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실이 어려울수록,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공회대학교 민주사회교육원(sea.skhu.ac.kr)이 주최하는 노동대학 11기 과정의 개강을 맞아 14일 오후 첫 공개특강에 나선 신영복 교수는 ‘노동자와 고전읽기-성찰과 모색’ 강의에서 ‘관계론’의 관점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존재론’을 비판했다. 신 교수는 또 ‘성찰’ ‘양심’ ‘연대’라는 묵직한 화두를 주제로 한 열띤 강연을 통해 노동, 진보운동 진영에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신 교수는 우선, 장자 12장의 천지 구절을 통해 기계의 자본주의적 채용이 상대적 과잉인구를 양산하지만 더욱 결정적인 것은 기계가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지적했다. 존재론에 입각한 자본주의와 그 축적과정은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과정이며 인간의 소외과정이라는 것.

신 교수는 여기서 “장자에서는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가 생산물의 향유에서 배제되는 것에서 나아가 생산과정 즉,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지적하고 있다”며 “노동은 생명의 원천적 표현이며, 우리는 이러한 인간화 요구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아울러 “현재 노동운동은 대단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그에 미치지 못하며 답보하고 있다. 체제 내 운동에 갇힌 이유를 잘 알아야 한다”며 “근대사회의 존재론적 논리가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되새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이와 함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무한경쟁과 전쟁의 신자유주의 시대였다”며 ‘반전평화론’을 끊임없이 주장했던 묵자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신 교수는 “군자는 물에 자신을 비추지 말고 사람에 비추라고 했는데 이 말은 곧 역사에 비추어야 한다는 금언”이라며 “전쟁방식에 의한 부국강병의 추구라는 점에서 춘추전국시대와 신자유주의 질서는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논어의 ‘화이부동(화하되 동하지 않는다)’론 설명이 이어졌다. 자본주의는 동(흡수합병)의 논리를 구성원리로 한다는 신 교수는 “자본주의 200년 역사가 풍요의 역사라는 환상을 청산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빈곤, 무지, 질병, 오염, 부패 등 인류의 5대 공적 중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며 “지배와 흡수합병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동의 논리를 청산하고 차이를 승인하고 평화적 공존을 존중하는 화의 논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관계의 최고형태는 ‘가슴’

“노동운동이 뭐예요. 대부분의 일은 ‘사람과의 사업’ 이잖아요. 다른 사람에 대한 온당한 이해가 되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먼저 필요해요.”

신 교수는 탁(발의 본)을 두고 신발 사러 장에 간 이야기가 담긴 한비자의 한 구절을 예로 들면서 “내가 바로 탁(2차 정보, 책에 의존) 가지러 집에 가는 우둔한 사람이었구나, 집을 그려도 지붕부터 먼저 그리는 그런 사람이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출간된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속에 담긴 내용을 신 교수는 감옥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사색을 곁들이며 청강생들의 이해를 도왔다.

신 교수는 “같이 관계(한 방, 같은 작업장, 같은 억압 등)하는 끈끈한 관계 속에서만이 이를 알게 된다”며 “감옥에서는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떡 신자’(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합신자)들이 친해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어 “어떤 동기를 가지고 관계하느냐가 중요한데, 큰 투쟁의 대오에 있는 동반자일수록 인간적 이해가 훨씬 중요하다”며 “만나면 꺼림칙해선 안 되고, 반갑고 해야 되는 것이다. 이념적 동참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계의 최고형태는 가슴(Warm Heart)이라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성찰이 개인에 머물지 않고 사회로 고양되면 그것은 최종단계로 봐야 된다고 설명하는 신 교수는 곧바로 ‘양심’이란 주제로 이어갔다.

