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라는 전시회가 있었다. 말을 줄여서 ‘국전’이라고 불렀던 이 전시가 생긴 것은 일제강점으로부터 벗어난 지 4년만인 1949년의 일이다. 이 전시는 일제의 문화통치 전략의 일환으로 1922년에 만들어진 <조선미술전람회>(선전)의 후신이
다. 전시를 열고 통치자가 상을 주는 제도 틀을 근간으로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세력의 기득권이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에 그렇다.

국전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각종 현안을 반영해서 건축이나 추상미술 등의 분야를 늘이기도 했다는 점 등으로 보아 국가 시책을 반영한 전형적인 관주도의 문화행사였다. 국가 지도자가 상을 주는 제도였던 만큼 당시의 정치적 상황 아래에서 우파민족주의 관점이나 정치적 무정견의 시각 이외에 일체의 좌파적이거나 진보적인 사상의식을 가진 예술이 제외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따라서 국전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선전과 마찬가지로 체제 유지를 위한 좋은 방편이었을 뿐만 아니라 친일수구 세력들의 좋은 서식처로서 기능했다. 이후 국전을 둘러싸고 ‘낙선전’, ‘반국전’ 등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데, 한 마디로 국전의 역사는 해방 후 한국현대미술의 역사 그 자체다.

1981년까지 30회의 국전이 열린 후, 민간의 미술인 단체인 ‘대한민국미술협회’(미협)가 주관하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이라는 민간주도 전람회로 바뀌면서 국전은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공모전 형식으로 변화한다. 수십년 동안 이어온 ‘대통령이 상주는 제도’에서 탈바꿈한 이 공모전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부정과 부패로 얼룩졌다. 수많은 심사위원들이 쇠고랑을 차는 일이 반복되었고, 얼기설기 얽혀있는 먹이사슬의 뿌리는 미술문화를 진작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미술대전을 둘러싼 기득권의 먹이다툼 근거지로 기능해왔던 것이다. 미술대전의 권위와 신뢰가 땅에 떨어졌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미술대전의 권위를 되살려보겠다는 개혁적(?) 책략의 일환으로 대통령상을 부활하겠다는 방침이 나왔다. 올해 초의 일이다. 대통령상뿐만 아니라 국무총리상, 문화부장
관상, 문예진흥원장상 등이 주는 상을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상금 총액은 2억여원에 달한다.

이게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도 유분수지 20여년전에 없어진 국가의 권위에 기댄 수상제도를 부활하겠다는 그 상상력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미술인들의 우려는 즉각적인 성명서 발표와 반대 퍼포먼스 등으로 이어졌고, 많은 언론도 이러한 논란을 다뤄왔다.

논란은 말로 끝나지 않고 대통령상 부활을 반대하는 전시회 <그 때 그 상, 내가 죽도록 받고 싶은 대통령상>으로 이어졌다. 방침이 발표된 지 약 한달여 만에 전시회가 열린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작품을 준비한 작가들은 의외로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선보여 미술현장의 권위주의 반대 열기를 실감하게 했다. 평면회화와 입체설치 작품들은 물론 격렬한 퍼포먼스까지 등장했다. 청년작가들은 물론 중진작가들까지 출품한 이 전시에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작업실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출품작들 가운데 눈길을 끈 몇 작품을 소개하자면, 우선 미술평론가이자 작가인 이태호 경희대 겸임교수의 작품 ‘그 때 그 대통령상’이다.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시절 소설로 등단한 적이 있고, ‘월간미술’의 전신인 ‘계간미술’ 기자였으며, 80년대 초 ‘현실과 발언’ 멤버로 활동한 예술인이다. 그는 퍼포먼스 영상작업 ‘그 때 그 대통령상’에서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을 패러디해 직접 노래를 부르고 중간 중간에 역대 대통령 이미지를 넣어서 영상작품을 만들었다.

가사 중 몇 개만 따면 이렇다. “예술보다 더 높은 건 대통령이라며… 이제는 잊어야 하나 그 대통령상… 어쩌다 한번쯤은 나에게도 올까… 이제는 잊어야 할 그 대통령상 외로운 화실에서 라면을 먹으며… 존나게 받고 싶은 그 대통령상”. “존나게!!!” “존나게”라고 했다.

