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을 뒤덮고 있던 콘크리트 덩어리를 뜯어내고, 수표교를 비롯한 옛 다리를 되살리는 일. 또 시민참여 벽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청계천을 살리기 위한 대공사는 개천 하나를 되살리는 것 이상의 문화적 장치로 가득 차 있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도시의 구조물을 허물고 파헤쳐서 무언가를 다시 세우는 토목공사의 수준을 넘어선다. 역사와 생태, 문화를 복원하는 첨예한 문화정치의 맥락 위에 놓여있는 야심 찬 기획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청계천 광장의 공공미술품 문제는 이러한 문화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시각예술의 공공성을 가늠하는 상징게임의 차원으로 헤아려 볼만한 일이다. 미술계의 거센 반발 탓인지 서울시의 공공기금이 아니라 모 기업이 서울시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혀진 이 프로젝트의 향배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청계천 복원의 문화정치적 함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근대적 합리성 개념을 넘어서는 21세기 서울의 문화정치의 산물이다. 그것은 삐뚤어진 근대를 바로잡는 길이고, 인공의 도시를 생태의 도시로 돌리는 일이며, 빡빡한 도시에 숨구멍을 트는 일이다. 물론 건설업 출신의 시장 후보가 지자체 선거 과정에서 다목적 포석의 공약사항으로 내건 이 프로젝트의 허와 실에 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개천 하나가 이렇듯 첨예한 문화정치의 장으로 자리 잡은 것은 오늘날의 일만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산과 물과 공기의 흐름으로 가늠하곤 했다. 서울 가운데서도 광화문 일대는 명당 가운데 명당이라고 해서 조선왕조가 신중을 기해서 잡은 새 터이다. 뒤로는 북한산이 백그라운드 역할을 하는 조산(祖山)으로 자리 잡아 명당의 뒷산인 북악산으로 기를 몰아주고, 좌청룡 인왕산과 우백호 낙산이 아늑하게 감싸주는 곳.

게다가 앞산인 남산과 저 멀리 관악산이 있어 천혜의 명당으로 꼽힌 곳이다. 이렇듯 적절한 기(氣 또는 空氣)의 흐름을 잡아주는 데는 산의 흐름과 더불어 물길 또한 중요하다. 명당을 감싸 안는 물길을 명당수라고 했는데, 멀찌감치 서울을 휘감아 도는 한강을 ‘외명당수’라고 했고, 가까이서 물길을 낸 청계천을 ‘내명당수’라고 했다. 풍수지리는 이처럼 자연의 생김새를 읽어내는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은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사람의 삶을 맞추는 순리 그 자체이다.


얘기의 초점을 청계천으로 좁혀보자. 오늘날 우리가 청계천을 뜯어고치고 있는 것도 이렇듯 자연의 가치를 복원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잘 새겨보아야 한다. 대대로 청계천은 서울 도심 속 생활의 터전이었다. 청계천이 있음으로 인해서 그 주변의 삶이 오밀조밀하게 자리를 잡았고,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는 청계천을 둘러싼 수많은 공식· 비공식의 정사와 야사들이 존재한다.

사대문 안을 가로지르는 도성의 내명당수였다지만 근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그늘진 지역으로 전락한 오욕의 청계천이 다시 햇빛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청계천 복원이라는 사업을 관통하는 탈근대적 문화정치 덕분이었다. 조만간 완공될 이 대역사는 이러저러한 정치적, 경제적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도시생태학적 관점에서 되살아난 청계천은 서울 도심의 지형을 확 바꿔놓을 만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대지를 적시며 흐르는 물줄기를 콘크리트 덩어리 속으로 가둬둔 데다가 그 위로 고가도로를 세움으로써 그 아래에 수많은 그늘진 삶을 만들어낸 것 자체가 몹쓸 짓이었다. 도시미관상 어두운 그늘이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그 아래 그늘진 삶을 돌보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여러 가지 난점들이 있었다. 하지만 민초들은 그 아래에서 삶을 꾸렸다.

개발경제의 논리에 입각해 청계천을 콘크리트 덩어리로 덮어씌우고 청계고가를 만든 이후, 우주선도 만들어 낸다는 청계천 일대의 네트워킹을 비롯해 전태일의 청계천 피복노조 이야기가 전설로 남아있는 곳이다. 록밴드 천지인의 <청계천 8가>는 그곳의 비루한 삶을 절절히 담아낸다. “칠흑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그늘의 미학을 걷어내고 나면 곧장 밝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청계천의 그늘을 진정 밝은 곳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청계천 인근의 기술 인프라와 영세 상인들을 위한 대책이 지지부진한 현실 속에서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특혜 관련 부정비리 논란은 참으로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청계천 프로젝트가 건설 경기를 진작하는 도시재개발 사업의 일환인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정작 시민의 삶을 다루는 도시행정의 문화적 깊이가 아쉽기만 하다.

문화정치로서의 공공미술

청계천 광장의 상징 조형물로 올덴버그의 작품을 세우겠다는 서울시의 발표는 즉각적인 반대여론에 부딪혔다. 문제의 발단은 (사전에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작가 결정 사안을 앞뒤 맥락 없이 발표한 데 있다. 적어도 그런 일이 있을 예정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 상태에서 누가 결정했는지도 모르게 대규모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전격 발표된 것이다.

