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정부가 당정협의와 경제장관 간담회를 거쳐 마련한 '2단계 기업지배구조 개선안' 은 '집중투표제 의무화, 집단소송제 도입' 이라는 당초방침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요건 완화' 로 일보 후퇴한 것이다.

민주당과 정부 모두가 집중투표제 의무화나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도입이투명경영체제 확립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 이론이 없었다.

하지만 소송 남발 같은 부작용과 기업들의 반대를 뚫고 나가기에는 당. 정 모두가 부담스러워 결국 용두사미(龍頭蛇尾)식 개선안이 만들어진 것이다.

◇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단계적 도입배경〓증권관련 집단소송제 도입문제는 지난 6월 법무부가 세종법무법인 등에 의뢰했던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위한 상법개정 권고안' 용역보고서가 나온 후 본격화했다.

이 보고서는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함께 집단소송제 도입을권고했다.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되면 투자자들은 기업의 허위. 부실공시, 내부자거래,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으로 본 피해를 신속간편하게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기업들의 투명경영 체제가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소송사태를 유발해 기업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1986년에 상장한 기업의 86%가 7년 안에 집단소송을경험했다.

또 90~94년에는 매년 평균 3백건의 집단소송이 제기됐고, 사건당 화해비용은 평균 8백60만달러에 달했다.

기업들은 이같은 부작용을 예로 들어 집단소송제 도입을 강력히 반대해왔다.

재경부는 도입원칙엔 공감하면서도 이같은 부작용을 의식,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했다. 특히 법무부에서는 '법체계가 흔들린다' 며 도입 자체에 회의적 입장을 보여왔다.

결국 이같은 제약조건을 감안해 당정협의와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절충안을만들어 낸 것이다.

◇ 실효성 있나〓단계적 도입방안은 기업들에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한것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단소송제와 집중투표제는 일부 부작용도 있겠지만 제도적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개혁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며 "당장 무리라고 판단된다면 기업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도입하느냐에 따라 실효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도입시기나 적용대상 규모를 조정하면 초기단계에는 거의 실효성이 없는 명분만의 제도로 운영될 가능성도 있다. 법무부의 최종안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재계는 반대〓재계와 경제단체들은 집단소송제 단계적 도입방침 등을 '시기상조' 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 김효성 부회장은 "집단소송제의 경우 기업 지배구조에 사후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 경영의 안정성과 기업가치를 해칠 우려가 커 소액주주에게도 이롭지 않다" 고 반대의사를 밝혔다.

집중투표제 역시 정보 유출. 중장기 의사결정 지연 등 부작용 때문에 이를 시행하는 나라가 러시아. 멕시코.칠레 등 세나라뿐이라며 기업 자율에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소송 남발▶기업의 주가 폭락▶사주의 기업공개 기피▶소액주주의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을 들어 집단소송제의 도입을 늦출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전경련은 또 집중투표제에 대해선 ▶이사회 내 대주주 그룹간 갈등심화▶기업 이전에 따른 산업 공동화▶해외자본의 직접투자 기피▶인수. 합병의욕 저하 등을 이유로 도입 자체를 반대했다.

<용어해설>

◇ 집단소송제〓1명의 주주라도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했을 경우 다른 주주들도 별도의 소송 없이 똑같은 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다.

◇ 집중투표제〓예컨대 대주주가 60%, 군소주주가 40%의 주식을 가지고있는 상황에서 이사 10명을 선임하는 경우 지금은 대주주가 10명 모두를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선임할 수 있다.
그러나 집중투표제 아래서는 군소주주들이 합심하면 4명까지는 자신들이 미는 사람을 이사로 뽑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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