현직 대학교수가 깻잎머리 소녀들이나 쓰는 이런 말을 입에 담은 것이다. 대통령상을 받고 싶은 열망을 표현하기 위한 화자의 심정이 절절이 배어 있다. 일상 언어에서는 잘 쓰지 않는 이런 말을 우리는 ‘시적 언어’라고 한다. 나아가 이런 말을 쓴 사람을 크게 지탄하지 않는 관행을 두고 ‘시적 허용’이라고 한다. 의표를 찌른 이 퍼포먼스 영상은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겨우며 그것에 대해 국가의 권위를 빌어 수상제도를 두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김윤환, 김강 부부 작가의 오프닝 퍼포먼스 또한 당황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이들이 개막현장에 가지고 들어온 것은 봉황이 그려진 상장 이미지의 고체 덩어리였다. 그들은 이 물건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물을 부으면서 격렬하게 그 물체를 다루었더니 이내 천 조각으로 변했다.

천에 물을 부어 얼려서 딱딱한 덩어리로 만들어두었던 것을 현장에서 녹여 낸 것. 이들은 이 천 조각으로 전시장 바닥을 구석구석 닦고 다니며 걸레로 만들었다. 이어서 오토바이 택배 아저씨가 보무도 당당하게 등장하고, 작가는 걸레를 포장해서 미협 사무실로 배달을 보냈다.

또 하나의 퍼포먼스는 지난달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밥상 퍼포먼스이다. 거리에서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등의 밥상을 놓고 밥을 배달시켜서 실제 밥을 먹은 것. 백기영 등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 행위는 영상으로 전시장에 소개되었다.


출품작들에는 봉황과 무궁화 이미지를 온몸에 문신처럼 새긴 누드를 보여준 김준, 쩍 벌린 여고생의 아랫도리 장면을 통해 노골적으로 속물주의 근성을 비판하고 있는 최경태, 미협 홈페이지를 크게 출력해서 스프레이로 위해를 가한 양아치 등 격렬하고 신랄한 비판들이 이어졌다.

좀처럼 예술계의 동정을 보도하지 않는 MBC 9시 뉴스는 이 전시의 오픈 소식을 이렇게 전했다. “엄기영 앵커 : 미술협회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대통령상을 부활하려 하자 현장 미술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나 있을 법한 발상이라면서 반대전시회까지 열고 있는데 사연을 김기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김기종 기자 : 대통령상의 모형이 바닥에 내던져집니다. 전시실에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대통령상 부활 결정을 풍자하는 작품 30여 점이 내걸렸습니다. 이미 지난 81년에 폐지된 대통령상을 미술협회가 부활시키려는 것은 대통령의 권위에 기대 예술을 끌고 가려는 과거 독재시대의 발상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중략) 전체 예술계에서 현장예술인들에게 해마다 주는 대통령상은 20여 개. 예술계 스스로 권위를 쌓아올린 상을 만들 수는 없는 건지,미술계의 대통령상 존폐 논란은 다른 부문으로 점점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예술은 이렇게 가끔 사회적인 문제로 부정적인 논란이 있을 때만, 9시 뉴스에 등장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현주소다. 더 이상 미술계 내부의 부끄러운 모습으로 시청률 높은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굴뚝같다. 큐레이터의 한 사람으로서, 이 전시 기획자의 일인으로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간직하는 씁쓸한 소망이다. 
 

그 때 그 상, 내가 죽도록 받고 싶은 대통령상
일자·장소 : 2005.3.15-4.20 갤러리 세줄


기획위원회 : 이경성(명예기획위원) / 최태만, 최금수, 최열, 조은정, 라원식, 김준기, 김종길(기획위원)

참여작가 : 김준, 이강우, 권여현, 화성공장, 김강, 김윤환, 이샛별, 김도근, 이윤엽, 이중재, 송진화, 김준권, 이태호, 김창겸, 이학승, 김홍식, 안성금, 낸시랭, 정정엽, 박원식, 정현, 박태규, 조습, 백기영, 송필, 최경태, 신장식, 최석운, 설총식, 추민해, 윤석남, 양아치 (이상 32인)


취지문 : 조선 총독부에 의한 조선미술전람회가 광복과 함께 막을 내리자 그 뜻을 이어받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탄생했습니다. 권력의 서열처럼 권위의 서열은 대통령상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그러나 태생적인 한계를 넘지 못하고 결국 암투와 모략으로 더럽혀진 채 막을 내리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그 슬픔의 여한을 이기지 못해 ‘전람회’란 꼬리표를 달고 불씨를 키우더니 결국 ‘대통령상’의 부활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에 ‘그 때 그 상’ 기획위원회는 ‘대통령상’이라는 황당무괴한 괴물적 상상력에 대한 저항으로, 예술의 권위가 ‘대통령상’에 있어야 한다는 발상의 유치함, 예술이 관에서 주관하는 ‘상’에 의해 가치상승할 것이라는 천박함, 예술가들이 그로 인해 자극받아 ‘위대한’ 작업 일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유아적 발상에 ‘그 때 그 상, 내가 죽도록 받고 싶은 대통령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부디 당신들의 똥침에서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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