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고에 대해 처음 들은 얘기는 지난 2002년 월드컵 정국에 벌였던 그의 도발적인 퍼포먼스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전주와 인천의 월드컵경기장 외곽 행사장에서 퍼포먼스 공연 초대를 받은 드라마고는 반지하그룹 멤버들과 함께 안티 월드컵 퍼포먼스를 벌였다.

인천에서는 무대에서 붉은 깃발로 변한 태극기를 휘날렸다. 그의 동반자이자 반지하(www.vanziha.net) 그룹 멤버인 지경은 붉은 천에 ‘2002 민주주의’라는 문구를 써서 ‘열광하고 있는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한국의 현실을 알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전주에서는 초등학생의 가방을 메고 주위의 월드컵 기념물들을 뜯어냈다. 지경은 아랫도리를 전부 벗어던지고, 스포츠 마케팅이 대중을 자본주의의 창녀로 만들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미술관의 기획전에 그가 참여작가로 출품한 뒤 기자간담회가 열리던 날의 일 또한 마고이즘의 진수를 선보인 것이었다. 10여명의 기자들이 한창 마무리 작업 중이던 마고의 작품 앞에 몰려들었을 때, 그는 묻는 말에만 답하는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또박또박하게 작품 설명을 했다. “인천지역에 뿌리내리고 사람들의 삶이 아무리 보잘 것 없고… 반자본주의적 태도로 현장을 지키는 현장문화운동가로서의….”

나는 큐레이터로서 드라마고라는 작가에 대해 사전에 들었던 바와 그를 만난 이후 최근까지의 모습이 변치 않는 세상에 대한 진지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마고이즘과 반자이즘, 지역과 현장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마고이즘

드라마고(이하 마고)라는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를 이해하는 몇 가지 코드가 있다. 그중 단연 앞서는 게 인천이라는 지역과 삶의 현장이다. 그가 추구하는 활동의 범위와 장소를 압축한 이 두 가지 개념은 마고를 마고답게 하는 원천적 에너지 같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서 지역성과 현장성을 주창한 무수한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존재해 왔었으리라는 짐작으로 미뤄보면, 도대체 그를 둘러싼 에너지들의 정체를 무엇이라고 규정해야 할까 망설여진다. 이럴 때 좀 다른 언어로 글을 표현해보는 것도 괜찮을 법하다.

마고의 가치 지향을 총칭할 뚜렷한 대안이 없다면 일단 그냥 ‘마고이즘’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렇다면 마고이즘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를 좀 풀어보자. 그는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인하대 사범대 미술교육학과 93학번 출신이다. 고교시절 시를 쓰고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문화적 관심을 키워왔고, 대학에서 문화예술 교육자로서의 학습기를 거쳐 인천 지역의 초등학교 미술교사로 일한(1999~2002) 적이 있다.

현직교사 생활을 접은 후 그는 전업 활동작가가 되었다. 그는 ‘미술이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사람들의 소통의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주저 없이 밝히고 다닌다. 예술의 현실 반영론과 소통의 도구론을 새삼 언급하기에는 현실문화지형의 안일함이 도를 지나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과서 읽듯이’ 저 지극히 고루해 보이는 문구를 강조해 마지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읽은 게 짧아서 루카치 시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사실은 ‘현실반영과 소통의 도구’라는 이 두 마디 말에 마고이즘의 정체가 온전히 들어있다.
마고와의 만남은 늘 장광설의 토론장으로 이어진다. 그는 한번 말을 시작하면 끝매듭을 찾지 못하고 기본이 교과서 반 권쯤은 진도를 나가야 겨우 마무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그에게는 만남과 대화의 과정을 통한 의사소통의 욕구가 충만해 있다는 증거이다.

여기서 그가 가끔씩 직면하게 되는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언급하자면, 마고의 언어가 동시대의 언어인가 하는 의문점 같은 것이다. 마고가 구사하는 언어들은 대부분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문어체일 경우가 많다. 현장, 지역, 반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이 그것이다. 이런 단어들을 열거하면 대부분의 청취자는 개념적 혼수상태에 빠져 흐느적거리다가 대화 자체가 흐지부지 되거나 의견 충돌로 격해지곤 한다.

