 호텔리베라노조 조합원들이 호텔리베라 주차장 앞에서 ‘위장폐업분쇄투쟁 1주년 투쟁문화제’를 진행했다. 장기간의 농성에 연대해 주었던 지역의 조합원 및 학생 400여명이 이날 문화제에 참석, 박순석 신안그룹 회장의 부도덕성을 폭로하고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88년 오픈 멤버예요. 지금 남편도 이곳에서 만났어요. 서비스업인 호텔리베라는 근무시간이 일반 사업장과 달라서 사내커플이 많은 편이에요. 노조에만 8쌍 이상이 있는 걸요”라고 자기소개를 하는 이영순(41·여)씨는 남편 최길수(41·남)씨와 동갑내기다.

호텔리베라 커피숍에서 일했던 이씨는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늘씬하고 젊은 언니들만이 다닐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그는 호텔에 노조가 생긴 뒤 나이 들어서도 다닐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회사 눈치보고 손님들에게 굽신거리며 그렇게 살았는데 노조에 가입하고, 서비스노동자로서 당당하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었고, 자신감이 붙었어요. 우리 때는 호텔 들어가면 왠지 접대부라는 인식이 많았는데 노조 조합원이 되면서 생각이 바뀐거죠.”

호텔리베라 ‘위장폐업 철회 촉구’ 농성 365일의 기록
2003년
회사의 단체협약 해지, 직장폐쇄로 127일간의 파업이 진행됐으며 대전지방노동청 중재로 노사합의
2004년
6월22일
6월27일
7월12일
8월17일
8월18일
9월15일
10월7일
11월18일

11월19일
11월22일
12월1일
12월7일
전 조합원 및 직원에 대해 해고 및 7월31일 폐업 통보
일식당, 중식당 폐업 및 대중목욕탕 폐쇄
전면휴업조치
노동청 중재로 노사간 실무적 대화 진행해 실무의견 구두합의
박순석 회장 추가로 조건 제시해 실무의견 구두파기
호텔 홈페이지에 매각공고
박순석 회장 국회 환노위 국정감사 증인출석 해 국회가 ‘깡패집단’이냐 발언해 물의
국회 환노위 간담회에서 정용하 대표이사 12월9일까지 정상화 약속, 환노위 12월9일까지 정상화하지 않을 시 국회모독죄로 박순석 회장 고발
충남지노위 호텔리베라 위장폐업으로 인한 부당해고 판결
호텔리베라 정상화 약속이행 촉구 기자회견
유성구의회 호텔리베라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
국회 환노위 박순석 회장 ‘국회모독’ 고발 부결
2005년
3월4일
3월25일
4월11일
4월12일
4월26일
6월21일
6월22일
6월23일
신안레져(주) 호텔리베라 청산공고
신안그룹 본사 앞 호텔리베라 위장폐업 중단 및 정상화 촉구 결의대회
호텔리베라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대책위 기자회견
대전시 실무대책반 구성
중노위 추가자료 제출 내용으로 심판일 연기
위장폐업분쇄 투쟁 1주년
1주년 문화제 개최
국회, 중노위, 신안본사 앞 1인 시위 돌입
오는 7월께 열릴 예정인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중노위 판결을 기다리고 있으나 회사쪽은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

“나는 1급 호텔리어”

중부권 최대 호텔로 호평을 받았던 호텔리베라. 그곳에서 일했던 조합원들은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로서 긍지를 자랑했다.

25살, 군대제대하자마자 사회생활 시작을 이곳에서 했다는 정두언(41·남)씨는 “전두환· 김영삼 전 대통령과 역대 장관들을 직접 대접했습니다. 국빈들도 많았고, 지리적 위치도 좋고 최대시설을 갖춘 호텔리베라에서 국제세미나를 비롯해 많은 회의가 개최되었고, 우리 조합원들의 서비스는 최고였습니다”라며 자부심을 표하는 그.

“IMF 이후 경기가 악화되면서 회사쪽이 호텔 경영이 어렵다고 해 임금도 삭감하고 보너스도 반납하면서 일터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우리 의견은 들어보지도 않고 하루 아침에 폐업조치”를 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조합원들 대부분이 10년차, 1급 호텔리어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이들의 노동력을 높게 산 곳곳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기도 부지기수였다.

이날 문화제에서 포장마차 총지배인을 맡았던 고명훈(42·남) 양식주방장은 양식요리만 20년째, 호텔리베라에 입사한 지는 13년이 됐다고 했다.

“좋은 고기를 선별해서 최고의 요리를 만들었을 때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근데 지금은 이곳에서 부침개 부치고 있으니…”라며 말끝을 흐리는 고씨.

