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도 예술이다. ‘그래피티(graffiti)’는 낙서를 예술로 만들어낸 현대예술 첨단의 장르이자 기법이며 넓게는 하나의 정신이다. 벽에 대고 낙서하듯 흔적을 남기는 일체의 문자와 그림들을 통칭하는 이 말은 좁게는 스프레이를 뿌려서 그리는 그림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스프레이캔 아트(spraycan art)’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매체를 가지고 예술 장르를 구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림의 맥락이나 정신성을 가지고 이름을 짓기도 한다. 그래피티를 ‘거리의 예술(street art)’로 부르는 것이 그런 경우다. 거리에서 만들어지고 그곳 거리에서 예술로서 존재하는 거리의 예술은 말 그대로 갤러리나 뮤지움의 예술과의 차별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규정이다. 따라서 그래피티를 낙서, 벽, 스프레이 등의 소극적인 개념에서만 볼 게 아니라 거리의 예술이라는 넓은 틀로 이해함으로써 동시대 예술의 탈현대적인 지형을 파악하는 하나의 유용한 틀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기 시작할 무렵부터 낙서는 하나의 자기표현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새겨져있는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을 생각해보라. 젊은 세대에게 홀대받는 기성세대의 불만을 몰래 새겨 넣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20세기 들어 낙서를 현대미술의 한 항목으로 끌어들인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사이 톰블리(Cy Twombly),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등 쟁쟁한 현대미술가들이 낙서를 자기 작업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은 모더니즘 예술의 자기논리에 충실했을 뿐 낙서 본연의 가능성을 극대화 하지는 못했다. 본격적인 낙서예술은 뉴욕의 뒷골목에서 이뤄졌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거리의 예술가로 시작해서 시각이미지를 다루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로는 문자 디자인의 창조적인 영역으로 받아들여져서 고급인력으로 채용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현대미술계에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 작가가 된 경우도 있다.


미국사회 양극화 현상 여과 없이 드러내

바스키아는 낙서화가로 유명한 화가이다. 현대미술의 여느 낙서 관련 대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코드를 가지고 있다. 그의 정신적인 중심추는 ‘힙합’정신에 있다. 힙합은 그래피티와 더불어 주로 흑인들의 생각과 정서를 토해내는 랩, 브레이크 댄스 등으로 이루어진 문화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패션, 음악, 댄스, 노래 등 문화 전반에 걸친 문화양식이자 하나의 정신으로 존재하는 문화현상으로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60년대 뉴욕의 슬럼가에서 시작된 흑인과 스페니쉬 청소년들의 문화에서 출발한 힙합은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급진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의 동력으로 작동한다. 미국사회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었던 힙합문화의 한 분야로 출발한 그래피티는 삶의 현장, 거리에서의 생동감을 가진 소수자들의 문화예술적인 창의와 상상의 발로였다.

바스키아의 역동성은 바로 이러한 힙합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지하철이나 거리의 낙서들을 현대미술의 한 방법으로 끌어들였는데, 그가 차용한 것은 낙서화의 형식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흑인으로서의 자아정체를 담아냈으며 인종문제를 인권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예술의 대 사회적 문맥을 형성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그래피티의 가장 눈에 띄는 양식적 특성은 문자를 그림으로 확장한 경우들이 많다는 점이다. 표음문자인 로마자는 자체의 형상적 의미가 없는 문자였으나 그래피티는 이러한 표음문자 알파벳에 또 다른 생명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들 그래피티를 생동감 넘치는 예술로 만든 것은 슬럼가에 걸맞은 도발적인 아이콘들이었다. 이들의 넘치는 상상력과 에너지는 힙합정신의 본류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허락받지 않은 곳에 그림을 그렸다. 따라서 자기표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원천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인종갈등을 표현하는 예술의 맥락화 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도시는 이들 불법적인 그림들을 통해 소수자 정체성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고 불법과 금기를 넘어 주류 현대미술계로까지 진출했다. 뉴욕의 뒷골목에 넘쳐나는 낙서들은 소수자 정체성을 담은 격렬함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힙합 정신의 주축을 이루는 그래피티는 오늘날 서구에서 또는 한국에서 하나의 경향이 되어버린 장식적 그래피티와는 그 격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유럽에서도 그래피티가 자연스러운 ‘거리의 예술’로서 자리를 잡았다.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가도 여기저기서 그래피티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철도 변 거대한 교각이나 벽면들에서부터 후미진 골목의 빈 벽들에는 어김없이 화려한 그래피티가 쓸고 지나갔다. 높다란 건물 꼭대기의 아슬아슬한 벽에서도 그래피티를 만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그림의 메시지나 조형성과 더불어 얼마나 접근하기 어려운 벽에 그림을 그렸는가 하는 대담함이 일종의 기술력이나 실험정신의 잣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현지인들조차도 쉽게 해독하기 어려운 문자그림들은 이미 아마추어 단계를 넘어서 나름의 복잡한 코드를 갖춰놓았다. 따라서 이제 그래피티는 단순한 낙서 그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공공영역에서의 유력한 시각이미지 소통 방식인 벽화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야만적인 도시 이미지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공공의 장소를 점유한 시각 이미지들 가운데 건축물이나 도로 등과 같은 기반시설을 제외하고 압도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자극하는 것을 꼽으라면 전광판의 현란한 동영상일 것이다. 게다가 네온사인을 비롯한 저 엄청난 간판들과 상품 광고들을 생각해보면 도시의 시각적 역동성은 일상적으로 도시 사람들의 눈을 향해 시각적 질식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들 도시의 시각이미지들은 하나같이 무언가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데, 대부분이 자본주의 사회의 꽃이라고들 말하는 ‘광고’의 목적을 가진 것들이다.

