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지 않는 대신 주주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정책방안을 추진 중이다. 집중투표제는 실효성은 없고 이미 세계적으로도 강제규정에서 임의규정으로 전환하는 추세이므로 이를 의무화할 까닭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여건에서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집단소송은 소송을 제기한 주주가 이기면 동일한 피해를 입은 주주들도 별도의 재판없이 똑같이 배상을 받기 때문에 승소(勝訴)의 이익이 회사에 귀속되는 대표소송과 다르다. 그러기에 집단소송은 대표소송에서 나타나는 소수주주의 '무임승차 문제'를 해소하고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소송제는 연루된 기업의 존폐가 문제될 만큼 엄청난 파괴력과 부작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 않다.

집단소송제는 소송남발에 따른 업무마비와 기업도산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소송남발 우려에 대해 일부에서는 원고측이 이길 확률이 낮기 때문에 기우(杞憂)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승소 확률이 낮아도 한번만 이기면 거액의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집단소송은 법률시장의 금맥이 되고, 전문 브로커나 변호사가 양산되면서 이들의 '자가발전'에 의한 소송남발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일단 집단소송이 제기되면 결과에 관계없이 해당 기업의 주가는 폭락하기 마련이므로 기회주의적인 남소(濫訴)를 예방하지 못하는 한, 집단소송은 오히려 일반주주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지금은 구조조정이 시급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많은 제도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인데 굳이 집단소송제라는 극약처방이 필요한가도 의문이다. 1998년 이후 정부는 경영투명성, 이사회,소수주주권,인수합병(M&A) 등 기업지배제도를 대폭 개혁한 바 있다. 따라서 정부는 집단소송제를 새로 도입하기에 앞서 이미 도입한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순서이며, 집단소송제는 이들 제도의 정착과정을 보고 도입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그리고 경쟁력강화를 위해 사업구조에서 경영조직까지 수술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집단소송제 도입은 기업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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