언어의 빈곤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이런 상황을 접하면,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몇 마디 유연한 말들로 대처하려 해보지만, 워낙 살아온 세월들이 다르다보니 그 다름의 폭을 성큼 건널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참에 마고이즘의 이념적 경직성을 언급해볼까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가지만, 그것마저도 부질없다. 오히려 그를 지탱하고 있는 명쾌한 신념 체계에 대해 젊은 나이에 마고에 비해 훨씬 노회해져버린 나를 돌아보기나 할 일이다. 비판적 시각으로 똘똘 뭉친 마고이즘의 원칙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야 할 처지이다.

그는 학습과정에서 체득한 문화예술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문화생산의 장을 열어나가는 활동을 하려한다. 이러한 태도는 ‘현지답사, 역사학습, 문화자료, 사회적 자원 등을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지역의 다양한 문화인들을 포함한 지역 주민과 지역문화에 대한 대화’를 시도한다는 그의 프로그램 운용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문화연대, 인미협, 민예총, 하자센터, 인권영화제 등 문화예술단체나 기획단에 수시로 결합하여 퍼포먼스를 벌이는 그는 이미 연대와 나눔의 실천에 익숙해진 문화운동가이다.

드라마고의 활동은 요컨대 ‘대안사회 만들기’로 집중된다. 개인과 사회를 관통하는 총체성을 그는 여전히 삶의 주축으로 삼고 있다. 소통의 과정에서 현실 삶을 넘어서는 이상향을 그려내는 일이야말로 예술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현실 자본주의가 유포한 이데올로기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반자이즘

그가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 <누토피아>라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혼자서 무언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오만과 오류의 시기’가 있었다면, 이후 퍼포먼스집단 <반지하>를 꾸려온 기간은 마고이즘을 ‘반자이즘’으로 전환해 확산해온 세월이었다.

반지하+이즘(vanziha+ism)의 합성어인 반자이즘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했다. 그의 신실한 동지인 퍼포먼서 지경이 그 대표적인 멤버이다. 미술가만이 아닌 여러 분야의 젊은이들이 만나 꾸려오고 있는 반지하는 오늘날의 마고를 잘 알려진 언더그라운드 문화활동가로 만든 토대이다. 마고이즘이 다소간 자폐적 성향의 위험성을 띄고 있다면 반자이즘은 훨씬 다이나믹한 힘을 가지고 있다. 현실주의나 행동주의, 혹은 현장성과 일상성을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도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작은 공동체의 미덕이다.

반자이즘은 말하기와 글쓰기 중심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미지텔링 기법으로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문자언어나 구두언어를 그림이나 영상과 연계하는 방식이다. 반자이즘과 같은 활동 반경은 당연히 예술영역만을 기반으로 삼을 까닭이 없다. 해서 그들은 문화기획 내에서 시각이미지의 영역을 확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시각이미지 전문가로서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함일 터이다.

여기서 파생하는 문제가 시각예술의 공공성 문제이다. 마고이즘이나 반자이즘에 대해 유의미성을 강조하는 나로서는 유독 공공미술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이 숙제로 남아있다. 아무래도 작가주의에 대한 시각의 차이인 것 같다. 미술(시각예술)에 있어서 공공성 획득을 위한 장치가 무엇인가 하는 점을 두고 한참 설전을 벌여 보았지만, 그와 나는 아직 남은 말이 많이 남아 있다.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예술이란 환타지가 있어야 성립 가능한 것인데, 마고가 말하는 환타지는 작가적 삶이 타인의 삶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 문화예술의 윤리, 작가로서의 윤리를 간직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자이즘의 모토는 ‘공존을 위한 공공문화 표현집단’이다.