신 교수는 “양심이란 타인에 대한 배려”라며 “‘건축’이란 단어에서 주춧돌을 먼저 그리던 노인이 생각나듯 모든 단어(자기가 쓰고 있는)의 배후에는 인간의 모습이 떠올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 교수는 이어 “그렇지 않고 이론가들의 말이 떠오른다면 그건 별볼 일 없는 것”이라며 “예전에 운동을 하던 조직가, 실천가들은 지금은 없다. 최근까지 운동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들, 참여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신 교수는 우선 우리의 의식을 잘못 물들이고 있는 ‘존재론’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이와 관련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은 상품문화에 완벽히 물들어 있고, 감수성을 포섭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놀라울 정도”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전승기념탑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탑이 없는 거예요. 고지에 휘날리는 성조기 등을 연상했는데 언덕에 여자가 서있는 것이 참 이상했죠. 그런데 안내자가 전쟁의 승리는 아들이 죽지 않고 돌아오기를 언덕에서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겠냐는 거예요. 그제서야 ‘전쟁과 승리’의 관념이 엄청나게 물들어 있었던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죠.”


신 교수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아름다움은 잘 아는 것인데 이제 아름다움은 ‘모름다움’으로 역전되고 있어요. 자본주의 상품미학은 형식미가 인간미를 압도하죠. 주변부 종속사회의 문화적 특징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것만이 아름다움으로 느끼는 거예요. 우리의 도착된 미적 정서를 반성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신 교수는 자본과 패권주의가 막강한 포섭력을 행사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자신과 현실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이와 관련 “모든 실천과 운동의 시작은 자기 ‘성찰’과 ‘양심’이 바탕이다. 우원한 이야기 같지만 가장 본질적 얘기”라며 “성찰을 바탕으로 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양심이며, 양심이야말로 관계론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연대는 연대 그 자체가 궁극의 목표

“부문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이 헤게모니를 갖기 위해서는 고결한 도덕성이 필요하고, 그것은 배타적이지 않은 ‘연대성’ 속에서 나온다.” 신 교수는 이어 실천적 관계론으로서 ‘연대’의 문제를 지적했다.

노동운동과 우리 사회 전체 변혁역량이 취약한 상황. 객관적 조건이 열악하고 주체적 역량이 취약한 경우의 실천론이 연대이며, 연대는 약한 자의 실천론이다. 올바른 연대는 하방연대이고, 하방연대는 ‘바다’로 가는 물의 철학이라는 것.

신 교수는 다음주 월요일인 21일 두 번째 특강에서 ‘연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설명할 계획이다. 그의 강의록에 나와 있는 몇 구절을 앞서 살펴보자.

“대기업 노조중심의 노동운동이 특별히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연대이며, 하방연대이다. 노동운동에 대한 포위가 더욱 강화되고, 심지어 경제위기를 빌미로 노동진영의 민중적 연대성을 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대는 현 단계 실천과제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공감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내부연대’에 대한 강조의 글도 눈에 띤다.

“계파를 만들어 힘을 실으려 하거나, 보다 권력있는 직책을 맡고 그 자리를 지키려하는 상방 추종의 작풍이 청산되지 않는 한 변혁운동은 권력 연습의 아류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것은 근본에 있어서 보수적 퇴행이다. 조직내부의 연대와 동지적 애정은 당연히 하방연대로 나타나야 한다.”
 
연대에 대한 강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연대는 연대 그 자체가 궁극의 목표이다. 모든 사업은 ‘사람과의 사업’이며 그것이 곧 인생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인간적 상처를 주면서까지 해야 할 가치가 세상에는 없다. 지극히 작고 가까운 것으로부터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반대로 가장 작고 가까운 곳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편, 이날 공개특강에는 70여명의 노조활동가, 간부들이 참여했다. 김동춘 노동대학 학장은 환영사에서 “언론과 자본, 정권의 집중포화 등 노동운동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제 타성적인 것이 아닌 근본적 얘기가 되어야 할 시점”이라며 “올해부터는 노동운동과 관련한 글도 많이 쓰고, 발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공회대학교 민주사회교육원 노동대학 제 11기 과정은 ‘노동운동의 이념과 노선-한국 노동운동 성찰과 전망’이란 주제로 다양한 강사진들이 나와 6월말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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