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도산이 급증하면서 피해를 본 주주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잇따라 제기하는 등 권리찾기에 본격 나서고 있다.

그동안 비정상적인 주가조작이나 펀드간 불법편·출입(일명 물타기), 재벌들의 고질적인 부실계열사 지원 등으로 손해를 봐도 투자자들은 속으로만끙끙 앓았지만 이제는 당당히 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재벌개혁이 단행되면서 소액주주들의 권리찾기운동은 기업지배구조개선 문제로까지 치닫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가 발달한 외국에서는 이미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문제를 개선해오고 있다. 우리도 이르면 내년부터 기업의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소송제’ ‘집중투표제’도입을 추진중이지만 경영위축을 우려하는 기업의 반발로 시행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일반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다준 대우사태와 ‘정현준게이트’를 계기로 소액주주들의 권리찾기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본다.

◈소액주주들의 분노〓소액주주들의 불만은 항의차원을 넘어 법적투쟁의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대규모 부실을 초래한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소액주주 손해배상청구소송 사태에 휩싸여 있다. 대우중공업과 대우전자, ㈜대우의 분식 회계처리와 관련해 소액주주들이 이들 기업과 회계법인을 상대로집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

지난 25일 강모씨 등 77명은 ㈜대우·산동회계법인·김우중전회장·㈜대우의 전직 이사와 감사 등 모두 33명을 상대로 36억8000여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이들은 소장에서 “산동회계법인은 대우에 대해 지난 97년과 98년도 회계감사를 하면서 채무를 고의로 누락하는 등의 수법으로 14조6000억원을 분식회계했으며 이를 믿고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본만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박모씨 등 10명도 같은날 대우조선공업·대우종합기계·대우중공업·산동회계법인·홍콩상하이은행(HSBC) 등 10곳을 상대로 19억7000여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박모씨 등 5명은 대우전자 등 22명을 상대로 9억6000만원의 손배소송을 냈다.

정현준사건으로 피해를 본 평창정보통신 소액주주 128명도 26일 정씨와 이경자동방금고부회장, 유준걸평창정보통신사장 등 3명을 특경가법상 사기 및배임등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소액주주들의 이같은 손배소송은 코스닥시장은 물론 3시장과 장외기업들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3시장 업체인 넷티브이코리아 소액주주들은 최대주주가 정상적으로 회사를 운영하지 않고 돈을 빼돌리는 등의 전횡을 일삼아 기업가치가 폭락, 큰 손실을 봤다며 형사고발과 법정소송을 추진중이다. 특히 ‘정현준 게이트’로 인한 일반투자자 및 소액주주의 피해규모만 2000억원정도로 추산된다.

◈권리찾기의 한계〓소액주주들의 소송은 잇따르고 있지만 당사자에게 보상이 돌아간 사례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에 의해 시작된 소액주주들의 권리찾기운동이 실효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제도적인 보완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제도 보완의 핵심은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대표소송 단독주주권을 확보하는 것.

허위공시등으로 피해를 본 주주가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 같은 피해를 본다른 주주들도 자동으로 배상받는 집단소송제는 정부가 내년부터 도입할 방침이지만 기업들의 반발로 시행이 불투명한 상태다. 대표소송 단독주주주권은 소송의 지분을 확보하기 어려운 소액주주들에게 필요한 권리다. 현행 상법에는 총 발행주식의 0.25%를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들만이 소송을 낼 수 있도록 돼있어 발행주식의 규모가 클수록 소액주주들의 권리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 이승희정책부실장은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한 문제제기와 책임추궁을 통해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찾는데 한계가 있다”며 “집단소송제와 대표소송단독주주권 확보 등 제도적인 문제점이 시급히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코스닥 벤처기업의 경우 인수합병(M&A)이 잇따르고 있으나 매수청구가(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을 해당회사가 사존炸?舊 않아 소액주주들이 권익을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현행 증권거래법상 상장법인의 경우에만 매수청구가의 산정기준을 시장가격으로 하고 코스닥을 포함한 비상장법인에는 아무런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합병하는 회사가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은 본질가치로 주식을 매수해 주주들이 피해를 봐도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셈이다.

삼성증권 박상은 주식운용팀장은 “미국의 경우에도 주식매수청구권처럼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있다”며 “미국 경영자들은 주주들의 원성을 살만한 합병계획은 꿈도 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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