아무래도 그의 가치체계 속에서는 미술의 오만함이 배태한 환타지와 그것을 중심으로 접목된 인문학적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분열적 삶의 방식을 거부하면서 삶의 총체적 자원을 네트워킹 하는, 말하자면 총체성 올인 전략 같은 게 짙게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집에서 환경친화적인 재활용 세재가 아닌 퐁퐁을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총체적인 삶의 모습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엄격한 잣대의 질문에 봉착했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이런 태도라면 반자본주의적 삶의 지향은 일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할 테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태도의 문제일 뿐이라는 점. 휴~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지역주의와 현장성

앞서 말한 두 가지 태도, 마고이즘과 반자이즘은 지역주의와 현장성 사이에 걸쳐있다. 이들의 철학과 실천이 인천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며, 삶의 장소에 기반을 둔 문화예술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오늘날 자치와 분권의 가치가 대세를 이루고 있듯이 지역주의는 인천을 포함한 모든 삶의 장소가 평등한 낱낱의 지역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마고의 텃밭인 인천은 그의 지향을 실천하는 작업실(아뜰리에)이다. 문화생산의 장을 구축적 건축공간으로서의 내밀한 작업실이 아닌 인천이라는 도시의 삶의 영역으로 확장시켜낸 것이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중요한 만큼 로컬 네트워크가 소중한 시대에 살고 있다. 마고의 경우 철저하게 인천이라는 지역성 기반의 현장주의자이다.

그는 빽빽한 활동 이력 가운데 인사동 전시공간에서의 활동이 별로 없다. 21세기화랑, 관훈갤러리, 사비나미술관 정도가 거의 전부다. 시각예술의 생산과 향유를 싸늘하게 면 분할해서 만드는 집과 보여주는 집의 경계를 완벽하게 이원화 해놓은 집, 미술관만을 그는 자신의 장으로 삼기에 부적절 하다고 보고 있다. 그의 현장 문화활동은 퍼포먼스에서 미술교육프로그램, 지역축제, 참여미술, 자료화작업(지역문화기록) 등을 통해서 삶의 현장에 대한 문화적 개입을 지속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인천이라는 지역을 토대로 한 실천적인 문화개입’, 이것이 지역-현장주의자 마고의 틀인 셈이다.

마고의 활동은 현장성을 강조하는 문화실천이다. 80년대적 시각은 전시장미술과 현장미술을 이원화해서 사고하고, 실천의 방식도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흐른 적도 있었다. 그 시대는 후배세대들에게 현장이 없으면 현장미술도 없다는 차가운 교훈을 남겨주었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현장미술은 없어졌지만 현장은 여전히 있다고 말이다. 마고와 반지하는 80년대 현장미술이 열풍처럼 휩쓸고 간 뒷자리에서 21세기형 현장문화예술을 꾸려나가고 있다. 바로 이점이 그들을 우리시대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으로 기록할 만한 이유이다.

이들의 활동은 문화프로그램 개발과 사회적 연계에 집중되어 있다. 최소한 미술을 위한 미술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겠다는 태도가 강하게 배어있다. 그는 지난 2002년 <디지털 인천 하우스>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후 문화일꾼으로서 기능하는 인천 전문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명백하게 굳혀갔다. 인천의 집들을 답사하고 기록해서 지역의 사회적 특성을 토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온 그는 2003년 여름에는 도시공간과 대안교육에 관한 강의를 진행했다.

송림동의 아이들에게 마을사진 위에 그림그리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소나무 숲>이라는 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글쓰기, 전시, 교육, 기획 등 시각예술문화 영역에서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활동 방식을 규정하는 ‘대안’을 찾는 행위는 여느 바깥미술작가들의 맹목적인 외출과는 구분되는 목적의식적인 것이라는 점도 마고이즘을 이루는 실체 가운데 하나이다.

마고에게는 지역 주민들의 현실과 미래의 삶을 기록하고 증거하는 (문화)생활기록부 같은 게 있을 법하다. 대중의 미술교사, 민중의 시각문화 기획자 드라마고의 삶은 문화예술을 삶의 현장으로 돌려주는 일로 귀결된다. 마고는 현장에서, 나는 미술관에서, 우리 공동의 목표 같은 걸 만들어볼 수 있을까?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뻔히 알면서도 버리지 않고 부여잡고 있는 것이 있다면 과연 그것은 미술적 환타지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마고이즘과 반자이즘, 지역성과 현장성이라는 화두는 이야기 자리에서 빠져나가려는 나의 뇌리를 짓누르는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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