수차례 유명 호텔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지만 1년째 이곳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그가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중부권 최고의 호텔이라 불리는 호텔리베라의 명성은 회사가 돈을 많이 투자해서, 지리적 위치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최고의 호텔리어가 되겠다는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일터에서 일하고 싶다는 요구는 당연한,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정투쟁, 단호히 맞서겠다

1996년 (주) 우성건설의 부도로 지급보증을 섰던 (주)우성관광(리베라호텔 서울·유성)이 연쇄부도를 맞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신안그룹이 서울·유성리베라 호텔을 인수했다. 노조는 그때부터 호텔리베라노조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박홍규 호텔리베라노조 위원장은 “박순석 회장이 리베라를 인수하자마자 호텔에 와서 한 첫마디가 그랬습니다. ‘뚱뚱하고 안경 끼고 나이 많고 못생긴 애들은 잘라야 한다’ 그리고 나서 2003년 단협을 해지하고 1차 직장폐쇄를 단행했습니다.”

박 위원장은 당시 4개월간 조합원들이 흐트러짐 없이 대응하고 대전지방노동청 중재로 노사가 합의해 일단락됐다고 했다. 그러나 합의 이후 회사는 ‘전임자는 안 된다’, ‘폐업하겠다’며 노조를 협박, 계속해서 노조와해를 획책했다는 것. 이후 회사는 ‘경영상의 위기’를 운운했고 결국 호텔리베라는 폐업했다.

그러나 회사쪽의 폐업에 대해 지난해 11월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위장폐업으로 인한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로 박홍규 위원장 등 174명에 대해 원직복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노동계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등이 잇달아 성명을 내고 지노위의 결정을 존중, 경영을 정상화하라고 촉구했지만 회사쪽은 곧바로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해 “중노위의 판결이 지노위와 동일할 경우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입장으로 현재까지 맞서고 있다.

결국 호텔리베라에 대한 중노위의 결정이 난다 하더라도 조합원들은 지리한 법정공방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

박홍규 위원장은 “1년간 회사를 설득·양보하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호텔리베라 정상화를 위해 전 조합원이 흔들리지 않고 기다렸다”며 “노조는 중노위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고 이후 회사쪽이 법정싸움으로 가더라도 끝까지 싸워 반드시 일터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장기간의 투쟁에 대비해 노조는 현재 남아 있는 129명 조합원들 중 60여명을 생계투쟁으로 전환시켰다. 단, 이들은 매달 7만~15만원 상당의 투쟁기금을 노조에 납부해야 하며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시 바로 투쟁에 복귀하겠다는 조건을 전제했다. 나머지 조합원들은 투쟁기금 마련 및 생계비 지원을 위해서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10여명의 문예패 조합원들과 함께 이후 수위를 높인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민주노총 대전본부도 투쟁기금 모금을 결의했다. 대전본부 소속 1만8천여명의 조합원들은 매달 1천원을 호텔리베라노조 투쟁기금으로 납부하고 확대간부들도 매달 1만원을 지원한다.

기나긴 싸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 호텔리베라노조의 투쟁이 1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이날 ‘위장폐업분쇄 1주년 투쟁문화제’에서 조합원들 모두는 반드시 일터로 돌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시 모았다.

인근상가 셔터 굳게 닫고 가게도 내놔

실제로 지난 22일 찾아간 호텔리베라가 위치한 유성 봉명동 일대는 유성관광특위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유성온천, 계룡산 등 주변 관광지로 인해 성수기, 비수기 없이 항시 호황을 이뤘던 상가들이 셔터를 굳게 닫은 채 한산한 모습을 띄었다.


“작년보다 2/3 이상 매출이 줄었어. 호텔리베라 문 닫자 여기저기서 가게 내놓고. 앞 건물도 새로 건물 지으려고 세 다 내보냈는데 1년째 저리 흉가로 있잖아. 힘든 거 애써 이야기 해 뭐해. 빠른 시일 내 문제 해결되기만 바랄 뿐이지.”


호텔리베라 맞은 편에서 편의점과 분식점을 겸업하고 있는 김은회(가명)씨는 그나마 주인이 집세를 미뤄줘서 견딜 만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근처 건물들은 호텔리베라 폐업하고 나서 헐값에 경매로 거의 다 넘어갔어. 오래 싸우고 있는 저 사람들 생계도 걱정이긴 한데, 우리야 모 도와줄게 있나, 빨리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지…”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의 얼굴에 시름이 가득하다.


바로 이웃하고 있는 최숙영(가명)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호텔리베라 폐업 이후 가게를 내놨지만 누구 하나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토로한다.


“종업원을 4명이나 뒀는데 하도 장사가 안 되니까 다들 미안하다며 그만두더라고. 결국 나랑 사촌이랑 둘이서 운영은 하는데 답이 없지, 답이 없어…”라는 최씨는 “호텔사장이라는 놈두 그렇고 저기서 천막치고 농성하는 놈들도 모두 보기가 싫다”는 목소리에 원망이 섞여 있다.


폐업 1년째, 호텔리베라노조 조합원들의 생계뿐 아니라 지역 상인들의 생존권조차 위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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