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1980년 5.18 민중항쟁은 무엇을 남겼을까. 노동자, 민중이 역사와 사회변혁의 주체로 부상하도록 했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들이 숨거나 떠나버린 광주에서 계엄군과 신군부에 맞서 광주를 지켰던 많은 민중들, 마지막까지 항쟁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오월열사들이 사회에서 억압과 착취당하던 노동자, 민중임을 생각할 때 5.18 항쟁은 80년대 이후 대중투쟁의 동력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시발점이었다.

또한 끝까지 결사적으로 저항했던 비타협 저항정신일 것이다.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기 위해 싸웠던 오월 열사들의 정신은 오늘 우리가 다시 되새겨야할 5월 항쟁의 큰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5.18항쟁은 연대와 공동체 정신의 발현이었다. 시민군에 의한 치안 유지와 자체 방위는 높은 시민정신과 도덕성에 의한 것이었다.

5.18 항쟁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다. 하지만, 항쟁의 정신계승 못지않게 누구에 의해 어떻게 역사에 자리매김 하도록 할 것인가를 둘러싼 ‘기억’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를 재정립하는 과거청산은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을 거쳐 실질적 배(보)상과 기념사업의 단계로 이뤄진다. 5.18항쟁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저지르며, 광주 민중들의 피 위에 세워진 신군부 전두환 정권에게는 커다란 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폭도의 사주와 선동에 대한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빚어진 사고’라고 합리화했다. 87년 이후 정치적 민주화 과정을 겪으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점점 거세졌다. 가해정권은 이러한 압박에 못 이겨 화해를 제기하고 국민적 화합이라는 명목으로 덮고자 했다. 1990년 노태우정권 하에서 민자당은 단독처리로 소위 ‘광주보상법’을 제정 보상과 화해조처를 실시했다.

이러한 보상조치의 봉합 이후 문민정부에 들어서며 광주의 관련자들과 민주화운동 세력은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제기해 ‘5.18 특별법’과 ‘헌정질서파괴행위에 대한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을 통해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때마침 터진 두 전직 대통령의 천문학적인 비자금문제와 맞물리며 전두환, 노태우 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졌다. 성공한 쿠데타는 법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결정을 뒤집고 국민주권적 헌법의 정신에 반한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하게 만든 전, 노의 처벌은 국민들의 힘이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반인륜 행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가매장된 수많은 행방불명자들의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다시 잊혀졌다. 이후에 추가 배상과 국가 유공자 지정, 기념사업이 진행되면서 5.18항쟁은 미완성의 과거청산 과제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5.18 항쟁의 과거청산 과정은 근, 현대사 과거청산의 모델이 됐다. 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고 재정립하기보다 명예회복과 배(보)상이 앞서갔다. 그나마 의문사진상규명법 제정과 조사과정은 민주화운동의 과거청산 과정이 5.18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한 다행한 일이었다. 통합적인 과거청산의 교두보가 된 의문사진상규명 과정 이후 과거청산은 전반의 가해기관들의 자기반성의 기회를 만들도록 압박했다.

국방부에서도 군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고 19일 공식출범 예정이라고 한다. 얼마 전 5.18 유가족과 관련단체들은 5.18 항쟁에 대해서도 조사해줄 것을 요구했고, 국방부장관도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진실규명의 과정 없이 배상과 국립묘지까지 세우면서 했던 화해와 봉합 과정은 25년이 지난 지금 누가 최초의 발포 명령자인가라는 근본 물음부터 다시 제기하고 있다.

지난 5월3일 국회에서는 여, 야 합의에 의해 과거청산법이 제정됐다. 언론에 알려져 있듯 제정된 과거청산법은 조사권한의 부족과 정략적인 위원회 구성, 조사대상에서 군의문사와 법원의 확정판결 사건을 제외하고 종기규정을 둠으로서 수많은 조작사건들의 진실 규명의 기회를 박탈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시한 세력에 대한 조사범위를 넣으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시에 조사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사문화 돼가는 국가보안법의 부활이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그래서 벌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과거청산은 지난 시절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도 되풀이 되는 현실이며, 지금 바로잡지 못하면 미래에도 되풀이 될 역사인 것이다. 올바른 과거청산. 이것은 미완의 혁명 5.18 항쟁이 우리에게 남긴 또 다른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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