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지방자치 선거를 앞두고 최근 여성운동계에서는 지방의회 관련 선거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성계가 지방자치선거의 제도개혁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생활정치의 장인 지방의회의 여성참여율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현재, 지방의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기초자치단체장 0.4%(2명), 광역의회 9.2%(63명), 기초의회 2.2%(77명)에 불과하다. 그동안 여성부 설치와 호주제 폐지 등 정책과 법 분야의 개혁은 상당부분 진전됐지만 유독 제도영역 중 정치영역은 여전히 여성들에게 높은 장벽을 갖고 있다.

그동안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여성의 인권보호와 평등확대라는 여성운동의 특수 목적 뿐 아니라 여성의 정치참여를 통해 비민주적이고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아 일반 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중요시돼왔다.

특히 진보적 여성운동계에서는 여성의 정치참여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꾸준히 진행시켜왔는데, 여성의 정치참여가 단순히 기존의 남성중심적 정치에 ‘끼어들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판을 바꾸는 ‘새판짜기’가 돼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져왔다.

‘새판짜기’는 구체적으로 그동안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돼 왔던 젠더 이슈와 생태적 관점, 노동해방의 관점 등 소외된 계층과 이슈를 포괄하는 ‘여성적 시각’이 있어야 한다는 논의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새판짜기’와 여성 할당제 등을 통한 정파를 초월한 여성들의 진출사이에 있는 긴장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여성운동계 내에서 진행 중이다.

한편으로는 정제된 진보성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국회에 들어가야 ‘새판짜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여성할당 등을 통해 일정 수를 담보하는 것이 곧 새판짜기로 연결될 수 없다는 고민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보적인 여성들에게만 정치참여 기회를 열어 놓을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일정정도 여성의 정치참여율이 확대돼야만 ‘새판짜기’로의 진행도 가능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의 결과 진행되었던 운동이 2004년 총선 당시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운동이었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운동은 ‘끼어들기’과 ‘새판짜기’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다.

그동안 여성할당제 등을 통해 여성의 정치 참여 문을 열어놔도 상대적으로 기존 정당에 의해서 섭외 가능한 여성들만이 선택돼 정치영역으로 들어간다는 점, 그 결과 여성의 정치참여가 개인적 차원의 진출로 축소되고 ‘새판짜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운동이 적극적으로 진출시킬 후보 명단을 짜고 집단적으로 정치 영역에 진출시키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여건상 진보적 여성만을 대상으로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보수 진보를 떠나 깨끗하고 개혁적인 성향의 여성들이 정치영역에 들어가도록 함으로써 정치영역을 일정정도 개혁하고 ‘새판짜기’를 위한 양적인 발판을 만드는 ‘과도적 전략’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 결과 헌정사상 최초로 39명의 여성의원이 배출되어 16대 5.9%이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13%로 대폭 확대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일단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여성의 양적 확대라는 측면에서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2004년 총선에서 여성운동계가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를 통해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새로운 실험을 감행했다면, 2006년 지방자치의회 선거는 여성운동계에 또 다른 실험무대이다. 기초의회 여성 대표성 2.2%의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곧 주민의 참여에 기반한 민주적 지방의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직결되는 것이다.

지역 인구의 절반이며, 지역의 주생활자이고, 지역의 교육, 환경 등의 문제에 발 벗고 나서고 있는 여성들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선거제도를 만든다면 곧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수렴할 수 있는 민주적 지방의회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계는 기초의회의 선거구제를 조정해 여성의 참여를 일정정도 보장하는 할당제를 실시할 것을 논의해 왔고, 구체적인 할당방안은 현재 논의 중이다.

중요한 것은 여성의 동등한 정치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라는 여성들의 요구가 바로 지방의회를 비롯한 정치민주화, 사회민주화와 직결되는 문제이며 전체 시민·사회운동의 과제라는 점이다. 따라서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전체 시민·사회운동의 협력과 연대가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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