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시에 위치한 한 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장애요양재활원에서 강제노역과 임금체불 등 시설 이용 장애인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재단 소속 사회복지사들에 의해 고발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문제가 된 곳은 경북 경산시 와촌면에 위치한 청암재단. 정신지체장애인을 위한 재활원과 요양원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인 청암재단은 지난 52년 설립, 그동안 대구동구청으로부터 국고보조금 등 시설운영비 전액을 지원받아 운영돼 왔다. 그러나 복지시설 운영자금으로 쓰여야할 정부보조금을 재단 관계자들이 착복하고, 지체장애인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청암재단에서는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정신지체장애인 강제노역 동원…복지서비스는 외면

“재활원 운영자금으로 쓰여야 할 정부보조금 1억3천만원 가량이 재단 관계자의 친인척 등 허위로 등재된 유령직원들의 명의로 횡령됐고, 시설 이용자인 지체장애인들은 이사장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도사견 농장과 이사장 아들이 복지시설과 무관하게 운영해온 장갑공장 등에 동원돼 노동력을 착취당해 왔습니다.” 김순호 청암재단노조 위원장의 말이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청암재단의 비리내역을 소상히 밝히고, 재단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1월3일 사회복지사 30여명이 주축이 돼 노조를 설립하게 됐다”며 “노조 설립 후 1달여에 걸쳐 진상조사를 벌인 결과, 재단 관계자들이 공금횡령 등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사이 지체장애인들은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아온 사실이 드러났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비교적 건강한 장애인들을 이사장 개인농장에 동원해 수년에 걸쳐 무임금으로 가축을 키우도록 하고, 노역을 거부한 장애인은 무자비한 구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동원된 장애인들은 난방시설도 없는 창고방에서 엄동설한에 떨어야 했고, 개에 물려 팔이 부은 상태에서도 치료는 고사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개밥을 주고 오물을 치워야 했습니다.”

청암재단 내 강제노역 실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사장 아들이 운영하는 장갑공장에도 장애인 10여명이 동원, 월 5천~2만원의 수고비를 받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해야 했다는 것.

김 위원장은 “기계와 화학약품 등으로 위험한 공장에 정신지체장애인을 동원한 것 자체도 말이 안 되지만, 담뱃값도 안 되는 돈을 임금으로 주면서 하루 종일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것에 더 큰 분노를 느낀다”며 “공장운영에서 발생한 수익금은 얼마이며, 누구의 수익으로 돌아갔는지에 대한 조사와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노조는 확인 결과, 청암재단은 유통기간이 지나 곰팡이가 생긴 부식을 장애인들에게 제공하고 여성장애인들에게는 생리대 대신 후원받은 아기 귀저기를 쓰도록 강요했으며, 휴지 대신 신문지로 화장실 뒤처리를 하라고 하는 등 기본적인 복지서비스 조차 외면해왔다고 밝혔다. 

문제는 폐쇄적 운영체제…노조·시민단체, '공익이사 선임' 주장

노조가 청암재단의 비리실태를 공개하고 나서자, 문제가 된 재단 이사진들은 서둘러 이사직을 사퇴, 현재는 새로운 이사진이 구성된 상태다. 그러나 “새로 구성된 이사진 역시 비리혐의로 물러난 구 재단의 비호를 받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청암재단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민주적인 인사들로 이사진 전원이 교체돼야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또 “공식적인 문제제기에도, 구 이사진들에 대해 어떠한 사법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는 대구동구청의 처사를 납득할 수 없다”며 지난달 22일부터 동구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노조의 입장에 대해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들도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 민주노총 대구본부, 대구장애인연맹 등 18개 단체들은 ‘청암재단 인권유린 및 진상규명과 민주적 운영을 위한 대구경북공동대책위’를 구성해 노조의 투쟁에 힘을 보태고 있다.
 
또 과거 유사한 시설비리 문제를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는 에바다복지회, 정립회관공대위, 성람재단공대위 등도 ‘사회복지시설민주화와 공공성 쟁취를 위한 전국연대회의(준)’을 결성, 청암재단 사태에 공동대응한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다.

이승헌 에바다복지회 법인사무국장은 “유사한 시설비리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는 친인척 중심의 폐쇄적 운영시스템과, 이를 감시할 수 있는 법적제도가 미비하다는 데 있다”며 “우선은 공익이사 선임과 이사회의 민주적 개편을 위해 청암재단노조와 공동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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