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1년 대안연대회의 결성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당시 그 결성의 당위성이, 미국-IMF-DJ정부의 합작품으로 새롭게 등장한 한국경제체제의 기형적 현실에 있음을 강조했다.

즉, 한국자본주의는 구체제(개발독제체제)와 신체제(신자유주의-주주자본주의체제)의 부정적인 면이 결합한 시스템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시민사회의 개입이 없다면 이 경향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대안연대회의의 주요 참여자들도 유사한 견해를 피력한 바가 있다.

그런데 2002년 완전 민영화 이후 거대기업 KT가 현 한국경제체제의 축소판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KT, 한국경제 신체제의 축소판

첫째, 신체제의 부정적인 측면인데 정부의 “비대칭적 규제를 통한 유효경쟁정책”이 통신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통신산업은 대규모 장치산업으로서 규모의 경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이다. KT가 기존 유선전화 사업에서 80~90%의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 대규모 자금력을 이용한 초고속인터넷사업에서 시장선점으로 갖게 되는 경쟁 우위상황 등은 이런 특성과 관련이 있다. 산업 내 기업 분포가 적절하게 이루어져 유효경쟁이 유도될 수 있는 상황이 오기도 전에 서둘러 매각을 한 정부의 정책실패를 말해준다.

일단 민영화부터 해 놓고 뒤늦게 가격정책만으로 이러한 상황을 유도하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후발사업자의 성장을 도와준다고 KT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하는 것은 그것이 후발사업자들이 합병 등을 통해 일정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갖지 않는 한 오로지 KT의 초과이윤만을 보장할 뿐이다.

또한 기존 자금력과 이윤을 이용하여 KT가 과다한 광고선전비와 판촉비를 사용하여 시장점유율을 쉽게 늘림으로써 유효경쟁이 더욱 어렵게 되고 있다. KT는 2003년에 광고선전비로 98년에 비해 20배를 지출하였다. 불법마케팅도 자주 구사하였다. 더구나 증가된 이윤은 고배당으로 주주에게 돌아갔다.

관리가격에 의한 이윤은 아파트 청약에서 채권입찰제를 실시하듯 세금으로 환수하여 통신서비스와 관련된 인프라구축, 정보양극화 해소를 위한 보조금 등에 사용하는 것이 차라리 바람직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통신시장에서 경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둘째, 과거 공기업체제가 관치경제, 정경유착의 폐해를 갖는 게 문제였다면 현 체제는 경영진과 주주(특히 외국투자자)의 야합체제로 가고 있다. 소유구조를 보면 외국인지분이 법에 의해 49%로 제한되어 있지만 자사보유주식 지분 26%를 빼면 외국인이 사실상 2/3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경영진은 영속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에게 아부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KT의 배당성향이 2002년 10% 내외에서 2003년 2004년 연속 50%에 달함으로써 한국의 기업 중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KT측에서는 지배구조로 국내외 기관, 특히 월가의 유명 투자회사로부터 최고 평가를 받았다고 자랑하지만 그 내실은 투자자 이익을 위한 국부유출, 투자기피, 노동자 핍박을 의미한다.

투자 아끼고 인력 줄여 주주이익 극대화

투자를 아껴 회선 여유분을 가능한 한 낮게 유지하려 하는 가운데 지난 2월 경기남부, 영남지방에 통화불통사태가 발생하였고, 장시간 인터넷 사용자 때문에 인터넷 과부하를 걱정하면서도 투자에는 인색한 채 인터넷종량제 도입을 시도하였다. 도서벽지에 대한 서비스인력도 축소하였다.

사장추천위원회라는 것도 기존 사외이사 중 3명, 이들이 추천하는 일반인 1명, 전임 사장 1명으로 구성된다면 사실상 기존 경영집단이 영속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닌가 의심된다. 최근 KT와 KTF, 정통부의 인사를 살펴보면 일종의 '마피아' 조직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셋째, 정부의 태도는 어떻게 하면 통신산업을 발전시키고 통신의 공공성을 유지, 강화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기보다 KT가 집권세력에 잘 협조하는가 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갖게 한다. 공공성의 확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비스 표준안을 마련하여 보편적 서비스의 제공이 유지되는 장치 마련에 나서야 한다.

한편 지배구조와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자사주 26%에 대한 공적 소유 또는 국민연금 기금 등을 활용한 매입 등을 통해 지나친 주주(특히 외국주주)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공공성이 담보될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또 국민연금은 수익성을 중시해야 하는데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지도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공법은 황금주(Golden share)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의 각국, 예컨대 이탈리아 텔레콤, 네덜란드 텔레콤, 동유럽의 상당수 국가가 기간산업 민영화에 황금주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정부가 황금주를 통해 이사의 파견, 기업의 주요정책에 대한 거부권 등을 확보하면 공공적 이해를 반영할 수 있다.

물론 정부관료나 집권세력이 황금주의 권한을 행사해서는 관치경제의 과거로 회귀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위원회를 법으로 설치하여 이 위원회에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여 황금주의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정부대표(정통부 정보통신위원회 또는 국회 정보과학위원회 추천인사), 소비자단체, 협력업체 등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위원회가 구성된다면 이해관계자들의 발언권이 확보되고 공공적 이해가 반영되는 구조를 갖게 될 것이다.

'배가 산으로 가는' KT, 근원적 대안 마련돼야

통신산업은 네트워크산업이라는 점에서 전력산업과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최근 가장 기술변화가 격심한 분야이므로 그 공공성에도 공기업보다는 사기업체제가 산업 발전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점에서는 필자도 이견이 없으나 그럼에도 통신산업은 공공성과 국가안보적 차원까지 내포된 기간산업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공공성과 사기업의 성격이 일정하게 조화해야만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KT는 두 가지 관점에서 볼 때 과도한 주주이익과 엉뚱한 정치적 관심이 상호작용함으로써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당장 사장선임문제도 중요하지만 근원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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