개인 가정집 마당에 소품조각 세우는 일이 아니다. 어느 기업 건물 앞마당에 미술장식품을 세우는 일도 아니다. 역사적인 청계천 복원 사업을 갈무리하면서 그 의미를 새기는 마당, 청계천 광장에 세우는 공공영역의 예술작품이다. 이러한 의미를 새기는 작품이라면, 의당 공적인 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프로젝트를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합의하여 좋은 작품을 세우도록 공론을 모았어야 했다.

올덴버그는 스웨덴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76세의 노대가이다. 그는 일상의 사물을 거대한 조형물로 뻥튀기해서 파격적인 시각적 충격을 주는 설치미술가이다. 1960년대 이후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이기도 한 그는 세계주요도시에 이와 같은 공공미술작품을 세웠다. 서울시의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세계적으로 검증된 작가의 작품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겠다는 것인가.

불행히도 청계천 복원이라는 도시의 상징정치는 이른바 검증된 ‘서구, 백인, 남성,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는 전제 조건을 충족하는 것 이외에 뭐가 있나. 청계천 복원의 역사적 의미와 도시 생태적 가치와 동시대의 시대정신에 대한 배려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도무지 분간할 길이 없다. 올덴버그가 자신의 작업 맥락에 입각해서 청계천 광장 한가운데에 십수미터짜리 톱이나 모종삽, 빨래집게 같은 일상의 기물을 세우기라도 한다면 어쩔 것인가.
 
광화문 옆 신문로에 우뚝 선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대작 <망치질하는 사람>이 얼마나 생뚱맞게 그곳에 서있는지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아마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미술이란 장소와 맥락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여기 서울이라는 도시의 삶과 역사를 집적한 시공간의 결합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덴버그가 청계천의 시공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과연 누가 호언할 수 있단 말인가.

천정을 뚫어서 비를 맞게 한 케테 콜비츠의 모자상. 공공미술은 이와 같이 때로는 건축과의 협업으로 또 다른 감동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점은 무엇인가. 공공적인 예술이란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고호나 피카소, 또는 이중섭이나 박수근의 그림이 몇 억원을 호가했느냐를 따지는 사적인 소유구조의 미술취미와는 다른 맥락을 필요로 한다. 공공예술이란 자본주의 시장논리에 입각해서 물건을 사고팔 듯이 작품을 사고파는, 그리하여 본연의 가치보다 사고팔아서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그 예술작품 본연의 가치란 무엇인가. 복잡다단한 예술론을 펼칠 일은 아니지만, 그 일단을 공공미술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공공(公共)미술은 공공장소와 예술의 만남을 전제로 하는 예술개념이다. 환경조형, 장식미술, 대지미술, 장소 지정형 미술(Site Specific Art) 등을 포괄하는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에서부터 그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새로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예술의 사적인 흐름과 달리 공공영역의 예술정치학을 모색하는 개념이다.

공공미술은 공익적 차원에서 미술이 대중을 만나는 방식을 고민함으로써 진보적 미술 실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공공미술은 이제 ‘행위과정’이나 ‘프로그램 운영’으로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나아가 공공미술은 비평적 언어의 항목에 상호작용, 관객, 효과 등을 추가하면서, 가령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성공한 효과적인 작품’이라는 비평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수잔 레이시라는 공공미술 비평가는 다음과 같은 논지를 편다. 예술가의 미학적 전략은 경험→분석→보고→행동의 단계로 나뉘며, 사적인 미술과 공공미술의 차이는 개인의 경험에 따른 주관적 감성을 공감시키는 단계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상황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며, 나아가 새로운 합의를 세워내는 과정으로, 예술행위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상의 차이라고 말이다. 행동가로서의 예술가가 사회적, 정치적, 예술적 이슈에 대한 새로운 틀을 만들어나가는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지향은 공공미술의 지향과 직접 맞닿아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공공적인 예술은 예술생산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대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공동체의 집합적인 사상의식과 생활정서에 바탕을 두고 ‘생산의 문화 예술’을 꿈꾼다.

우리가 환경 조형이나 기념 건조물의 차원을 넘어서는 공공미술을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공공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며, 공중(公衆)의 감성에 부합하는 미술 행위와 그 결과물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미술은 총체적인 시각 이미지의 정치학이다. 


서울시의 올덴버그 프로젝트는 지나치게 공공적이지 못했다. 문화정치의 욕망은 충만하되 공론장으로서의 공공미술에 접근하는 마음이 아직 설익었기 때문이다. 베를린의 비
를 맞고 앉아있는 콜비츠 모자상이나 수천개의 오렌지색 문이 들어선 크리스토 부부의 뉴욕의 공원 프로젝트 등과 같은 역사에 남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예술가의 탁월한 상상력과 더불어 공공미술을 품어내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누가 되었든 진정한 공공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공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서울시는 이 작품을 서울시의 예산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모 기업이 서울시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기업이 기증하는 작품이라고 해서 공공미술의 제 기능이 덜하지는 않다.

서울 도심의 중요한 장소에 세워지는 작품이라는 점, 공론장의 한가운데에서 우리시대의 정신적 가치를 담은 상징정치의 장이라는 점에서 필히 공론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차제에 청계천 광장의 공공미술이 얼마나 막강하게 공론장의 상징정치를 수행하며 문화정치의 장을 주도하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공공미술은 공공장소의 예술이며 공공영역의 예술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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