영업소의 존재를 드러내고, 상품의 가치를 알리려는 무절제한 시각 전쟁이 만들어낸 우리시대의 화려하면서도 씁쓸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거대자본이 운용하는 대로변의 굵직한 시각전쟁은 뒷골목의 아기자기한 다툼으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렇듯 어느 곳 하나 숨쉴 틈 없이 들어찬 이미지들의 전쟁판에서 조금이라도 숨구멍을 터주는 요소들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인가.

야만적인 도시 이미지 폭력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요소들이 예술의 이름으로 조금씩 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사회에서 통제 불가능한 이미지 난립의 틈바구니에서 예술가의 몫으로 남겨진 역할은 ‘건축물 미술장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허락받은 예술로서의 건축물 미술장식품은 예술의 창조적 상상력을 고스란히 자본과 권력의 품에 복속시킴으로써 일방적인 이미지폭력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도시의 작은 악세사리 정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존재들이 도시에 대해 해줄 수 것이 무엇인가. 허락받은 장식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그래피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 그래피티의 진정한 예술적 창의가 어떻게 현대도시의 시각적 난맥상을 넘어설 수 있을지 그 단초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피티의 역동성은 무엇보다 무허가 그림의 자유로움에 있다. 일단 벽면이 있어야하고 그 벽을 응시하는 시선들, 즉 지역공동체의 정서와 교감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나 공동체 의식들이 전제되어 있어야 생동감있는 그래피티로 존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대중음악에서 힙합은 정신은 버리고 껍데기만 수용해서 변종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다. 그래피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곳곳에서 만나는 그래피티들은 양적으로 상당히 팽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심 곳곳의 장식적인 그래피티는 특유의 문자그림과 도박적인 도상들로 보는 이들을 매혹하고 있다. 한강변의 일명 토끼굴들도 좋은 그래피티 대상지다. 강변도로 밑을 지나는 인도 좌우면을 빼곡하게 매운 토끼굴 그래피티들은 힙합시대를 살아가는 도시민으로서의 낯설지 않은 풍경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그림들이 허락받지 않은 그림의 역동성을 가지고 있는가.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동네 골목길 후미진 곳에 새겨진 궁시렁 거리는 듯한 낙서 몇 마디가 훨씬 더 정서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80년대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다수의 허락받지 않은 미술을 만들어 냈다. 특히 거리의 예술은 상당히 민감하게 사전 검열뿐만 아니라 제작된 후에 문제가 되면 일방적으로 지워버리는 예술테러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동과 신촌 등에서 유연복, 김환영 등의 작가들이 주축이 된 벽화들이 지워졌다. 당시만 해도 그래피티라는 놀라운 순발력을 가진 벽화가 아니라 붓그림으로 만든 벽화들이라 한 번 당하면 출혈도 컸다.


