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8.18 일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태일이는 내 친구
박작대기는 이야기를 잘했다. 여름이면 큰 떡갈나무 둔덕에 깔아놓은 덕석에 앉아, 눈이 내리면 문통네 사랑방에 으레 동네 청년들서껀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왜정 때 누가 만주에 가서 주먹질을 잘했는지, 왜 길복이네 큰아버지가 코밑에 칼자국이 생겼는지, 하도 총알이 스치고 지나가 귀떼기가 너덜너덜했다는 이현상이가 몰래 다녀가던 새벽에 달구네 논배미 자리에 가장 먼저 나락꽃이 피었다든지, 그날 누구네 엄마가 아기를 낳은 것까지 손금 보듯 훤했고 말끝마다 감칠맛이 났다.

▲ 서해성 소설가 '시민방송' '기적의 도서관' '북스타트운동' 등 문화활동을 기획·실행해 왔다. ⓒ 매일노동뉴스
그 중 인공 때 이야기가 가장 재미났다. 향리에서는 6·25를 인공이라고 했다. 장총을 멘 문관씨가 총질을 하며 쫓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이 산에 붙었는가 싶으면 어느새 들판 건너 저 산에 올라 소리를 치고, 마을 뒤 뽀깨산 밑을 지나가더라는 말이 도는가 했는데 그날 저녁 월출산 지리산에 가 있었다는 둥 반쯤은 인공 때 사람들을 홍길동이로 둔갑시켜 마을 아이들이 배고픔을 잊게끔 하는 솜씨가 여간 아니었다.

그는 책 한 줄 안 보고도 잘도 알았다. 그는 글을 몰랐다. 학교 앞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진짜 알짜배기 무학이었다. 이야기의 칠할은 그래도 말 그대로 일자무식인 그에게서 배운 셈이었다.

향리를 떠나 항구도시로 배우러 나갔을 때 선창에서 한 사내를 만났다. 사내의 이름은 멜라콩이었다. 만났다고는 하지만 그와 댓거리를 건네 보거나 했다는 건 아니다. 한낱 그는 넝마주이였다. 멜라콩이라는 말뜻을 물을라치면 어른들은 "멜라콩이 걍 멜라콩이제"라고 할 뿐이었다.

멜라콩은 세상 모든 잡스런 일에 끼여들고 부질없이 신청했다. 울고 가는 사람 못 보고, 싸우는 사람 보면 날을 새워서라도 말려 기어이 화해를 붙이고, 초상 치르는 집이라면 빠지질 않고 나타나 배다른 자식 애비 섬기듯 알아서 손을 내주고, 기차에서 내려 무거운 짐 지고 가는 어른만 나타나면 대신 짐을 져다주고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멜라콩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뭐 하려고'가 이윽고 멜라콩이 된 셈이었다.

그가 넝마일을 하는 역에서 항구로 나가려면 건너야 하는 수채도랑은 비만 오면 한강이 되곤 했다. 멜라콩은 다리를 놓아달라고 시청에 청을 넣고 사정을 해보았지만 끝내 소용이 닿질 않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뭐 할라고 저런 짓거리를 할까, 잉. 이에 그는 자신이 넝마로 모은 것을 밑돈으로 마침내 다리를 반나마 만들었다.

그걸 본 사람들이 이윽고 나서서 나머지를 보태 마침내 작은 다리가 역 옆에 생겨났다. 다리이름은 물론 멜라콩다리였다. 그를 아는 사람 가운데 세상을 향해 일하는 모양새며 갖춤을 그에게서 배운 사람이 결코 적지 않으리라 여긴다. 멜라콩다리 밑으로 흐르는 구정물은 지금도 그 이야기로 흘러가리라.

서울에 와서 먹고살 것 없이 시난고난 하다가 청계천 어귀에 가까스로 포장마차를 들이밀고 잔술이나 판 적이 있었다. 아들 또래 청년이 거리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나서자 아주머니들이 밉지 않게 봐준 덕이었다. 포장마차 근처에는 헌책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중 한 집 아저씨가 무르게 보여 짬이 나면 오가며 비좁은 서점임에도 세를 낸 듯 아예 자리를 잡고 책을 보곤 했다.

주인은 때로 아주 책을 줘버리는 수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 뒤로는 책을 사봐야 했다. 책방 앞에는 도장 파는 노점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족히 십년 넘게 주로 막도장을 파오고 있었다. 가장 바쁜 날은 새로 월급을 타는 시다 여공들이 몰려오는 무렵이었다. 그들 틈에서 목도장 하나를 판 적이 있었다. 그가 무심히 말했다.

"전태일이가 공장 다닐 때 도장 많이 팠지. 전태일이가 저어그서 죽었어."

사내가 옹이 박힌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포장마차에서 고작 열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자리였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그가 살고 죽었다니. 그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가슴 아프거나 안타깝기보다 도리어 왜 반가웠을까. 정녕 살아, 그와 아무런 인연도 맺을 일이 없으리라 여겼을 터이다. 그가 죽은 자리 바로 옆에서 일을 했다니, 그와 식구라도 된 듯, 그와 친구라도 된 양, 그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 날 이후 박작대기나 멜라콩이나 다 전태일이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리라. 내 친구 전태일 이야기를.

서해성 소설가  labortoday@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해성 소설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