이례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다. 1986년 아시안게임이 열리기 전 수원지역의 미술인들이 모여서 대대적인 낙서투쟁을 벌인다. 이들이 손에 든 것은 스프레이였다. 독재정권이 벌이는 스포츠 정치인 아시안게임의 본질을 폭로하기 위해서 이들은 도심 곳곳으로 흩어져 낙서를 했다. 물론 이들의 낙서는 벽면뿐만 아니라 자동차에까지 감행되었다. 아무래도 예술이라기보다는 프로파간다(선전)에 가까웠고 일부 현장에서 검거된 작가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했다.

이들의 불법 행위에 피해를 당한 몇몇 개인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낙서는 이렇게 내지르는 맛이 있어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사태에 직면해 김윤환 작가는 분필을 들고 파리 거리로 나갔다. 길바닥에 미국이 침략전쟁을 벌인 역사를 길게 나열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래피티의 순발력은 가장 효율적으로 공간의 특성을 이용해 화자(畵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다. 스프레이든 분필이든 기동력 있게 낙서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빡빡하게 짜여진 도시의 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래피티의 최대 장점이다.

그래피티는 종종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는 경이로움을 주기도 한다. 경복궁 안에는 최근까지 임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던 건물이 있는데, 거기에 광주문화중심도시추진기획단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다. 국가 차원의 기획단이라 공무원분위기가 많을 법하지만 이곳 사무실 곳곳에는 그래피티가 있다. 관공서 분위기를 잠재우고 혁신적인 문화일꾼들의 일터라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경우이다.


빡빡하게 짜여진 도시의 시스템에 균열을

그만큼 그래피티는 그 형식적인 새로움으로 인해 새로운 시각적 충격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토끼굴이라는 공공장소와 국가기관 사무실이라는 장소가 갖는 차이는 비슷한 양식의 그래피티를 접하는 눈을 상당히 다른 관점에 놓이게 한다. 토끼굴의 그래피티가 장식적인 수사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던 눈은 국가기관 사무실의 그래피티를 바라보면서 그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벽면에 은근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래피티의 특질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래피티는 장소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장소특정성(site specific)이라는 현대미술의 덕목은 장소의 공간적 특성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아직도 공공장소에서의 이미지 정치에 대해 매우 서투르다는 데 있다. 몇 해 전 을지로3가 자하철역 환승구의 벽화가 누군가의 스프레이 테러를 당한 후에 지워지는 불상사가 있었다. 미디어시티 서울이라고 하는 비엔날레 행사 때 기획된 강영민, 이동기 두 작가의 벽화는 일부 서울시민들의 눈에 좀 낯설어 보이는 이미지가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스프레이 테러를 당할 정도로 위악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작품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끝내 그 벽화는 지워지고 말았다.

공공장소에서 그 수많은 광고이미지들은 버젓이 일상의 공간을 침탈하여 시민들의 눈을 현혹하고 있다. 그런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테러를 당하고 지워지는 상황이라면, 아직 서울시의 시각문화 수준은 한참 멀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는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혹시 그래피티가 뉴욕 뒷골목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듯이 도심 곳곳에 새로운 파열구를 만들며 시각문화를 뒤흔들어 줄 수는 없겠는지. 허락받지 않은 예술 본연의 생동감을 가지고 살아있는 예술로 자리잡을 수 있겠는지. 아직 우리에게 아방가르드의 역사가 삶의 영역에 스며들지 못했으므로 오히려 그 가능성은 더 높은 것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그래피티는 아직 아방가르드로서의 예술의 범주에 편입하기에는 좀 거리가 있다. 그 예술적 지위를 규정하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뚜렷한 흐름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간헐적으로 예술가들의 실험을 위해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이미지가 나오기는 했다. <버스전>이라는 기획전 때, 인사동과 평창동을 오가는 미술관 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팅의 일환으로 권기수의 그래피티가 선보인 적이 있지만, 기획전 행사를 위한 일회용 그림이었다. 붙박이 벽 그림으로는 홍대 앞 거리미술전 행사의 일환으로 브러시 페인팅 틈에 끼어있는 그래피티를 만나는 것이 고작이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카페에 그래피티 장식을 해주는 경향들이야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힙합 본연의 정신이 사그라든 무늬만 그래피티를 만나는 일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열린 공간에서 대중과 만나야하는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는 그래피티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피지 않은 꽃이다. 접점을 형성하는 방법론이야 여러모로 나올 수 있겠지만, 허락받지 않는 그림 본연의 생동감을 잃지 않고 도시에 숨구멍을 터주는 가벼운 몸집의 말랑말랑한 그래피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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